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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Feb 23. 2017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산문집(2017)

Intro

지난주, 미리 예약주문을 하여 내 손안에 들어온 류시화님의 ‘따끈따끈한’ 신작 산문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님의 따끈따끈한 신간
*지은이 : 류시화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잠언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인도 여행기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등 다수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한 구절 한 구절 음미할 때마다, 차 한 잔 앞에 두고 작가님과 두런두런 대화하는 느낌 속에 있었다.


인생선배에게서 삶 자체에 대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소중하고 귀중한 조언을 듣는 느낌이랄까.


책 속으로


JK : 안팎이 소란스러울 때 저는 저만의 동굴로 들어갑니다. 제 차 안에서 음악을 듣거나, 깊은 밤 혼자 깨어 글을 쓰기도 하구요. 작가님은 어떠신가요? 

    

류시화님 : 제 삶에도 힘든 순간이 있었어요. 그 순간들을 피해 호흡을 고르지 않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부정적인 감정들로 마음이 피폐해질 수 있었죠. 그럴 때마다 여행은 나만의 '퀘렌시아*'였어요. 

(*Querencia: 회복의 장소,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만의 작은 영역, 인간 내면의 성소)  


여행지에 도착하는 순간 문제들을 내려놓고, 온전히 나 자신이 되었으며 마음의 평화를 찾았죠. 그러고 나면 얼마 후 새로운 의욕을 가지고 다시 삶 속에 뛰어들 수 있었어요.


좋아하는 공간, 가슴 뛰는 일을 하는 시간,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 이 모두가 우리 삶에 퀘렌시아의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아회복의 장소를 찾고 있으며, 삶에 매몰되어 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치유하고 온전해지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어요. 나의 퀘렌시아를 갖는 일이 곧 나를 지키고 삶을 사랑하는 길이죠.


JK : 뒤돌아보면, 너무 돌고 돌아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후회될 때가 많고,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싶을 땐 살짝 우울해지기도 한답니다.     


류시화님 : 방황한다고 길을 잃은 것은 아니죠. ‘모든 여행에는 자신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목적지가 있다’라는 말이 있어요. 그 많은 우회로와 막다른 길과 무너뜨린 과거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겁니다. 그 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죠. 

    

때로는 우회로가 지름길입니다. 삶이 우리를 우회로로 데려가고 그 우회로가 뜻밖의 선물과 예상하지 못한 만남을 안겨주지요. 그 길이야말로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 수 있어요. 헤매는 것 같아 보여도 목적지에 도달해서 보면 그 길이 지름길이자 유일한 길인 거죠. 우리가 할 일은 찾고, 찾아서, 나아가는 것뿐입니다.

     

죽는 날까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선택하는 것이 삶이죠. 따라서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그 길에 기쁨과 설렘이 있어야 하죠그리고 세상 사람들과 자신의 다름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내가 옳다고 느끼는 길을 정답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나의 인생인 것이죠. 마음이 담긴 길을 걷는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과 나란히 걷는다고 하죠.   

  

당신이 누구이든 어디에 있든 가고 싶은 길을 가세요. 그것이 마음이 담긴 길이라면. 마음이 담긴 길을 갈 때 자아가 빛납니다.


JK : ‘깊이 바라보면 이해하고 되고, 이해하면 사랑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는 문구를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좋아합니다.  

   

류시화님 : 우리는 보고 느끼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 밖에 꼭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에요. 아름다움에 몰입하고 감동할 줄 아는 영혼을 가지고 우리는 이곳에 왔으며, 그 몰입과 감동이 삶의 문제들을 극복하고 인생을 살아 나가게 하는 힘이죠.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배경이나 환경이 아니라 일상의 순간에 대한 집중도라고 할 수 있어요.


JK : 혼자 여행을 자주 가지만, 가끔은 나만의 ‘그대’와 그 길을 나란히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옆에 있되,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그런 느낌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   

   

류시화님 : 혼자 걷는 길은 없어요. 당신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여행을 하든 과거에 그 길을 걸었던 모든 사람, 현재 걷고 있는 모든 사람이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당신과 함께 합니다. 당신은 그 모두와 함께 걷고 있는 것이죠. 같은 파동끼리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행위는 고유한 파장이 있고그 파장과 일치하는 존재들이 있어요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아무리 어둔 길이라도 혼자 걷는 길은 없어요.     


부처가 명상을 할 때,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들이 와서 함께 명상한다는 말의 의미가 그것이죠. 당신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혼자 힘겹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아무도 모르는 비밀 통로가, 당신 자신마저 알지 못하는 연결 통로가 거기에 있어요. 그 통로를 통해 당신은 그 일과 관련된 과거, 현재, 미래의 존재들과 연결되죠.      


내가 여기에 앉아 있다는 것은 시공간을 넘어 동일한 파동으로 나와 연결된 모든 존재들과 함께 앉아 있는 것입니다.


JK :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나름 치열하게 고민하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아직도 그 고민의 연장선상에 있구요.


류시화님 : 누구나 한 번쯤 전체적인 시각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바라볼 때가 있죠. 저는 먼저 삶의 방향을 확실하게 정하고 싶었어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길로 나아가야 후회 없는 삶을 살 것인지 알고 싶었어요. 인생을 표류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비전 퀘스트(vision quest, 꿈을 요청하는 외침)는 삶의 다음 단계로 들어가기 전에 통과의례의 시간을 갖는 비전 탐구입니다. 비전 퀘스트를 통해 삶을 결정짓는 생각들이 그때 형성되었어요. 


마음이 원하는 길을 두려움 없이 걸어가라”라고 말하고 싶어요.     


삶은안전지대를 벗어나는 순간 시작되죠. 과거의 나와 작별하고 새로운 나를 만나는 일. 안전지대를 떠나 더 큰 비전을 얻는 일이 비전 퀘스트입니다.


JK : 내 안에 상처를 가득 안은 채, 타인에게 ‘조언’이란 걸 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어요. 집으로 돌아오면서 과연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 란 생각이 들더군요.


류시화님 : 모든 치유자는 상처 입은 사람이다라고 칼 융이 말했어요. 상처가 있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진정한 치유자가 될 수 있다(wounded healer)는 의미인 거죠. 자신이 아파 본 만큼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힐러는 내 상처를 극복함으로써 다른 이들을 치유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삶은 이따금 우리 자신을 폐허로 만듭니다. 예기치 않는 불행이 영혼을 유린하죠. 중요한 것은 자기 치유를 위해 어떤 일을 하기로 마음먹는가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자신뿐 아니라 세상을 치료하는 일로 이어지는가 하는 것이죠. 이것이 인간이 지닌 자기 회복력이며, 성장하는 영혼이 세상을 성장시킵니다.  

   

삶의 지혜는 불행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 속에서도 건강한 씨앗을 심는 데 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생명의 원천을 신뢰하는 일이니까요.


JK : 7살 때 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지금의 내 삶은 ‘덤’이라는 생각으로 살았어요. 다만, ‘덤’으로 사는 인생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의무감’ 같은 게 있어요.


류시화님 : 인생은 끝없는 기적의 연속이고 간발의 차이로 살아남이고 신의 극적인 구조의 손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면 삶이 그만큼 더 소중해지죠.

      

자신이 간발의 차이로 살아남은 행운아임을 안다면 무의미한 고민이나 일들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돼요. 주어진 날들이 선물처럼 다가오죠. 가장 아까운 것이 ‘매 순간을 살지 않은 삶’이런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시작해야 하는 가장 창조적인 행위는 삶의 매 순간을 붙잡는 일인 거죠. 


JK : 작가님 글 중에서 ‘고통은 지나가고 아름다움은 남는다,’ ‘빛은 상처를 통해 들어온다’는 말이 가슴에 깊이 박혔어요.


류시화님 :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수단으로 마음의 세계에 다가갔어요. 두려움분노실망 같은 부정적 감정의 시간들은 마음의 왜곡된 지점을 알아차리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겪는 일들은 삶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사건들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일어납니다. 예기치 않았던 불행은 껍질을 태워 버리는 불과 같아서 껍질 속에 가려져 있던 우리 본연의 모습을 보게 하죠.     


‘상처를 외면하지 말라. 붕대 감긴 곳을 보라. 빛은 상처 난 곳을 통해 네게 들어온다’는 말을 이렇게 설명해보죠.     


슬픔은 기쁨을 위해 그대를 준비시킵니다. 


그것은 난폭하게 그대 집 안의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리죠. 새로운 기쁨이 들어올 공간을 발견할 수 있도록.

그것은 그대 가슴의 가지에서 변색된 잎들을 흔듭니다. 초록의 새잎이 그 자리에서 자랄 수 있도록.  

그것은 썩은 뿌리를 잡아 뽑아요. 그 아래 숨겨진 새 뿌리들이 자라날 공간을 갖도록.   

   

슬픔이 그대의 가슴으로부터 흔드는 것마다훨씬 좋은 것들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입니다.     


JK :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이 책의 타이틀이 ‘내려놓음’을 의미한다는 게 놀라웠어요.   

  

류시화 :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뒤돌아보는 새는 죽은 새다.’ 모든 과거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날개에 매단 돌과 같아서 지금 이 순간의 여행을 방해합니다.

     

마음의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과거의 일을 계속 곱씹으면서, 그것에 의해 왜곡된 의식으로 자기 자신과 세상을 대한다는 것이죠.     


과거를 내려놓고 현재를 붙잡는 것이 삶의 기술입니다. 오래전에 놓아 버렸어야만 하는 것들을 놓아 버려야 합니다. 그다음에 오는 자유는 무한한 비상이죠자유는 과거와의 결별에서 옵니다.

     

내려놓을수록 자유롭고자유로울수록 더 높이 날고높이 날수록 더 많이 봅니다.

      

새는 자유를 위해 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 자체가 자유인 거죠. 다시 오지 않을 현재의 순간을 사랑하고 과거 분류하기를 멈추는 것그것이 바람을 가르며 나는 새의 모습입니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라도 날개를 펼치고 있는 한, 바람이 당신을 데려갈 것입니다. 새는 날갯짓에 닿는 그 바람을 좋아하는 거죠.


JK : 우리 인생에서 고통과 시련은 어떤 의미일까요? 좀 덜 아프면서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류시화 : 어둠과 고통의 시간은 삶을 깊고 넓게 보는 통찰을 줍니다. 삶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이 어둠 명상은 자기 자신에 대해 배우고 정화하고 자기를 전체적으로 보는 기회이죠. 그 영적 어둠의 시기를 통해 자기 안의 신성과도 연결됩니다.

     

어둠의 시련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어둠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상처와 고통은 단순한 지식에서 통찰력 있는 지혜로 옮겨 가는 다리입니다.    

 

삶의 지닌 경이와 아름다움 앞에 무릎 꿇기 위해서는 어두운 동굴의 시간, 심리적 추락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어두울 때 우리는 아무것도 볼 수 없어요그때 빛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옵니다.    

 

인간 존재는 누구나 완벽하게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로 태어납니다. 그러나 삶이 우리 존재의 보석에 금이 가게 만들죠. 하지만 그 불완전하고 상처 입은 자신을 아름답게 재탄생시키는 것이 바로 삶의 예술입니다. 흠과 결함을 더 창조적인 것으로 변신시키기 때문에 ‘예술’인 것이죠.

    

Outro


나의 우문에 현답을 해주신 류시화 작가님.


언젠가 이 분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다면, 작가님의 책이, 그 말씀이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얼마나 깊은 위로가 되었는지, 그 고마움을 꼭 전하고 싶다.


살아온 삶에 대한 회한으로, 살아갈 삶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다소 의기소침해 있던 내게, 시나몬 향 폴폴 나는 카푸치노처럼 부드럽게, 다이어트 콜라처럼 시원하게, 뜨끈한 누룽지탕처럼 속이 풀리게 토닥임을 전달해 주셨으니까.


책을 덮으며, 치열하게 고민하며 방황한 지난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으며, 나를 도와주는 주변의 좋은 기운들과 함께 내가 가야 하는 곳을 향해 제대로 가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 느낌이 확신으로 다가올 수 있게,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짐하며.


외부의 힘에 의해 깨진 알은 생명이 끝나지만, 내부의 힘에 의해 깨진 알은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위대한 일은 언제나 내부에서부터 시작된다.
- 류시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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