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와 함께
여름, 장마
서울에서 파주 사이.
굵게 쏟아붓다가, 분무기처럼 흩뿌리다, 부슬비였다가, 소나기였다가.
잠시 그쳤다가, 급작스럽게 퍼부어대는 통에 앞이 보이질 않아 운전대를 잡은 손에 진땀이 살짝.
비의 온갖 형태와 강도를 체험한 채 도착.
차에서 내리는 순간, 훅 들어오는 더위와 습기.
지금, 내 옆에 있지?
생각나?
나, 여름 무지하게 싫어하는 거.
거기다 비도 무지 싫어하지, 아마.
비 오는데 위험하게 여기까지 운전해서 왔냐고 타박하지 않기.
오늘은 그냥, 집에 있을 수가 없었어.
좋은 공기 속, 바람도 쐬면서
사방에 책이 가득한 시원한 곳에서 가만히 앉아 책을 읽고 싶었어.
아이스 라떼 두 잔, 앞에 두고.
내 꺼 한 잔, '그대' 꺼 한 잔.
저기 보여? ‘지혜의 숲.’
이 쪽으로 들어가면 되겠다.
여기서 읽고 싶은 책을 빌려볼 수도 있고, 가져온 책을 읽어도 된대.
오늘 내가 갖고 온 책은 ‘인생(위화 著),’ 그리고 ‘타나토노트 1, 2(베르나르 베르베르 著).’
이거 다 읽고 나서, 나중에 나랑 이 책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자.
여기 들어서자마자, 책장 보며 내 입이 쩍 벌어졌던 거.
동시에 네 웃음소리. 다 들렸어!
이 곳, 참 좋다.
‘미녀와 야수’ 영화 속 야수가 사는 성의 그 방, 책이 가득하던 그 방 같아.
그곳에서 '벨'이 야수의 눈을 보고 이야기하면서 서로 마음을 조금씩 열게 되는 장면.
난 그 장면이 참 좋더라.
그대 눈.
보.고.싶.다.
오늘은 여기가 내 자리.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좋아.
오!
금방 호수에서 잉어 한 마리 뛰어오르는 거, 봤어?
꿈의 작업실
이 곳에서 책을 읽다가 든 생각.
'나중에 이런 공간을 만들어서 사랑하는 지인들과 함께 책 읽고, 글 쓰고, 공동작업도 하고, 그럴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내가 꿈꾸는 공간은,
한쪽 벽면은 책으로, 다른 쪽 벽면은 공동 프로젝트를 위한 리서치 자료용,
큰 창이 나 있는 한쪽 공간엔 잠깐이라도 편하게 릴랙스 할 수 있는 쉼터가 있고,
입구 쪽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는 24시간 카페, ‘세제커(SeZeCo)’가 있는 그런 공간.
정중앙엔 아주 큰 테이블 하나를 놓고, 각자 앉고 싶은데 앉아서 글 작업을 하는 거지.
물론, 한쪽 휴식공간 옆으로 나선형의 계단이 있어서 2층으로 올라가 바람을 쐴 수도 있어. 복층형 구조니까.
어때? 괜찮지?
생각만 해도 막 가슴이 뛰지 않아?
그곳에 그대 자리도 하나 만들어 놓을게.
오고 싶을 때 언제든, 잠깐이라도 들러요.
하루 종일 커피만 두 잔째.
책 읽다가 허기 채우러 들어왔는데, 바깥 풍경이 예술.
현대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날아온 듯.
이런 걸, 모던함과 앤틱함의 조화라고 하던가?
다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갈 때 만난 이 친구.
덩치가 다소 큰 탓에, 귀엽기보단 좀 무서웠어.
화들짝 놀란 내 모습에 자지러지게 웃던 거, 다 알아.
그대 미소.
보.고.싶.다.
다시.
지지향
지혜의 숲 3번 게이트 위쪽, ‘지지향.’
지난번에 이 곳에서 하룻밤 묵어가고 싶어서 예약하려 했는데 빈 방이 없더라고.
다음엔 미리 날 잡아서 꼭 와 보려구.
책이 가득한 공간에서 맞이하는 한여름 밤은 정말 매력적일 것 같고,
이 여름, 숲 속의 이른 아침 풍경은 너무 아름다울 것 같아.
혹여 비가 오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낭만적일 듯.
물론,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심 한가운데서도 - 사실 어디서든 -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며 무더운 여름을 날 수도 있겠지.
그런데, 한 번쯤은 일상의 짐을 모두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몸만 와서,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내 온 마음을 책으로 가득 채우고 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
꼭 전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이 있는데, 뭔가 말을 꺼내기 어려워하는 느낌.
지금 내가 생각하는 이 느낌, 맞지?
말씀하세요.
왜?
가야 돼? 지금?
벌써?
안 가면.. 안 되나?
.....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우리?
가기 전에 한 마디만.
많이 망설였는데,
이번엔 말해야 할 것 같아.
지난번에 이 말을 못해서 두고두고 아쉬움, 미련이 남았기에.
음..
스쳐가는 바람의 결을 느끼듯
오고가는 구름의 흐름을 알아채듯,
피고지는 꽃의 잔향을 따라가듯,
보이진 않아도, 느낄 수 있어요.
이젠, 정말 알아.
고마워요, 다시 와줘서.
고마웠어요, 옆에 있어줘서.
그리고, 번번이 고마워요.
내가 무너지지 않게, 늘 지켜줘서.
씩씩하게 기다릴게.
다시 올 때까지.
이렇게, 또 만날 때까지.
안녕.
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