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의 순간
순천 여행의 끝자락
낙안읍성마을로 들어서는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넘어온 듯한 느낌.
*낙안읍성 민속마을(사적 제302호) : 조선 태조 6년(1397), 왜구가 침입하자 김빈길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쌓아 방어하였고, 인조 4년(1626), 임경업 장군이 낙안군수로 부임하여 현재의 석성으로 중수함(툇마루와 부엌, 토방, 지붕, 섬돌 위의 장독, 돌담 등 남부 지방의 독특한 주거양식을 보여줌)(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입구에서 아담한 초가집을 지나는 길, 동네 강아지 두 마리가 지나가는 객을 반긴다.
짚으로 이은 초가지붕, 나지막한 돌담, 자그마한 연못과 물레방아, 연못을 가득 메운 커다란 연잎, 그리고 활짝 핀 수련.
평화롭고 정다운, 진한 향토 내음이 물씬 풍겨온다.
특히 이 곳의 연잎은 다른 곳보다 훨씬 더 큼지막해서,
어린 시절,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갔을 때 내게 우산이 되어준 그 연잎이 떠올랐다.
그때 어린 내 눈엔, 프라이팬에 기름이 동그르르 구르듯 연잎 위에 빗물이 동글동글 맺혀 굴러다니는 모습이 너무 신기했고, 우산 대용으로 연잎을 머리에 이고 깔깔대며 오빠들 뒤를 따라다니느라 흙탕물에 신발이 젖는지도 몰랐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 옛 추억.
잠시 잠깐이었지만, 마법과 같은 순간이었다.
연못가를 지나 외적 방어를 위해 쌓아 올린 성벽 둘레길로 올라서니, 시원한 바람이 내 몸을 훑고 지나간다.
둘레길에서 이어진 돌계단을 올라가자, 이 곳의 풍경이 한눈에.
안개 자욱한 산 아래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룬 곳.
이곳에 사람들이 대를 이어 여전히 살고 있고, 여행객들이 묵어갈 수 있는 민박집으로도 운영된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다.
전통찻집에서 망중한
하루 종일 오락가락하는 비.
마을 내 관아(官衙)를 둘러보고 나오던 중, 갑자기 세차게 쏟아져내리는 장대비를 피하고자 들어간 전통 찻집.
그곳에서 진하고 따뜻한 대추차를 한 잔 하며 주인아주머니와 두런두런 나누었던 사람사는 이야기.
달콤한 대추차의 향이 빗물에 닿아 초가지붕 위로 떨어지는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산다는 게 뭐 별 거 있나.
내가 누울만한 작은 집 한 칸, 입에 풀칠할 일거리, 마음 맞는 사람들과의 소통 속 소박한 일상을 꾸려가는 것.
내 안에 품은 작은 꿈,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나름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가는 것.
가끔 이렇게 낯선 곳으로 여행도 다니면서, 쓰고 싶은 글도 쓰면서.
그렇게 살면 될 것을,
지난 시간, 무얼 그리 아웅다웅하며 살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턴 불필요한 건 조금씩 내려놓고, 미처 채우지 못한 빈틈은 천천히 메꿔가면서 '실속있게' 살아야지 싶었다.
내게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키며 살 것인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삶을 한번 더 재정비한달까.
반 발자국, 조금 앞으로 나아간 느낌.
기분 좋은 느낌만 남았다.
이번 여행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