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숲길 따라 그곳에 닿다
대처승 제도를 수용한 태고종(太古宗)의 대표 사찰, 선암사(仙巖寺).
이 곳은 소설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75) 작가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그의 부친이 선암사 부주지를 지낸 철운(鐵雲) 스님).
매표소에서 사찰까지 이어진 1~2km 정도의 초록숲길.
초입부터 느껴지는 예사롭지 않은 숲의 향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한발 두발 옮겨가는 동안, 보슬비에 촉촉이 젖은 아름다운 그 길 위에서 만난 참나무, 편백나무, 진분홍 배롱나무, 그리고 산안개.
이들이 어울려 자아내는 신비스러운 분위기 속, 청량한 기운을 한껏 받으며 한가롭게 걷기를 30여분 즈음.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가 했더니, 신선이 올라갔다는 뜻의 승선교(昇仙橋)를 만났다.
아치형의 다리, 그 아래에서 바로 보이는 강선루(降仙樓)의 모습이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어 무척 인상적이었다.
빗물에 젖어 미끄러운 바윗돌 위를 옮겨다니며 카메라 노출을 바꾸고, 줌인/줌아웃을 하던 그 때 문득 떠 오른 상상 속 장면 하나.
우리가 알고 있는 옛날 이야기 '선녀와 나무꾼'의 선녀가 숨겨진 날개옷을 찾아 입고 원래 그녀가 살았던,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하늘나라로 다시 올라간 그 곳이 이런 모습, 이런 풍경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승선교 아래에서의 감흥이 잔잔한 여운을 남길 때 즈음, 다시 숲길로 올라와 닿은 곳 강선루(降仙樓).
초록 풀잎색과 붉은 누각의 자태는 강렬한 색감의 대비로 금세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강선루 아래에서 잠시 쉬어가는 시간, 산길따라 불어오는 깨끗하고 산뜻한 숲속 공기는 덤이었다.
강선루만 지나면 선암사 초입의 일주문(一柱門)에 닿는 건 시간문제.
아담한 일주문 뒤쪽 현판에는 ‘고청량산해천사(古淸凉山海川寺)’라 쓰여있는데, 선암사 옛 이름이 '해천사'임을 감안하고 이해하면 되겠다.
일주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처음 마주하게 되는 대웅전, 그리고 동서쪽에 각각 위치한 3층 석탑.
목탁소리와 스님의 염불소리가 사찰 내에 힘 있게 울려 퍼진다.
간간히 내리는 빗소리와 스님의 힘찬 기도소리가 조화를 이루어 고찰(古刹)을 둘러싼 공기의 색깔을 바꾸는 순간, 어느덧 내 눈길은 처마 밑 '풍경'에 머문다.
때론 혼자, 때론 벗과 나란히, 고즈넉한 사찰에서 가장 청명하고 청아한 울림을 주는 이.
그런 탓에, 자연이 인공적인 美를 단 한 가지만 품는다면 그것은 곧 '풍경'일 것이라 상상해본다.
3월이 절정이라는 선암사 매화나무, 선암매(仙巖梅).
활짝 핀 매화꽃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가까이 다가서니, 오랜 세월을 묵묵히 견뎌내고 살아남은 강한 내공이 풍겨져 온다.
선암매의 강건한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닮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언뜻 스치는 순간, 고개를 돌려 바라본, 가까이 내려앉아 더 자욱해 보이는 산안개.
뽀얀 솜사탕같이 달콤하면서도 부드럽고, 엄마 품처럼 아늑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역사적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선암사.
특히 6.25 전쟁으로 절터의 상당 부분이 소실되어, 예전에 비해 지금은 그 규모가 상당히 축소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추어의 눈으로 보아도 사찰의 가람배치가 아기자기한데다 주변 풍광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려, 지루할 틈 없이 천년 고찰의 다양한 면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어슬렁어슬렁 사찰을 둘러보는 내내, 주변에 계신 신들께 조용히 기도했다.
지금 내 삶에서 꼭 필요한, 단 한 가지 절실한 소원.
그들이 내 마음에 다가와 공감하고 내 진심을 조금이라도 알아주길,
가슴으로 말하는 내 목소리에 잠시라도 귀 기울여주길,
깊디깊은 아픔을 한 번쯤은 부드럽게 품어주길
그래서 온 마음으로, 온 가슴으로 환하게 다시 웃을 수 있기를.
선암사에서 나오는 길,
내딛는 발걸음마다 추억과 사랑, 그리움 한 조각씩 남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