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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Aug 21. 2017

순천 기행#1, 순천만 습지에서

생명의 신비, 자연의 섭리

순천만 습지

2006년, '물새 서식처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인 람사르 협약(Ramsar Convention)에 등록된 순천만 습지.


수개월 전부터 계획한 순천-여수-보성-담양을 거치는 남도기행의 시발점이 된 곳.


2시간 정도 '순천만 국가정원'을 가볍게 한 바퀴 돌아본 후, 미래형 자동차를 닮은 스카이 큐브(Sky Cube)를 타고 10여분 만에 습지에 도착.


내 키만큼 자라난 갈대밭과 반갑게 인사하는 것도 잠시, 구름 낀 하늘에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춤추는, 초록빛 갈대밭
강하구 갈대밭, 비상하는 두루미

습지를 가로지르는 데크를 걸어가며 만난 짱둥어와 온갖 종류의 게들.          

게 & 게구멍
게 & 짱둥어

곳곳에 뽕뽕 뚫려있는 수많은 게 구멍을 오가는 그들의 앙증맞은 자태에 연신 ‘귀여워!’를 연발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


설레고 신기하고 재밌고 흥미로웠기에 다시 10대 소녀로 돌아간 듯, 목을 한껏 쭉 빼고서 이들을 지켜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심지어 강 주변에서 먹이를 구하는 두루미들이 남긴 발자국조차도 사랑스러웠으며,  

그들의 삶을 둘러싼 자연환경은 그저 '놀랍고 경이롭다'는 말 외엔 다른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꽃잎을 닮은, 두루미 발자국

바람에 너울너울 흔들리는, 춤추는 초록빛 갈대는 그들의 가을색을 상상하게 하여 그때쯤 다시 오라고 내게 말을 거는 듯했다. 

빗속, 갈대밭을 걷다
순천만_허형만

새떼들 솟아오르고
갈대 눕는다

대대포구로 떨어지는 해
뻘 속을 파고드는데

묻지 마라
쓸쓸한 저녁의 속내를

만월 일어서고
별 하나 진다
용산 전망대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가운데, 흔들 다리를 건너 소나무 우거진 산길을 올라가 닿은 '용산전망대.'

그곳에서 만난 동글동글 군락을 이룬 습지와 갯벌.          

S자 갯골 그 곳에, 동글동글 습지

지구별에 내려온 외계인의 놀이터인 듯, 오묘하고 신비로운 모양새에 탄성을 연발하고 기대를 뛰어넘은 풍광에 넋 놓고 있던 시간.

신기하고 신비로운 갈대의 생태
습지 & 갯벌

비 내리는 용산전망대에 한참 동안 머물며 강하구, 습지, 그리고 갯벌을 조망하던 그때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이 곳에서 기대했던 일몰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컸으나 


금세 그 마음을 밀어낸 건 서정적이고 꽤 낭만적이며, 또 한편으로는 상당히 멜랑콜리한 비 내리는 습지의 모습.


한없이 신비로우나 이유 없는 애잔함이 한가득

넘쳐나는 평온함과 행복감 뒤 어느새 밀려오는 알 수 없는 서글픔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을 연발하다 급격하게 몰려오는 가슴 시림

빗소리에, 안경에 닿는 빗물에 번져가는 진한 그리움


그곳에 서서 습지를 바라보는 내내, 

작디작은 내 심장엔 온갖 감정이 회오리치고 있었다.


순천만 (작자미상)     

당신이 삶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할 무렵
당신은 먹먹한 외로움에 옆구리를 쓸어안으며
이곳 순천만을 찾아도 좋다
그러면 더 오래된 외로움이 당신을 안아주리라    
 
그 텅 빈 적막에 저녁이 찾아오면 당신은 젖은 눈시울이 되어
순천만의 일몰을 바라 보아도 좋다
마침 머나먼 나라에 날아온 철새 떼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리라
당신은 이 대자연의 화음에 말없이 호응하면 된다     

숨죽인 채 이 광경을 바라보라
눈을 들어 흑두루미와 먹황새의 고고한 몸짓을,
노랑부리 저어새떼들의 그 숨 막힐 듯 황홀한 군무를 바라보고
눈을 내려 바람에 속삭이는 칠면초 군락을 쓰다듬어 보라

더 어두워져서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
이 생명의 순례길을 가슴속에 새겨두고 
영혼의 발걸음으로 되밟아 올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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