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신비, 자연의 섭리
순천만 습지
2006년, '물새 서식처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인 람사르 협약(Ramsar Convention)에 등록된 순천만 습지.
수개월 전부터 계획한 순천-여수-보성-담양을 거치는 남도기행의 시발점이 된 곳.
2시간 정도 '순천만 국가정원'을 가볍게 한 바퀴 돌아본 후, 미래형 자동차를 닮은 스카이 큐브(Sky Cube)를 타고 10여분 만에 습지에 도착.
내 키만큼 자라난 갈대밭과 반갑게 인사하는 것도 잠시, 구름 낀 하늘에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습지를 가로지르는 데크를 걸어가며 만난 짱둥어와 온갖 종류의 게들.
곳곳에 뽕뽕 뚫려있는 수많은 게 구멍을 오가는 그들의 앙증맞은 자태에 연신 ‘귀여워!’를 연발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
설레고 신기하고 재밌고 흥미로웠기에 다시 10대 소녀로 돌아간 듯, 목을 한껏 쭉 빼고서 이들을 지켜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심지어 강 주변에서 먹이를 구하는 두루미들이 남긴 발자국조차도 사랑스러웠으며,
그들의 삶을 둘러싼 자연환경은 그저 '놀랍고 경이롭다'는 말 외엔 다른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바람에 너울너울 흔들리는, 춤추는 초록빛 갈대는 그들의 가을색을 상상하게 하여 그때쯤 다시 오라고 내게 말을 거는 듯했다.
순천만_허형만
새떼들 솟아오르고
갈대 눕는다
대대포구로 떨어지는 해
뻘 속을 파고드는데
묻지 마라
쓸쓸한 저녁의 속내를
만월 일어서고
별 하나 진다
용산 전망대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가운데, 흔들 다리를 건너 소나무 우거진 산길을 올라가 닿은 '용산전망대.'
그곳에서 만난 동글동글 군락을 이룬 습지와 갯벌.
지구별에 내려온 외계인의 놀이터인 듯, 오묘하고 신비로운 모양새에 탄성을 연발하고 기대를 뛰어넘은 풍광에 넋 놓고 있던 시간.
비 내리는 용산전망대에 한참 동안 머물며 강하구, 습지, 그리고 갯벌을 조망하던 그때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이 곳에서 기대했던 일몰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컸으나
금세 그 마음을 밀어낸 건 서정적이고 꽤 낭만적이며, 또 한편으로는 상당히 멜랑콜리한 비 내리는 습지의 모습.
한없이 신비로우나 이유 없는 애잔함이 한가득
넘쳐나는 평온함과 행복감 뒤 어느새 밀려오는 알 수 없는 서글픔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을 연발하다 급격하게 몰려오는 가슴 시림
빗소리에, 안경에 닿는 빗물에 번져가는 진한 그리움
그곳에 서서 습지를 바라보는 내내,
작디작은 내 심장엔 온갖 감정이 회오리치고 있었다.
순천만 (작자미상)
당신이 삶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할 무렵
당신은 먹먹한 외로움에 옆구리를 쓸어안으며
이곳 순천만을 찾아도 좋다
그러면 더 오래된 외로움이 당신을 안아주리라
그 텅 빈 적막에 저녁이 찾아오면 당신은 젖은 눈시울이 되어
순천만의 일몰을 바라 보아도 좋다
마침 머나먼 나라에 날아온 철새 떼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리라
당신은 이 대자연의 화음에 말없이 호응하면 된다
숨죽인 채 이 광경을 바라보라
눈을 들어 흑두루미와 먹황새의 고고한 몸짓을,
노랑부리 저어새떼들의 그 숨 막힐 듯 황홀한 군무를 바라보고
눈을 내려 바람에 속삭이는 칠면초 군락을 쓰다듬어 보라
더 어두워져서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
이 생명의 순례길을 가슴속에 새겨두고
영혼의 발걸음으로 되밟아 올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