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을 거의 끝낼 때쯤, 내 생일 그즈음에, 우리가 호주에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한테는 청천벽력이었다. 내 친한 친구들, 하교하며 먹는 던킨 도너츠, 내가 좋아하는 우리 할머니.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게 없는 곳으로 가게 된다니.
호주 옆에 있는 뉴질랜드에 놀러 갔을 때, 친구가 "야 너 뒤질랜드 갔다 왔대며?"라고 놀릴 때의 비슷한 충격이었다.
더군다나 옆에 있는 고모들은 내게 겁을 줬다.
"호주에 가면 다 영어로 해서 말도 안 통하고, 친구들도 노랑머리에 파란 눈일 텐데, 너 거기서 어떻게 살래?" 셋째 고모가 말했다.
그렇게 처음 발을 디디게 된 호주는 참 색달랐던 것 같다. 경기도 작은 동네에서 살던 내가, 호주 공항에서 팜 나무를 볼지 어디 알았겠는가? 호주의 하늘은 나를 반겨주듯이 참 맑고 푸르렀다. 호주가 조금 마음에 들 것 같았다.
몇 주 전 시드니 본다이 비치에서 찍은 사진. 탁 트인 하늘과 고운 모래가 아름답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엄마 손에 이끌려 간 초등학교에 나랑 다르게 생긴 사람만 있다는 것에 첫 충격이 왔다. 두 번째론 내 소개를 하라고 선생님이 말했을 때, 머릿속으로 되뇐 "Hi!" 한 마디밖에 못했다는 것에 또 충격. 그리고 친구들이 전학생인 나를 막 둘러싸서 속사포로 질문을 하는데, 이해가 하나도 안 된다는 것도 너무 충격이었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을 겨우 피해 도착한 것이 도서관이었다. 한국에서도 책을 좋아하던 나는 도서관을 즐겨 찾았기에 도서관이 너무 기대되었다. 내 호주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좀 편안하게 책을 열려고 했는데, 이게 웬걸. 내가 하나도 모르는 꼬부랑글씨로 가득 찬 페이지만 내 눈에 들어왔다. 위안을 찾기 위해 찾은 책이, 내 마음에 더 큰 파동을 몰고 왔다.
내가 힘들 때 나와 함께였던 책이, 그런 책이, 변했다.
부모님도 나름의 고충을 가지고 계셨다. 새로운 나라에 이민을 한다는 건 참 많은 부분으로 힘들었다. 언어적인 부분이나, 문화적인 충돌, 그리고 그 나라의 방식을 이해하기 힘들어하셨다. 그리고 장녀인 나에게 고충을 털어놓으셨다. 그리고 덧붙히셨다. "너는 어려서 적응하기 쉬워서 좋겠다."
어린아이들은 적응을 잘할 거라던 부모님의 기대에, 사실 나는 아니라고, 적응 못 하고 있다고, 말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내가 파고든 것은 내가 한국에서부터 좋아하던 한국 책. 내 나라와 호주에 있는 나를 연결시켜주는 다리가 되었다. 장르를 불문하고 길고 긴 역사 책부터, 각종 추리 소설들. 그리고 성경책까지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다. 아주 가끔씩 한국에서 택배를 보내주실 때 딸려 오는 책 한 두 권이 그렇게 소중할 수 없었다.
벽난로 위에 모아둔 책들. 나이가 들면서 책을 많이 버렸지만 이 책들은 다시 읽고 싶을 것 같아 모아두었다.
그렇게 읽고 또 읽다 보니 어느새 중학교 이학년이 되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차차 성장해갔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영재교육원을 다니며 똑똑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 곳에서 나는 시계도 읽지 못하는 지진아였다. (덧: 호주에서는 10시 45분 이렇게 말하는 대신, quarter to 11, 즉 11시 15분 전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자신감에 차 있던 내가 조금씩 현실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한국에서의 특출함은 이 곳에선 아무 의미도 없었다. 나는 영어로 말하는 것부터 더듬거리는 아이였으니까.
초등학교 4학년 말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나는 한국 책으로 나를 지탱하며 조금씩 호주의 세계를 넓혀갔다. 영어를 어느 정도 깨우쳤고, 내 껍질에서 벗어나 사람들과 조금씩 조금씩 친해졌다. 그 어둡고 힘들었던 시기에 나와 함께 했던 셜록 홈즈와 아르테미스 파울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