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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nChoi Jul 24. 2024

정리되지 않는 존재

조금씩 살아온 자취를 정리한다.

기준은 추억물품은 미련 없이 버릴 것, 앞으로 필요하다 싶은 것만 남길 것

이제 어색해서 착용하기 어려운 젊은 시절의 옷이나 가방이야 

망설임 없이 정리하며, 비어지는 공간만큼 속이 후련하다.     

저장된 전화번호와 카카오톡 역시 정리한다. 


간혹 브레이크가 걸리는 순간이 있다.

초등학교 이후로 내내 써온 한 박스도 넘는 일기장 

깨알같이 써둔 각종 원고와 메모

종이 여백에 수시로 등장하는 사랑하는 내 강아지 그림

그런 것들은 정리하기 전 5초 정도는 찡하다.


‘그래... 이렇게 살아왔구나. 열심히 살았으면 된 거지.

잘 가라 내 청춘, 내 젊은 날의 열정이여.'

무언가 물컹한 감정이 올라오기 전에 빠르게 처리해 버린다.

나에게 소중한 용품인 것을, 나 아니면 누구에게도 의미가 없는 것을.

추억팔이하며 미련 둘 필요가 없다고 뇌이며 입술을 질끈 깨문다.     


문득문득은 당혹스러운 순간을 맞는다.

간직해 온 편지를 보낸 사람의 이름을 보고도 기억이 나지 않는 순간

사진 속 함께 웃고 있는 사람이 당최 누군지 모르겠는 순간

우리 우정 영원하자며 연필글씨로 나눈 카드의 주인공이 아무리 기억세포를 끌어올리고, 초등학교 때 앨범을 뒤져봐도 실루엣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지나간 삶 속에 한 자락 차지했던 많은 사람, 물건 그리고 장소, 의미 조차

어느 순간에 정리되어 버렸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정리되었다.     

한층 가벼워지고 느려진 이제부터의 여정에도

여전히 함께 하는 존재들, 그 의미, 지금 이 장소... 하늘, 공기, 땅, 그리고 우주까지도

참 소중하고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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