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년 여름에 나는 강음현으로 귀양을 갔었다. 그때 한창 가물어서 쇠를 녹이고 흙을 태울 듯하였다. 길을 떠난 후로는 삼복더위가 바야흐로 치열하여 온 누리가 불이 이글이글한 화로 속과 같았다. 해가 올라오면 길에 다니는 사람조차 끊어졌다.
요즘 표현을 빌리면 아스팔트가 녹는 더위이다. 계절이 오고 감에 따라 추위도 겪고 더위가 몰아치지만, 해마다 보내기 어렵다.
<추위에 시달리다>
빙판 위의 찬바람으로 적수가 하나 생겼다
눈 속의 따끈한 술은 천금과 같구나
내년 삼복더위도 쇠도 녹일 듯할 텐데
이날 이 심정을 잊지 말아야겠다
아무리 겨울 추위를 기억하려 해도 여름 더위는 역시 힘들다. 옛 선비도 삼복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피서를 떠났다.
개운진 뒤에 있는 정자에 올랐다. 울창한 교목과 푸른 대숲이 3면을 가리고 바다 빛이 나무 사이로 은은히 비쳤다. 그 상쾌한 맑은 바람소리로 사람을 녹일 듯한 삼복더위도 느낄 수 없었다. 의관을 풀고 베개에 기대어 활쏘기를 구경하다 돌아왔다.
한 여름이면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가 풍류를 즐기며 잠시 더위를 피했다. 이 자리에 함께 하면 더욱 즐거운 게 벗과 술이었다.
작년에도 피서하고 올해도 또 피서하고
‘하삭의 유풍’을 우리들이 이어가는구나
늙어 가니 봄가을 쉽게 절서가 바뀌는데
누각에 앉았노라니 완연히 신선이로세
누각에 앉아 여러 벗들과 만나 피서하면서 완연히 신선이 되었다면서 지은 시의 한 구절이다. ‘하삭의 유풍’이란 중국 후한 말에 유송(劉松)이 원소(袁紹)의 자제와 함께 하삭 즉 허베이(河北)에서 삼복 더위를 피할 목적으로 밤낮으로 술자리를 베풀어 곤드레가 되도록 술에 취해 지냈던 고사에서 유래한다. 이열치열을 위해 ‘이주치열’(술로서 더위를 다스린다)한 셈이다.
조선시대에도 삼복에 피서를 목적으로 벗들과 밤낮으로 술을 마시며 취한 상태로 보냈다는 일화가 종종 보인다. 이때마다 핑계처럼 하삭의 술자리 고사를 인용하곤 했다. 추천할 피서법은 아니지만 물 좋고 산 좋은 곳에서 가족이나 가까운 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면 더위를 잠시 달랠 수 있는 좋은 피서법이리라.
어릴 때 한 여름에 계곡 수영장이나 바닷가에 갔던 기억이 난다. 수영을 못할뿐더러 본디 야외 활동에 신나 하지 않아 별로 즐기지는 않았다. 그 보다 선풍기 바람 솔솔 부는 집에서 수박 먹으며 편히 쉬는 것을 더 좋아했다. 선풍기는 국민학교 다니던 내 나이보다 오래된 신일 선풍기였다. 파란 선풍기 날개가 돌아가며 내는 바람에 더해 엄마가 부채로 살랑살랑 이마에 땀을 식혀주곤 하였다.
그때도 분명 한 여름 더위가 쇠도 녹이고 흙을 태울만한 더위로 집안이 화로 속 같았을 텐데 지났으니 더위는 기억나지 않는다. 머리칼을 살살 날려주던 선풍기 바람과 엄마의 부채 바람만이 아스라이 어른거린다. 지구 온난화로 갈수록 견디기 힘든 폭염이 온다. 이젠 피서를 궁리하기에 앞서 지구의 고통을 체감하며 속이 더 화로같이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