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랬어요.
“나는 그분이 마치 며느리를 망신 주기 위해 헌 옷만 입으시는 것 같아 그분이 싫었다. 그분의 초라하던 헌 옷 때문에 속도 많이 썩었고 분노를 걷잡을 수 없을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박완서,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세계사, 2002. 151쪽)
말년에 외출을 못 하고 들어앉아 있는 뒤부터, 낡은 헌 옷만 입고, 그나마 잘 안 갈아입는 시어머니에 대한 박완서 작가의 소회다.
이 대목을 읽는 순간, 오랫동안 꽁꽁 여미어 숨겨두었던 감정의 항아리에 벼락처럼 금이 갔다. 내 마음속 어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소리 내어 명확히 말하지 못했던 감정을, 글로 표현조차 못했던 되새김을 박완서라는 이름이 대신 읊어 주었다.
저 글은 시어머니가 싫었고, 분노를 걷잡을 수 없었을 때도 많았다는 공개적이고 영원한 선언이다. 인류가 망하고, 모든 책이 폐기 처분되지 않는 한 영원히 남을 이 미움과 분노의 고백에 나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박완서 작가처럼 존경받는 작가가 시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분노를 활자로 못 박은 용기가 존경스러웠다
나는 한 번도 드러내지 못하였다. 결혼한 뒤 지금까지 함께 살았던 시절도 있었고, 흔한 말처럼 국이 식지 않을 거리에서 나란히 살고 있다. 속이 부대끼는 일은 어쩌면 매일 있었고, 그 감정을 말로 소리내어 표출하고 싶어 입술이 저절로 달싹인 날도 많았다. 하지만 매 순간, 내 마음의 말은 소리로 나오지 못했다. 그게 나를 길러준 내 어머니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고, 나의 인격을 지키는 일이라 여겼다.
그렇게 몇십 년이 흘렀다. 여전히 나는 말하지 못했다. 어제도 그렇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정작 잊힌 건 하나도 없다. 말하지 않은 미움, 이름 붙이지 못한 억울함, 설명할 수 없었던 상처가, 내 안 어딘가에서 헌 옷처럼 또아리를 뜬 채 남아 있다.
박 작가의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어디에든 털어놔야 하는 문제구나, 미웠던 언행도, 분노에 휘둘렸던 시간도, 다 내 삶에 굵은 명조체로 적혀있기 때문에. 그것을 소리 내어 큰 소리로 한번쯤은 읽는 것은, 누군가를 탓하는 게 아니라, 결국은 나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하고 보듬는 일이라는 걸.
그래서 오늘, 나는 조심스럽게 적어둔다.
나도, 그랬노라고.
나도 힘들었노라고.
침을 꼴깍 삼키며, 삭히는 법밖에 몰랐던 그 시절의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걸어본다.
추서(追書) - 뒤늦은 고백
나는 모든 말의 주어가 ‘나’인 사람이 싫다.
어떤 상황이든, 누가 어떤 말을 하건, 언제나 다른 이의 말을 가로채
‘나는...’이라며
자신의 말만 늘어놓는 사람이 싫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줄 줄 모르고, 다른 사람의 한숨을 들을 줄 모른다.
그런 사람은 삶에서 가장 귀한 것을 놓친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살아 있으면서도 살아낸다는 게 무엇인지
끝내 배우지 못한 채 늙어간다.
어린아이도 아닌데, 평생 미성숙한 어린 사람으로 늙어간 사람,
그 늙음을 보는 일이 참 싫다.
옛 선비의 글을 읽으니, ‘사랑도 미움도 정 때문에 생긴다’고 하였다(갈암집 26 행장)
아, 이 무섭고 질긴 정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