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onChoi Sep 30. 2020

도로 ‘다섯 살’이 되면

-자아를 잃었을 때

'도로 다섯 살'이 됨은, 오래전 다섯 살 무렵부터 눈뜨기 시작한 자아를 잃어버림이다.

다섯 살 시기는 발달의 질적 전환기라는 말이 있다.  자아의식이 강해지는 유아 사춘기라고 한다.

거꾸로 다섯 살이 됨은 그 자아를 영영 잃어버림이다.  알츠하이머, 치매 등으로 부른다.

 

알츠하이머병으로 익숙한 치매는 그 증상과 종류가 다양하다고 한다. 어느 경우든 대개 기억, 언어, 판단력 등 여러 영역의 인지 기능이 감소하여 스스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워진다.

인간으로서 매우 두려운 자아 상실이라는 질환이다.


옛 문헌에 치매의 용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만 조선시대에 형률을 적용함에 사정을 감안해 주는 질병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대명률직해 1).

아주 드물게,

 치매처럼 느닷없이 치미는 광기 / 슬퍼라 지나간 일 후회한들 무엇하리"(《택당선생 속1)

라는 시구처럼 분노를 조절 못하거나 어리석은 행동을 빗대어 사용한 경우도 보인다.


노망은 치매와 달리 그 용례가 제법 많이 보인다.  오래도록 노망을 적극적으로 치료하려는 질병으로서가 아니라 노인에게 나타나기 쉬운 언행 정도로 치부해 왔다. 조선 후기 성리학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조익(1579-1655), 사직을 청하면서 자신의 언어 사용이 여의치 않다고 설명하였다.


신이 고지식하고 우매하고 촌스럽고 졸렬하다고는 하지만 말을 할 때마다 번번이 망발을 하곤 하니 이것 역시 노망해서 그런 것이라고 여겨집니다.”(《포저 집》6)


 조선 후기 문신 허목(1595-1682)도 비슷한 이유를 들어 관직에서 물러나기를 청하였다.


 "신은 노쇠하고 정신이 오락가락하여 인사를 돌보지 못한 지 오래입니다. 비록 집에서 지낼 때라도 기력이 나른해져서 모든 것이 남들과 같지 못하며, 아침저녁 사이에도 인사의 명암이 확연히 달라질 정도로 기복이 심합니다. 노복들을 불러 심부름을 시킬 때는 어른과 아이를 착각하여 뒤섞어 부르고, 언어가 망령 되고, 앞뒤 순서가 맞지 않으며, 병을 앓느라 정신이 몽롱하여 죽은 듯도 하고 꿈을 꾸는 듯도 합니다." (《기언 별집》4) 

 

허목이 어떤 상태였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노년에 나타난 기억력 감퇴와 언어 사용의 문제 등을 들어 자신이 노망이 들었다고 하였다. 다른 사람이 노망이라 일컬은 경우도 물론 있다.

 

"재종조(할아버지의 사촌)인 생원 이시행은 올해 85세로 외삼촌께 걸식하고자 평산 지방으로부터 5일을 걸어서 그저께 도착하였는데, 노망기가 심하였다. "(《귀암 집》11 / 1660)

 

직임을 내리기에 앞서 승정원 관리에게 직접 가서 노망 여부를 살펴보라는 왕명이 내려진 일도 있다. 담당 관리는 즉시 그를 불러 보았는데, 비록 백발이기는 하나, 대화를 해보니 말에 어긋남이 없었습니다.”라고 보고하였다.(선조 2275일 왕훈이라는 사람의 임명에 관한 기사)


은퇴는 빨라지고 기본 수명은 길어지면서 노년의 삶을 어떻게 준비하여 보다 잘 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노후자금 마련을 비롯해 운동, 건강, 취미, 친구 등 많은 요소가 있다. 그런데 막상 내가 만일 자아를 상실했을 때, 그토록 애달프게 지켜보며 평생을 사랑한 자식을 포함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상실하고 나 자신조차 누구인지 분간하지 못할 때, 그에 대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그토록 찾아 나서고, 그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하며 정립해 온 자아의 상실이며 붕괴 앞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하는가.

 

치매를 위한 보험, 돌보는 시설과 인력의 확충 등 여러 준비와 잘 챙겨봐야 할 문제에 관한 유용한 조언이 있다. 정작 자아를 잃어가며 투병해야 할 당사자가 나라면 그 뒤에 나는 어떡해야 하는가. 그런 날이 오지 않으면 좋겠지만, 불행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으니 나만 피해 가라는 법은 없다.


어릴 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일기를 써오고 있다.  초등학교(필자는 국민학교) 시절 비뚤배뚤 연필로 쓴 일기, 만년필에 빠져 살던 10대와 20대에 공책 가득 빽빽하게 써 놓은 일기, 아이의 성장이라는 신비함에 도취해 써둔 일기, 어느 시간부터인가 간편한 필기구를 사용해 수시로 끄적거려둔 일기...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 구석에 자리한 이런저런 삽화들. 그리고 '지천명' 가까이도 못 가지만 가장 나 다운 나를 만나는 것 같은 최근 몇 년의 일기인지 절규인지의 기록들..


그 온갖 형체의 글씨에 담긴 나를 더 이상 내가 아닌 내가 읽게 되는 날이 와도 공감하기를 바란다.

아이를 향해 드러내지 못한 마음을, 평생을 보아 온 엄마가 아닌 다른 모양새의 엄마를 마주했다면, 아들이 읽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에게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 당신은 기억을 못 하겠지만, 당신은 이런 사람이었다고, 나에게 이런 엄마였다고.


삶에서 만난 수많은 터널은 끝이 있고, 거센 비도 결국 그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만약 어느 날, 모두 다 화창한 봄날을 누려도, 나 혼자만의 날에 그치지 않는 비가 내릴 때...

진솔하게 나를 담은 그 글을 통해 나는 누구였는지 듣게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를 인지하는 나 자신'으로 세상에서 훌훌 날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어느 날, 만일>


어느 날, 만일 내가

그토록 가슴 졸이던 사랑을

모두 잊고

내 하나뿐인 아들을

몰라보아도


빼곡히 꽂혀 먼지 쌓인

책의 주인이

평생 그 책에 묻혀 산

나 자신인 줄 몰라도


그대여,

부디 저에게 말해 주세요.

너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고.

 

사람을 사랑하고

삶에 감사하는...



글/그림 Seon Choi



※ 인용문과 그 해석의 출처는 한국고전번역원이 제공하는 한국고전종합 DB.

※ 글 제목의 그림은 이암(1499-?), <어미개와 강아지>의 일부, 전체 원본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작가의 이전글 결국은 모두 ‘아침형 인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