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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모두 ‘아침형 인간’

-24시간 울리는 알람

by SeonChoi

알람에서 해방되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그날 일거리를 챙겨 총알같이 튀어 나갈 일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백수가 된 뒤에 얻게 된 자유이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생활주기는 여전히 평생 지켜오던 올빼미 형이다. 카톡이 오가거나 문자를 나누는 시간을 보면 오래 알고 지내온 벗들도 대충 비슷하다.


학교 언저리에서 전공과 관련한 길만 걸어오다 보니 늘 가까이 있는 이들이 대개 20대 학창 시절부터 알아온 사람들이다. 연배가 엇비슷한 동학들도, 학창 시절에는 꼼짝 못 하게 차이가 있는 선배도, 어느 순간부터 모두 대충 서로 희끗희끗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2003년 기상시간을 새벽 5시로 제시한 책이 크게 화제에 오르며 아침형 인간 열풍이 불던 어느 날이었다. 선후배를 망라한 동학들이 모여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 아침형은 개인차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지향해야 할 인간형으로 강조될 지경이었다.


그 자리에 함께 했던 벗들은 기억에 거의 8대 2의 비율로 저녁형 인간이 많았다. 우리는 저마다의 이유로 저녁형을 옹호하고 정당화하려는 부질없는 논리를 펴댔다. 갑자기 한참 위 선배가 좌중을 제압하는 한 마디를 던졌다.


“늙으면 모두 다 아침형 인간이야! 더 나이 들어봐! 새벽에 그냥 저절로 눈이 떠져!


그 말은 정말 기쁜 소식이었다. 올빼미 같은 습관이 일찍 일어나는 새처럼 바뀔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어느 무렵부터인지 이른바 저녁형 인간, 아니 완전 올빼미 형으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불편한 점은 나의 신체리듬에 맞춰 일정을 조절하는 일이 아니었다. 건강을 생각해 일찍 자라는 등 의미 없이 가해지는 가벼운 질타와 조언이었다. 더욱이 밥도 못 먹은 듯 마른 체형에 핏기 하나 없는 얼굴 모양새는 더욱 그런 ‘염려’를 듣고도 남을 법하였다. 원인은 올빼미처럼 사는 게 아니라, 능력에 부치게 해야 할 일이 많아 체력적으로 자주 지칠 뿐이었다.


아침형과 저녁형에 대한 관점이 이제는 많이 바뀌었다. 각자의 생활주기에 따라 열심히 살면 그만이다. 어떤 형이든 무슨 상관이 있으리.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새벽에 일찍 일어나 부지런해야 하는가이다. 여기 맹자의 가르침이 있다.


“새벽에 닭이 울자마자 일어나서 부지런히 선행을 힘쓰는 자는 순 임금의 무리요,

새벽에 닭이 울자마자 일어나서 부지런히 이익을 구하는 자는 도척(盜蹠)의 무리이다.

순 임금과 도척의 구분을 알고 싶은가?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단지 이익을 탐하고 선행을 좋아하는 그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맹자》 진심 상)


맹자는 새벽에 닭이 울자마자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임 자체보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무엇을 추구하느냐가 관건임을 지적하였다. 어떤 생활주기를 갖고 살던 삶에 부지런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무엇을 위한 부지런함인가? 무엇 때문에 새벽 5시부터, 또는 새벽 2~3시까지 분주히 보내는가?


부지런히 움직여 이루려는 목표가 있음은 숭고한 삶의 현장이다. 하지만 세상 속에서 그 목표는 수시로 흔들리거나 위협당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나 붙잡고 있는 가치가 흔들리거나 무너질 때 분노하거나 좌절하기 쉽다.


“군자는 의리(義理)에 밝고 소인은 재리(財利)에 밝다”

(육상산, 《심경부주》 권4 계명이기장)


군자는 옳은 도리를 좋아하고, 소인은 재물과 이익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현대 사회에서 재물과 이익 자체가 부정적인 가치는 아니다. 그런데 재물과 이익은 지극히 가변적이고 불안정한 속성을 갖고 있다. 그것을 목표로 달린다면 언제든지 위협받고 흔들릴 수 있다.

오늘날의 의미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재리'에서 그친다면 그릇이 작은 인물인 ‘소인’이다. 큰 그릇은 재물과 이익을 뛰어넘어 불변하는 가치인 '옳은 도리'를 바라보는 ‘군자’ 같은 인물이다.


노년으로 접어들면 생체리듬이 앞당겨지는 현상이 나타나 초저녁에 잠이 오고, 새벽에 일찍 깨게 된다고 한다. 물론 개인차가 있지만, 아침형 인간으로 가는 게 자연의 섭리라는 뜻이다. 올빼미 형인 나의 생활 주기도 차차 바뀌기를 기대해 본다. 그렇더라도 아마 내 모양새는 여전히 미숙하고, 실수투성이며 때로는 어리석기 짝이 없을 정도일 것임이 분명하다.

다만 어제보다는 오늘이 조금은 더 좋은 사람이 되려는 소망을 품고 부지런한 인간이었으면 한다. 알람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올빼미가 되었지만, 선행과 옳은 도리를 위해 새벽부터 부지런한 마음가짐은 24시간 알람처럼 늘 울려지고 있기를 바라본다.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도>, 간송미술관 소장.

: 꾀꼬리 소리는 맑고 고운 아침 새소리의 대명사와도 같다. 나귀를 타고 가던 선비가 문득 멈춰 서서 버드나무 가지 위의 꾀꼬리 소리를 듣고 있다. 화폭 왼편 위쪽에는 그림에 대한 시가 쓰여 있다.


언덕 위 버들가지 위를 어지러이 오가는 저 꾀꼬리, 안개와 비를 엮어 봄의 강(춘강)을 짜는구나

라고 노래하였다.

※ 인용문과 그 해석의 출처는 한국고전번역원이 제공하는 한국고전종합 DB.

※ <마상청앵도> 설명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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