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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nChoi Aug 22. 2021

역사의 심판과 대화

- 역사학 전공자의 역사와의 동행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을 비롯해 전공 학문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는 것에 관한 여러 종류의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런가 하면 전공에 대한 정형화된 관념 때문에 전공을 밝히기 조심스럽다는 하소연도 있다. 


학창 시절에 음식점에 우르르 몰려가 밥을 먹으려는 찰나에 한시(漢詩)라도 액자에 걸려 있으면 뭐라고 쓰여 있냐는 질문이 한국사 전공자인 나에게 날아들었다. 그것도 초서로 휙휙 쓰인 글을.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는 사극을 역사적 진실로 받아들여 보다 상세한 내용(뒷이야기?)을 물어오는 통에 난감한 경우도 많았다. 각자의 전공과 관련한 일화는 저마다 있으리라 생각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국사가 전공이라고 하면 대개 두 가지로 반응이 갈린다. 대개는 학창 시절 역사를 싫어했다는 고백이며, 아주 가끔 역사를 좋아한다며 반색하는 경우도 있다. 보다 쉽게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역사의 흐름을 잡아서 재미와 이해를 돕자는 취지로 쉽게 풀어 이야기하듯 서술한 개설서를 출간한 일이 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좌도 마다하지 않고 가능한 쉽고 재미있게, 하지만 학문적으로 전하려 노력하였다. 


하지만 사적인 모임이나 만남에서는 전공을 얼버무리거나 잘 밝히지 않는다. 때로 전공이 드러나면, 먼저 나서서 대화 주제를 돌리곤 했다. 한자를 물어오거나 사극을 역사로 단정하며 던지는 질문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역사를 정치와 밀가루 반죽처럼 엉겨 붙여서 던지는 질문 때문이다. 하... 그에 비하면 차라리 사극에 나오는 후궁의 작태에 대한 질문은 얼마나 즐거운 질문이었던가!


역사학은 학문을 넘어 정치만큼 민감한 이슈가 버렸다. 정치인은 저마다 역사가 심판할 거라고 말하고, 역사가 두렵지 않으냐고 한다. 역사에 대한 견해도 ‘사관’(史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 내지는 입장)이 아니라 ‘정치적 성향’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이런 현상 앞에서 역사서의 편찬을 중요한 국가적 사업으로 실행한 조선시대 정조가 한 말을 다시 생각해 본다. 정조대 활동한 문신으로 세종의 아들 광평대군 이여의 후손인 이명연(1758~?)이 있다. 그는 장문의 상소를 올려 당시의 잘못된 폐단을 극렬히 지적하고, 국왕의 잘못을 과감하고 직설적으로 지적하며 고칠 것을 간언 하였다. 이 상소가 올라오자 대신을 비롯하여 다른 언론 관원이 합심하여 이명연을 끊임없이 탄핵하였다. 하지만 정조만이 홀로 끝까지 이명연을 옹호하며 그의 충성을 인정하였다. 


이명연을 벌할 것을 빗발치게 청하는 관료들 앞에서 정조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힘써 이명연을 구해 낸 것은 이명연 한 사람만을 위함이 아니었다. 후세에 역사(歷史)를 바르게 잘 보는 자가 있으면 혹시라도 내 마음을 살펴 알 것이다.


정조가 후세의 역사가에게 건 기대처럼, 역사는 지금 이 시대의 내가 지난날 살았던 사람의 마음과 상황을 잘 살피고 헤아림이다. 심판하거나 징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통하기 위해서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영국 역사학자 카(E.H. Carr)의 유명한 말처럼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과거와의 소통을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위한 안목과 구상을 좀 더 잘해나가기 위해서이다. 


한 개인도 지난날의 삶을 돌아봄이 지금의 나를 심판하거나 징벌하기 위해서는 아니지 않은가. 과거의 나에게 말을 거는 까닭은 그 대화를 통해 지금의 나를 돌아보고, 어루만지고 격려하며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서이다. 그 대화에서 무엇을 느끼고 얻을 것인가는 각자가 지닌 안목의 수준이라는 생각이다.


헛점 투성이, 허물 많고 부족함만 기억나는 과거만을 끄집어 내어 나를 심판한다면 나의 대화는 참으로 편협함이다.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 채 내가 지닌 유익만을 회상한다면 나의 대화는 심하게 오만함이다.  보다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는 숙제는 살아있는 한 마감되지 않으니, 전공을 살려 나와의 대화를 잘 해나가 보려 한다. 


<도란도란>


필연으로 이어지는 영원한 동행

그 동행은 대화를 나눔이며

갈 길을 일러주는 현명한 조언

그러니

"우리 함께 걸으며 이야기 나눌까요?"


글/그림 Seon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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