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onChoi Dec 29. 2023

코끼리 거죽에 털은 없더라

- 맹인이 코끼리 만진 이야기의 뒷부분을 쓰며 -

총총하게 별이 보이는 밤하늘 

툭탁툭탁 나무 타는 소리를 내는 따듯한 모닥불 

도란도란 둘러앉아 이야기 나누는 정겨운 내 벗들

저무는 한 해에 그려봄직한 낭만적 밤입니다.      


이 훈훈한 시간에 내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듯이

내 벗도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다른 이의 이야기를 담을 자리가 제 안에 얼마만큼인지 돌아봅니다.


온갖 인관관계 속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코끼리를 만진 6명의 맹인(盲人)처럼

저마다의 이야기만 하는 사람은 아닌 지, 그래서 대화를 나누고도 오히려 허탈한 지,

이야기 끝에 우애가 벌어진 것은 아닌지, 관계에 지쳐 혼자를 택하는 것은 아닌지

흠칫 돌아봅니다.      


코끼리 모양새를 두고 다투던 6명의 맹인은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갑론을박하다 헤어지고 말았을까요.

또는 

지혜롭게 대화하며 코끼리의 전체 모양새를 잡아갔을까요.     


저 역시 지극히 좁은 세상을 경험하고 한정된 지식을 가진 맹인과 같은 사람입니다.

다만

맹인과 같이 제한된 경험과 식견을 지닌 부족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다른 이의 의견을 잘 들으려, 정말 진심으로 잘 들으려 노력하는 사람이고자 노력합니다. 

축복처럼 주어지는 이 땅에서 생명으로의 남은 날들 동안 내내...


저 우화를 이어 쓰라고 한다면, 뒷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갈까요.

다투고 돌아서 다시는 안만나게 할까요?

분을 삭이며 맹인으로 서로 도와야 하니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게 할까요?


저는 코끼리 모양새를 잡기 위한 대화로 시작해 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을 시작하면서요.

“그런데 내가 만져본 코끼리는 일단 거죽에 털이 없더라."

"어, 맞아. 나도 그랬어. 짐승인데 털은 없더라."




작가의 이전글 노래와 눈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