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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 걱정의 총량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

by Julianus

직장과 직업 특성상 이동을 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럴 때에 이런저런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곤 한다. 이 글 역시도 런던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 쓰고 있다. 이동수단에서 진동과 소음을 느끼고 들으며, 걱정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본다.
나는 어려서부터 걱정이 많았다. 하나의 걱정이 계속되며 꼬리의 꼬리를 무는 걱정이 이어지곤 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하나의 큰 걱정이 사라지거나 혹은 해결되면, 또 다른 걱정이 그 자리를 채운다. 뒤돌아보면 별 것 아닌 일에도 내가 쓸 수 있는 온 신경을 다 써서 걱정을 한다. 어쩌면, 내가 지금 현시점에서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걱정에 할당량이 있는 것 아닌지 생각된다.
이 벗어날 수 없는 걱정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려가지 방법을 써 봤으나 여전히 그대로다. 나이가 들어가며 걱정의 총량이 증가하는 건 아닌지 아니면 내가 걱정에 대한 민감도가 올라가는지, 사회가 그렇게 강요하도록 되어 있는 건지 점점 가지고 있는 걱정의 난이도가 올라가는 것 같다. 10대 때의 성적과 교우관계에 대한 걱정이 20대에는 진로, 이성관계, 취업으로, 30 대에는 사회인으로서의 커리어를 걱정하고 직장에서 일에 대한 걱정으로, 그 이후로는 가정과 자녀, 직장, 자식으로의 일 등 나 혼자 스스로 해결 불가능한 걱정들이 늘어가고 있다.
아직 내 아이들이 없기에 조카들이 태어나고 커가는 것을 지켜보며, 그 아이 나름의 걱정이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한 없이 티 없는 모습들에서 걱정이 없음을 확인하곤 하여 부럽게도 느껴진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다. '걱정을 끊을 수는 없다.' 걱정은 내가 삶을 다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함께 할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내 정신이 온전하다면, 마지막 걱정은 무엇으로 하게 될지 한편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걱정함이 내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학업에 대한 걱정, 직장에 대한 걱정, 일에 대한 걱정이 어쩌면, 나를 행동하고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무언가 하지 않았을 때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 해결하기 막막한 일에 대한 생각, 인간관계에 대한 불안감 등이 나를 행동하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엔진의 출력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걱정은 기분 좋게 하는 좋은 걱정과 그렇지 않은 걱정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걱정은 복권에 당첨되면 어떻게 하지?, 우연한 기회에 얻은 콘서트 티켓을 누구랑 갈 까?, 오른 주식을 언제 팔아야 할까? 등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해도 나쁜 결과가 없을 경우 좋은 걱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좋은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그 결과에 대한 예상과 기대함은 내가 가지고 가야 할 하나의 걱정이라고 볼 수 있다. 좋은 걱정을 제외한 나머지 걱정을 진짜 걱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진짜 걱정이 나를 발전시키고, 삶에 더 충실하게 끔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하나의 걱정이 다른 걱정을 두 배 세배로 몰고 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욱 걱정에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된다. 매년 요맘때쯤이 되면 걱정이 마구 증식됨어 걱정의 총량이 늘어난다. 현상의 반복과 내년에도 역시 그럴 것이라는 권태로움이 요즘의 나를 지배하고 있다. 피할 수 없다면 걱정을 즐기라라는 무책임한 말보다, 피할 수 없다면 돌아가라는 게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 더 필요한 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걱정의 총량을 가지고 이렇게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그 걱정의 총량에서 좋은 걱정이 늘어나기를 소망해 볼 뿐이다. 그리고 걱정의 굴레를 내 삶을 이끄는 좋은 원동력으로 삼고자하며, 그 방법을 이번 겨울에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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