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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Jun 05. 2022

마음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퇴사에 대한, 아니 미래를 향한 생각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느 날, 어디선가 들려오는 먼 북소리를 듣고 일본을 떠나 유럽에서 글을 썼다.


   겨울왕국 2의 엘사는 엘사의 귀에만 들리는 목소리를 따라 길을 떠났고, 자신의 본질을 찾아 그곳에 정착했다.


     결정적 순간이 찾아오면, 정말 멀리서 소리가 들릴까? 내 마음이 시키는 소리가 들릴까?

길어진 해만큼이나, 주황빛 노을이 눈에 밟히는 여름밤 저녁. 희미하게 들리던 소리가 선명해지는 기분이다. 근데 저녁 식사에 곁들여 마셨던 와인 두 잔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미지출처 : 겨울왕국2/ Into the Unknown

  ‘퇴사하고 싶다’

간헐적으로 다가오는 이 생각.  빈도수가 갈수록 짧아지고 있어서 적잖이 당황스러운 이 ‘퇴사’를 향한 바람은 올해 들어 더 세차게 불어온다.


   재택을 하면서 일과 삶의 균형을 얼추 찾았다고 느꼈는데, 그마저도 엔데 믹의 아이러니로 거의 끝이 났다. 야근과 회식이 일상이던 3년 전과 비교한다면 지금 상황에서는 배가 많이 부른 소리다. 하지만 포만감은 지극히 상대적인 것도 알았다.


   더 큰 문제는, 3년 전이나 5년 전이나 하고 있는 일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지금의 자리를 바꿀 수 있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 자리를 고집한 건 나다.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시작되면서 드라마틱하게 뭔가가 바뀔 줄 알았다. 본질은 같았고, 바깥의 상황에만 기댄 나약한 의지가 바닥을 보였다. 5년 전이나, 3년 전이나 바뀐 게 없었다. 그래서 무섭다. 3년 후나 5년 후나 또 똑같을까 봐.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저 작은 아이가 어떻게 책가방을 혼자 맬지, 급식으로 매운 반찬이 나오면 어떻게 할지, 학원은 혼자 잘 찾아갈 수 있을지, 선생님 말은 잘 들을지. 엄마의 어설픈 걱정을 나열하자니, 3개월이 지난 지금 머쓱해온다. 아이는 혼자서도 잘한다. 생각보다 잘한다. 괜스레 내가 개입하고, 투입되면 스스로 잘하던 아이도, 다시 아기가 된다.

 그렇게 아이는 내 퇴사의 변명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됐다. 가장 그럴싸한 퇴사의 핑계마저도 없다.



  그럼에도 자꾸 마음속에서 간질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귀여운 통장 잔고와 커질 대로 커진 씀씀이가 그 소리를 막아서고 있다.

  ‘이 정도 벌면, 이 정도는 사도 되지’

10만 원이 넘어가는 티셔츠 한 장도 무언의 합리화로 척척 결제한다.

 배달비 3천 원이 무슨 대수냐. 코 앞에 있는 중국집도 귀찮으니까 그냥 시킨다.

 가격비교는 귀찮은 과정이 되었고, 밀려드는 카드값은 그냥 갚으면 되는 대수롭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이미지 출처 : 핀터레스트


 매일 밤이 조금씩 괴로웠다. 아니 많이 괴로웠다.

간지러운 소리의 정체가 궁금했다. 나는 꽤 긴 시간 ‘회피’를 택했다. 한동안 보지 않던 ‘소설책’을 꺼내 들었고, 미뤄왔던 영화나 시트콤을 봤다. 혹여라도 구겨둔 생각을 건드리는 문장이나, 주인공의 상황이 오버랩되면 과감히 덮어버리고 꺼버렸다. 나는 철저한 회피를 선택했다.


그러다가도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꿈꾸는 미래를 준비해보고자 다짐도 해봤다.

‘나약한 인간아! 지금도 못하면 평생 못해!’

라며 팩트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가득한 말로 폭격을 가했다.

주변에서는 계속 그런다. 특히 우리 엄마는 더 그런다. ‘지금 회사 진짜 좋은 거야! 아깝잖아!’


나는 지금의 이 모든 상황들이 버겁다. 계속해서 간질간질 커져오는 이 소리, 제일 가까운데 너무 멀리서 들려서 알아들을 수 없는 이 목소리가 궁금해서 버겁다.

  최적의 타이밍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시간이 흐른 뒤 선택의 옳고 그름을 평가할 뿐이다. 나는 가슴의 소리에 의존하기에 결정에 대한 후회가 없는 편이다. 다만 가슴의 소리를 따른다는 건 무작정 꽂히는 대로 움직이라는 뜻이 아니다. 쿵쿵대는 흥분이 조금 잦아들 때 더 정확한 가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실패의 위험을 줄이는 고민이 필요하고 사람들의 조언도 구해야 한다. 가슴의 결정을 두뇌의 분석으로 받쳐줘야 하는 것이다.
- 홍정욱 에세이 <50> 중에서

    하루키도, 엘사도 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소리를 찾고 나니, 그때가 최적의 타이밍이었구나 웃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의 가장 최적의 때는 언제일까? 지금 들리는 소리를 따라가면 될까? 그 소리를 따라나서지 않으면 평생 이 자리에만 서 있을 것 같아서 덜컥 겁이 난다. 일단 이 쿵쿵대는 심장 소리를 진정시켜보자. 일단 술부터 깨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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