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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May 01. 2022

체력은 곧 성격일까?

   

  성격이 점점 나빠지는 기분이다. 아니, 나빠졌다. 쉽게 짜증을 내고, 성질을 자주 부린다. 뭐, 생각해보면 이건 하루 이틀 해오던 생각이 아니다. 아마 2020년, 그즈음에도 똑같은 고민을 아주 진지하게 했던 것 같다. 가족들에게 점점 '포악'해지는 내 모습을 자주 목격하며 미친 듯이 자괴하던 시간이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그때 육아휴직을 냈다. 이건 분명 휴식이 필요한 시그널이라는 생각에 고이고이 모셔뒀던 1년이라는 시간을 꺼내 들었다. 때마침 남편의 해외근무 발령도 좋은 핑계를 단단히 만들어주었다. 뭔가 새로운 활력이 생길 거라 믿었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돌며, 나의 소중한 휴직은 오직 한국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지만, 나름 신경 쓸 일이 반 이상은 줄어드니 나름 평화가 찾아왔다.

 그렇게 2020년이 끝나가던 해, 나는 다시 직장으로 복귀했고, 시간은 꾸역꾸역 흘러 워킹맘 라이프 2막은 이제 1년을 훌쩍 넘겨 계속 진행 중이다.  


 2022년, 나는 또 2020년과 똑같은 자괴감에 직면했다.

그때처럼 미친 듯 직장에 에너지를 쏟고 나면, 집에서의 나는 언제 꺼질지 모르는 간당간당한 배터리의 휴대폰이 되어버린다. 마치 좀비처럼 너덜너덜 거리며 아이와 남편에게 마구잡이로 짜증스럽게 팔을 휘두른다. 그러다가 집안의 불이 꺼지면 좀비처럼 잠에 빠진다.  

영화 <웜 바디스> 중 좀비같은 나를 바라보는, 아이와 남편의 모습 같다...



 매일 인간에게는 일정량의 에너지가 부여된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근거는 잘 모르겠지만, 그 양은 아마 나이에 따라 다를 것이다. 정신없이 뛰어다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뛰어노는 어린아이들만 봐도 알 수 있고, 누구나 한번쯤은 이야기하는 20대 대학생 시절, 밤새 술 먹고 첫 차 타고 집에 가던 무용담만을 모아봐도 그렇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20대 시절에 느끼던 체력의 총량에 비해, 지금은 반으로, 아니 어쩌면 그 이상 줄었다고 느끼고 있다. 그때보다 챙기고,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아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그때보다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들이 더 많아졌기 때문일 수 있다. 그렇게 내 인생의 열정과 체력이 선명한 반비례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지금 나는 이기고 싶다. 그 어느 때보다 이겨내고 싶은 것들이 많다.

워킹맘으로 아이도 잘 키우고 싶고, 조금 더 서로를 아낄 줄 아는 부부가 되고 싶다.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싶고, 투자 공부도 열심히 해서 돈도 벌고 싶다. 책도 많이 읽고 싶고, 매일 매일 예쁜 글씨고 필사하고 싶고, 매주 멋진 글도 써내고 싶다. 막힘없이 영어로 떠들어대고 싶고, 친구들도 자주자주 만나고 싶다.


무엇보다, 이 욕심들을 채우지 못하는 나 자신을 미워하고 싶지 않다. 시도도, 노력도 하지 않은 나 자신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좌절하는 나 자신을 위로해주고 싶다. 보여주기 위해 꾸역꾸역 포장하지 않고, 진짜 이루기 위해 차곡차곡 쌓는 나 자신을 사랑해주고 싶다.


근데 이게 잘 안된다. 몇 년을 노력해도 좌절한다.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
승부 따윈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 
체력'이란 외피의 보호 없이는 
구호 밖에 안돼.

- 윤태호 <미생> 중에서 



요 며칠, 몸이 많이 아팠다. 하루 종일 일 때문에 이리 뛰고 저리 뛰었더니 발이 너무 아팠다. 온몸은 굳어져있었고, 긴장의 두통으로 찾아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 된 기분이었다. 연신 일어서고, 웃고 싶었지만 그럴 힘도 없었다. '정신력'으로 무장해서 외쳐보기엔 '체력'의 부재가 너무도 컸음을 이제는 직면해야 함을 알았다.


22년 5월 1일. 체력을 키워보기로 마음먹었다. 정확히 말하면 체력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더 이상 이 자괴감을 수레바퀴가 계속 굴러가는 걸 원하지 않는다.

문제는 약하디 약한 운동의 의지이다. 아마 내가 헬스클럽이나, 요가센터에 쏟아부은 돈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체육 부흥을 위해 참 많은 돈을 기부했다. 다시 헬스든, 계단 오르기든, 종이 한 장을 펼치고 체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들과 의지의 부산물들을 차곡차곡 나열해본다.


이번엔, 정말 잘해보고 싶다. 나를 향한 승부욕과, 세상을 향한 고민을 버텨 줄 몸을 만들어보고 싶다. 더 이상 의미 없는 구호는 외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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