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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Dec 11. 2022

나의 장례식 플레이리스트

   9년 전 결혼식을 준비할 때, 나는 매일 밤을 상상했다. 버진로드를 걸어가는 내 모습. 오롯이 나를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그 길에 선 내가 하얀 웨딩드레스만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있다. 바로 ‘행진곡’이다. ‘신부 행진곡‘이라는 보편적인 음악도 있지만, 나는 예전부터 꼭 영화 <클래식>에서 알게 된 ‘파헬벨 : 캐논 라장조’에 맞춰 등장하고 싶었다. 그리고 화면에 사랑 가득히, 막 부부가 된 우리가 식장 화면에 가득 찬 순간의 축가는 꼭 영화 <물랑루즈> 의 Come what may를 배경음악으로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 나를 위해 찾아온 사람들의 머릿속엔 내 모습을, 그리고 귓속에는 음악을 담아 파노라마를 완성하고 싶었다.



  영화 <써니>에서 춘화의 마지막 유언은 학창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Sunny 노래에 맞춰 춤을 춰 달라한다. 하나 둘 모인 친구들이 친구의 영정사진 앞에서 춤을 추는 순간, 누군가의 끝에 대한 남아 있는 누군가의 또 다른 시작으로 이야기가 바뀌었다. 울음소리도 좋지만, 이 이야기가 더 좋다.


  나의 결혼식을 일단 끝이 났다. (두 번 할 일은 없어야겠지.) 그다음 내가 주인공이 되어 플레이리스트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 중 하나가 나의 장례식이다. 오롯이 나를 위해 오고, 내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 볼 사람들에게 밝게 웃는 모습은 물론, 고맙고, 늘 당신을 응원하고, 사랑하겠다는 걸 들려도 주고 싶다. 내 장례식의 플레이리스트를 꼭 기억해 조용히 틀어주길…


장례식 플레이리스트 1) H.O.T <Candy>

진지하게 읽으려나 누군가는 “풉!” 할지도 모르겠다. 어쩌겠나. 나의 유년시절은 오빠들과 함께였고, 10대 시절 수천만 번을 들었을 이 노래가 아직도 좋다. 전주만 들어도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저절로 팔이 올라가고,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노래를 트는 순간, 관 뚜껑이 들썩거리며, 누군가의 바람대로 다시 살아 돌아올지도 모른다.

내 장례식의 처음과 끝에는 어린 시절 같이 덕질을 했던 내 친구 현영이는 꼭 와 있으리라 생각한다.

“현영아! 이 노래가 나오면 꼭 춤을 춰주렴! 민망하면 앉아서 파워레인저 춤이라도!! 이불 킥 하고 싶은, 통통하고 철없던 학창 시절에 함께 해줘서 고마워 :) “



장례식 플레이리스트

2) Chicago <If you leave me now>

  예전에 이 노래를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었다. 자칫 느끼할 수 있는 피터 세트라의 목소리가 좋았다. 단순하면서도 애절한 가사가 귀에 박혔다.

If you leave me now
만약 당신이 지금 떠난다면,
You'll take away the biggest part of me
나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가져가 버리는 거예요
Ooo oh, no, baby please don't go
사랑하는 당신, 제발 가지 말아요.

baby please don’t go.

장례식에 이보다 더 직관적일 수 없다. 떠나는 나를, 마음껏 슬퍼하고 잡고 싶어 해 주면 좋겠다. 잠깐 으스러진 것 같은 슬퍼하는 이의 중요한 부분은 채워질 것이다. 떠나간 버스가 돌아오지 않듯이 나 역시 돌아가지 않을 테니, 마음껏 그리워했으면 좋겠다. 단, 너무 슬프지 않게. 간간히 지나치지 않게 경쾌하게 울리는 트럼펫 소리와 구슬프지 않은 바이올린 소리 속에서 말이다. 그리고 이 노래처럼 잔잔하게 상쾌한 기분으로 장례식장을 나간다면 참 좋겠다.


장례식 플레이리스트

3) Yo-Yo Ma

 세상을 바꾼 스티브 잡스가 가장 부러운 건, 바로 그의 장례식에서 요요마가 직접 연주를 했다는 것, 즉 그의 죽음의 길에 신이 함께 했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처음 요요마의 연주를 듣고 그의 연주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증거라며 눈물을 흘렸다 한다.)


 태교 때, 첼로 음악을 참 많이 들었다. 클래식에는 1도 관심 없던 내가 요요마의 무반주 첼로를 듣고, 어느 새벽 참 많은 눈물을 흘렸다. 호르몬 때문인 건지, 왜 그때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때 뇌에 박힌 이 미칠 듯이 아름다운 선율은 지금도 내게 용기를 주고, 기도하는 힘을 준다. 신이 있다면 이런 걸까도 싶은 힘이다.

감사하게도 딸이 첼로를 한다. 뱃속에서 듣고, 잘 때마다 틀어주던 버릇이 남아 감사히도 첼로 소리를 좋아한다. 언젠가 딸도 이 곡을 연주할 수 있겠지. 그러면 딸이 직접 연주해주는 것도 좋겠다만, 나의 장례식에는 꼭 요요마의 연주였으면 한다.

 남아 있는 모든 사람이 죽음을 슬퍼하지 말았으면 한다. 어떤 모습으로 맞이한 끝이더라도.

즐겁게, 또 상쾌하게. 그리고 충만하게 적어도 내 안에는 존재하는 신의 보살핌 안에서 모두가 또 다른 시간을 준비했으면 한다. 그게 다다.


<뭐라도 쓰고 싶어서>는
쓰고 싶은데 도대체 뭘 써야 할지 모르는 마음을 담아 ‘건강하게 억지로’ 끄집어 내보는 주제들로 엮어보는 매거진입니다.
저처럼 뭘 써야 할지 도통 모르겠는 분들께, 누구나 생각해볼 수 있는, 매주 제시되는 주제를 따라한 문장이라도, 한 문단이라도 써보시길 바라봅니다. 뭐라도 써보니 참 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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