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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맛, 책을 두 개의 언어로 마주할 때

클레어 키건 <Foster : 맡겨진 소녀>

by 율리

나의 서가 제일 끝에는 늘 원서가 놓여 있다. 능숙하고 싶던 영어에 대한 갈망, 왠지 있어보이는 알파벳의 홀림에 책은 한권 두권 늘어갔다. 처음엔 이걸로 완벽한 영어 실력을 키워보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그 결심은 오래가지 않았고, 대신 다른 마력에 계속 원서를 읽게 된다.


영어를 학문으로, 억지로 외우고 공부하던 때와는 전혀다른 느낌. 원서는, 내가 몰랐던 세상의 온도를 아주 느리게 전해주는 작은 길 같았다.클레어 키건의 책은 그런 원서의 매력을 또 한 번 실감하게 해준 작품이다.


한글 번역본으로 먼저 읽은 그녀의 단편집 『이토록 사소한 것들』이 책의 '조용한' 문체가 인상적이었다.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고, 침묵으로 말을 거는 글.


그러다 우연히 원서로 먼저 접하게 된 『Foster (맡겨진 소녀)』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한 챕터씩 한국어 번역본과 비교해가며 읽어보니, 두 언어의 차이가 스물스물 느껴졌다.

이번 책에서의 작가의 문체는 내가 처음 접한 한글번역본처럼 조용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원서로 처음 읽어본 느낌은 그 조용함이 ‘맑음’에 더 가까웠다. 아이의 어눌한 말투, 감정을 다 설명하지 못하는 조심스러움, 그리고 마음 속에 말하지 않고 남겨둔 감정의 여백들이 알파벳을 따라 고스란히 전달되는 기분이었다.
아이가 쓰는 언어는 불완전하고 어색하다. 그래서 더 진짜 같았다. 마치 말을 다 못해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전하는 그런 문장들.


The sun, at a slant now, throws a rippled version of
how we look back at us.


예전의 자신 -지저분하고 보살핌이 부족했던- 아이가 아니라, 이제는 깨끗한 옷을 입고, 누군가가 뒤에서 지켜봐주는 ‘달라진’ 자신을. 겉모습뿐 아니라, 마음속 어딘가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걸 감지하는 순간이다. 문장은 짧다. 토막토막 리듬을 따라 그저 장면만 떠다닌다. 그리고 그 장면 안에 있는 감정은 너무나 깊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 다른 문장

It tastes of my father leaving,
of him never having been there,
of having nothing after he was gone.


물 한 모금이 일정한 리듬을 타고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감정을 타고 간다. 한글로 읽을 때는 느껴지지 않았던 그 순수해서 더 애달픈 그런 감각. 너무 많은 미사여구를 쓰지 않아도, 어려운 단어를 더하지 않아도, 더 많은 걸 들려주는 글. 한국어가 훨씬 익숙한 나이기 때문이었을까. 너무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읽을 수 없던 감정의 순간이었다.

언어라는 건 결국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다. 사실 다른 언어를 타고 번역을 거치다보면 다소 희석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기도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한글로 읽는 아이의 말투는 성숙하고,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번역자가 아이의 언어를 최대한 살리려 노력했음에도, 원서에서 느껴졌던 그 불완전함과 어눌함은 어쩔 수 없이 흐릿해진다. 원서에서는 짧고 서툰 문장들을 통해 아이의 조심스러운 시선이 그대로 전해졌고, 문장의 여백에서 감정이 스며나왔다.


원서를 짝사랑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감히 짝사랑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간헐적인 눈빛을 주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원서는 아주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취미가 되어 있다. 띄엄띄엄 읽고 또 읽다가 접기도 하며, 오랜 시간 곁에 둔 어떤 세계. 영어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언어, 다른 문화, 다른 리듬 속에 살아 있는 세계를 조금씩 맛보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언어의 맛을 처음 접한 어린 장금이처럼 말이다.


언어의 사전적 의미는 '생각, 느낌 따위를 나타내거나 전달하는 데에 쓰는 음성, 문자 따위의 수단. 또는 그 음성이나 문자 따위의 사회 관습적인 체계'다.

예전에는 이 단어 하나하나, 문법 하나하나에 목숨을 걸며 언어가 아닌, 영어를 공부했다. 그런데 요즘은 영어를 언어로 접근해 본다. 단지 수단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고, 감정이 스며드는 리듬으로 말이다. 사람들의 문화와 관습,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감정 같은 것들이 켜켜이 쌓인, 무늬 있는 세계.


그런 점에서, 원서로 읽는 『맡겨진 소녀』는 그 무늬를 직접 손끝으로 더듬는 경험에 가깝다. 번역이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감정보다, 말끝에서 맴도는 그 침묵의 감각을 느끼는 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그저 그 언어의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울림이 다가온다. 조용한 문장 하나가, 어떤 날엔 문득 마음을 뒤흔든다. 언어의 맛은, 같은 문장을 두 언어로 천천히 다시 읽을 때 비로소 진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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