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지 않은 일주일의 소감
언젠가 내가 성숙했다고 느끼는 건 세상의 돌아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반추하고 영감이 자주 느껴졌을 때다. 내가 비로소 어른이 되었구나를 감탄하는 그런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자주 느껴지는 건 매일 적어도 30분 이상 책을 읽기 시작하고부터 였을 것이다.
그런 나는 이번 주에 책을 읽지 않았다. 조금 바빴다는 상투적인 핑계도 있고, 빠르게 돌아가는 릴스와 쇼츠에 중독되었다는 양심적인 고백도 있다. 성숙해졌다고 믿은 나는, 그간 쌓아온 것들로 어떠한 상황이어도 글로 승화시킬 무언가를 그 어떤 것에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일주일이라는 작은 시간이었지만 책을 읽지 않는 나는, 영감이 되고 글감이 될 생각이 아주 잔잔하다.
비슷한 일상을 지내고, 같은 거리를 걷는데 떠오르는 것이 많지 않다. 예전 같으면 누군가의 작은 이야기에도 무언가를 생각했을 텐데. 지나가던 행인을 보고서도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올랐을텐데..
내 눈은 똑같이 보고 있고, 내 귀는 똑같이 듣고 있는데 왜 이렇게 다를까. 같은 풍경인데 왜 이렇게 메마를 수밖에 없을까. 알길이 없지만, 그저 나 혼자 각자의 삶을 상상했는데, 지금은 그냥 불빛일 뿐이다.
15초짜리 영상들은 강렬하지만 금세 사라진다. 웃음을 주고, 놀라움을 주고, 때로는 분노도 주지만 내 안에 쌓이지 않는다. 하나가 끝나면 다음 것이 시작되고, 그 다음 것이 또 시작된다. 끝없는 자극의 연속이지만 정작 남는 것은 없다. 마치 물 위에 동그라미를 그으면 금세 사라지듯이.
반면 책은 다르다. 한 줄의 문장이 며칠을 따라다니기도 한다. 작가의 생각과 내 생각이 만나 새로운 무언가가 된다. 책을 덮은 후에도 그 여운은 계속 남아있다. 때로는 책을 읽고 몇 년이 지나서야 그 의미를 깨닫기도 한다.
소설 속 인물이 나의 현실과 겹치던 순간들, 에세이의 한 문단이 내가 막연히 느끼던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던 순간들. 그런 순간들이 쌓여 내가 세상을 보는 시선을 만들어갔다. 책장을 넘기며 작가와 대화하던 그 시간들이 나를 두껍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책이 없는 일주일을 보내고 나니 알겠다. 내가 얼마나 책에 의존하고 있었는지를. 내 생각이라고 여겼던 것들 중 상당 부분이 책을 통해 길러진 것들이었다는 걸. 책을 읽지 않으니 생각할 재료가 없어진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창은 역시 깊이다. 그 깊이를 주는 것은 책이다. 화려한 화면들은 표면만 훑을 뿐. 진짜 생각은 문자 사이 문장 사이의 침묵에서, 천천히 되새김질하는 그 시간에서 온다.
책은 나에게 멈춤을 주고 생각할 시간을 준다. 한 문장을 읽고 잠시 멈춰 서서 그 의미를 곱씹어볼 시간을 말이다.
요즘 사람들은, 또 나는, 모든 것을 빠르게 소비하는 것을 선호한다. 영상도, 음악도, 심지어 인간관계도. 하지만 책은 빨리 넘길 수 없다. 책은 천천히 읽어야 하고, 천천히 이해해야 하고, 천천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 느린 시간이 나에게는 필요했다.
나는 내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착각했다. 이제는 어디서든 영감을 찾을 수 있을 만큼 예민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이 없는 일주일을 보내며 깨달았다. 아무리 성숙하다고 믿는 인간이라도 책을 대체할 것은 없다는 것을.
나의 성숙함이라고 여겼던 것들도 결국은 책이라는 거름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수많은 작가들의 사유와 경험이 내 안에 축적되어 나만의 생각으로 발효된 것이었다. 책 없이는 그 발효 과정이 멈춰버린다. 새로운 재료가 공급되지 않으니 기존의 것들만 맴돌 뿐이다.
책은 단순히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다.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깊이 있게 사유하는 힘을 길러준다. 그 힘이 있어야 일상의 평범한 순간들도 의미 있는 순간으로 바뀐다.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작은 장면들에서도, 누군가와 나누는 짧은 대화에서도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지금 나는 그 힘이 약해진 상태이다. 일주일이지만 마치 하루라도 운동하지 않으면 근육이 퇴화된 운동하는 사람들처럼. 사유하는 능력이 퇴화된 기분이다.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지 못한다. 영감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마음에만 찾아오는 것이었다.
오늘 밤은 다시 책을 펼쳐야겠다. 그리고 천천히 읽어야겠다. 급하게 소비되는 것들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책이라는 나침반이 필요하다.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하는 근육을 단련하고,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눈을 회복해야겠다. 영감과 글감에 책만한 것은 정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