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사람을 위하여

림태주 작가님의 "읽고 쓰는 일의 매혹과 열망에 대하여" 강연을 듣고

by 율리

빨간 화면을 가득 채운 '읽고 쓰는 일의 매혹과 열망에 대하여' 강연 주제가 색만큼이나 강렬하다. 강연을 앞두고 림태주 작가님의 『오늘 사랑한 것들』을 틈이 날 때마다 읽어 내려갔다. 머리가 복잡한 한 주였다. 작가님의 책 덕분에, 더 정확히는 문장 덕분에 흐릿했던 한주에 ‘아름답다’는 감정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이렇게 문장을 아름답게 쓰는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까. 3시간 남짓, 짧은 시간 동안 나눈 이야기는 의외로 긴 여운을 남겼다.



글쓰기와 읽기. 가까이 있지만, 어쩐지 멀고 어려운 것들.

‘좋은 글은 무엇일까. 무엇이 사람을 글에 머무르게 할까?’

림태주 작가는 말한다. 좋은 글은 ‘쓴 사람’이 보여야 한다고. 그리고 그 글은 새롭거나 달라야 한다고. 또 잘 읽혀야 하고, 문장마다 잠시 멈추게 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복잡해보이지만 명확한 말이다.
글은 결국 사람에서 나온다. 그래서,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좋은 글도 없다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글을 잘 쓰려면, 읽는 태도가 중요하다. 즉 ‘글을 잘 쓰기 위한 읽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많이 읽는 것보다 ‘어떻게’ 읽느냐가 더 중요하다. 작가님이 말하는 이상적인 읽기에는 두 단계가 있다.
흐름과 맥락을 읽는 완독과 문장의 구조와 어휘를 살피는 정독.
보통 우리는 내용만 파악하는 데 집중하지만,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선 ‘문장’을 읽는 정독의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또한 글은 요리와 같다. 식재료가 다양할 수록 요리의 완성도가 올라간다. 글의 재료를 풍부하게 하려면, 익숙한 분야에만 머무르지 말아야 한다. 문학만 읽거나, 자기계발서만 읽거나 하는 편식은 오히려 해가 된다. 낯선 장르의 책을 읽는 읽는 일은 사고의 방향을 넓혀준고, 다양한 문장 스타일을 익히게 해준다.

읽기의 폭이 넓어질수록 글의 깊이도 함께 깊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메모’다. 읽으며 좋았던 문장이나 떠오른 생각을 적어두는 습관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어설픈 메모가 깊은 생각보다 낫다’는 말이 실감 난다.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가 『슈독』을 그렇게 생생하게 쓸 수 있었던 건, 수많은 순간을 메모해뒀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메모는 남는다.


좋은 재료가 쌓이면 이제 요리를 시작해야 한다. 글은 단문으로 써야 한다가 수없이 들어왔는데, 왜 단문이어야 하는지 설명이 어려웠다.

“짧은 문장은 시적이다. 짧은 문장은 단단하다.”고 말한다.

단문으로 쓰면 리듬이 생기고, 불필요한 설명이 줄어든다. 단문이 가진 응축의 힘.단문을 지향하라는 말에 이보다 명료한 이유는 없었다.


품사의 역할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특히 동사와 부사.

강연에서 ‘김훈’이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언급됐다. 나에게 문장의 힘이 무엇인지 처음 알려준 작가다.

동사는 문장의 힘을 보여주는 품사다. 림태주 작가는 김훈을 ‘동사를 가장 잘 쓰는 작가’라고 말했다.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김훈 작가님의 문장에서 에너지가 느껴지는 수많은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부사. 지양해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감정의 온도와 결을 표현하는 데 꼭 필요한 품사라고 말한다.
과하지 않게, 하지만 필요한 만큼. 적당히 진정성을 담아내는 연습을 해보고 싶다.


쓰기와 읽기는 오래된 동행이다. 때로는 멀어지고, 때로는 가까워지지만 완전히 떠나지는 않는다. 방법을 알 것도 같고, 여전히 모를 것 같기도 하다.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지만, 정작 글로 붙잡는 건 어렵다.그래도 나는 오늘도 책을 펼치고, 한 줄을 따라 적는다. 마음이 머무는 문장 옆에 메모를 남긴다.

그 모든 과정이 결국 나를 글로 데려다줄 거라 믿는다. 읽고, 느끼고, 적고, 다시 읽는 일의 반복. 그 단순한 루틴 안에서 나의 언어는 천천히 자란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도 나는 읽고, 쓰며, 나의 문장을 조금씩 이어간다. 조금 더 나답게. 조금 더 단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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