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함을 의심하는 사고의 틀

OREO 글쓰기와 바칼로레아 교육

by 율리

“행복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우정은 존재하는가?”
“교육의 목적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한번쯤은 고민해보고, 질문받아본 이러한 철학적인 물음. 이처럼 단정 짓기 어려운 질문은 정답이 없다. 그렇기에 더 중요하다. 수천 년간 철학자들이 고민해온 주제이기도 하며, 지금 우리 삶에서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이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철학 교육은 이러한 질문을 다루는 대표적인 사례다. 사카모토 타카시 저자의『바칼로레아 철학 수업』에 따르면, 이 교육은 1808년 나폴레옹 시대부터 시작되었고, 지금까지도 프랑스 고등학교 졸업시험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교육의 핵심은 단순한 지식 암기가 아니라, 질문을 쪼개고, 다양한 입장을 검토하며,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틀을 갖추는 데 있다. 즉, 바칼로레아는 학생들에게 정해진 답을 찾기보다는, 스스로 생각하고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

나는 이 교육 방식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논술’과 다르다는 점에 주목한다. 논술이 종종 정해진 방향에 맞춰 글을 구성하는 데 그치는 반면, 바칼로레아 철학 교육은 사고의 출발점부터 다르다. 어떤 문제든 ‘왜 그런가?’를 끈질기게 묻고, 정답보다 사고의 깊이와 논리의 구조를 평가한다. 이 점에서, 내가 요즘 딸아이에게 가르치고 있는 OREO 글쓰기 방식과 흥미롭게 연결된다.


하버드 글쓰기 교육으로도 잘 알려진 OREO 글쓰기는 Opinion(주장), Reason(이유), Example(근거), Opinion(재강조)의 네 단계로 구성된다. 주장을 명확히 밝히고, 그 이유를 설명하며, 구체적인 사례나 근거로 설득력을 높인 다음, 주장을 다시 정리해 마무리하는 구조다. 얼핏 이 구조가 꽤나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은 많은 생각과 노력을 요한다. 때문에 글쓰기의 기본기와 사고의 틀을 기르는 데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특히 초등 고학년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로만이 아니라 글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최근 딸아이와 함께 『별을 헤아리며』를 읽고 OREO 글쓰기를 해본 적이 있다. 아이의 주장은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로 “사람은 겉모습이나 출신, 종교로 차별받아서는 안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고, 근거로는 “주인공 안네마리도 처음엔 유대인을 잘 몰랐지만, 유대인 친구 엘렌을 도우면서 진심으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내용을 들었다. 마지막에는 “우리도 친구를 외모나 성격으로 판단하지 않고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했다.

완성된 글은 짧고, 아직은 서툴렀지만, 생각을 주장-이유-근거-재강조의 흐름에 따라 구조화하는 과정을 분명히 하는 과정에서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보통 딸아이는 독후감을 쓸때 줄거리를 쓰고, 단순히 ‘좋았다’ '재밌었다' '슬펐다' 이런 것으로 마무리 했는데, 그걸 뛰어넘어 책 안에서 생각할 주제를 뽑아내고 논리를 구성해본 경험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의미 있는 시도였다.


나는 학창 시절, 이런 구조적인 사고 훈련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여러 의견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고, 내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다행히 대학시절 토론동아리를 통해 논리적 사고는 타고나는 능력이 아니라 훈련과 경험을 통해 기를 수 있는 기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사회에 나와 커뮤니케이션을 주로 하는 브랜딩 일을 하며 논리적 사고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느느꼈다. 또한 아이의 교육이 본격화되는 시기가 오자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짚는 기분이 든다.

우리 교육도 이제는 단순한 정답 맞히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단편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배운 것들을 연결하고 스스로의 논리를 만들어가는 훈련이 필요하다. 지식을 아는 사람보다, 생각을 구성하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요구되는 시대다.


'당연함'을 의심하는 데는 대립하는 두 입장 모두를 천천히 검토하고, 거기서 해결책을 찾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이처럼 기존 질서를 의심하는 일이야말고 혁실을 만들어내는 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반대 의견을 존중하고 최대한 이해한 다음, 자기 입장이 정당함을 주장하는 절차는 특히 중요합니다.

- 사카모토 타카시『바칼로레아 철학 수업』중에서


『바칼로레아 철학 수업』에서 인상 깊은 말“당연함을 의심하는 틀”을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틀’이란, 생각의 구조를 만드는 능력이다. 대립하는 관점을 검토하고, 그 속에서 자기 입장을 정리하며, 타인의 주장도 충분히 이해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는 곧 비판적 사고의 기초이자,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요한 시민적 자질이다.

표현이란 단지 유창한 말솜씨가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정리하고, 타인의 입장도 수용하며,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능력이다. 그 과정은 결국 '내 생각을 의심하고, 다듬고, 재구성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나는 내 아이가 단지 정답을 잘 맞히는 아이가 아이로 성장하지 않았으면 한다. 질문을 던질 줄 알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구성하며, 타인과 대화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훌륭한 시민이 되고, 단순히 이분화 될 수 없는 지금의 컬러풀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진짜 힘이라고 믿는다.

결국, OREO 글쓰기와 바칼로레아 철학 교육이 지향하는 바는 같다. 지식의 전달을 넘어, 스스로 질문하고 사고하며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기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의 목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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