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의 기쁨, 확장의 순간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하여

by 율리


"독서는 자아를 분열시킨다. 즉 자아의 상당 부분이 독서와 함께 산산히 흩어진다. 이는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니다." 해럴드 블룸 <교양인의 책 읽기> 중에서

이 말에 한참을 머물렀다. 무슨 말일까? '분열'이라는 단어가 주는 불안한 뉘앙스가 무조건 적으로 좋을 것 같던 '독서'와 만났다. 거기다가 슬퍼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혼란스러운 이 말을 곱씹을수록, 독서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음을 느낀다.

책을 읽는다는 건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다. 읽는 순간, 지금까지의 나는 잠시 해체된다. 낯선 문장, 타인의 시선, 생경한 사유 방식이 내 안으로 스며들고, 자아는 흐트러진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의 목소리로만 존재하지 않고, 수많은 '나'를 경험하게 된다. 블룸이 말한 자아의 분열은 혼란이 아니라 확장이자, 풍요이다.


조승연 작가는 그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독서의 본질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는 "책은 주식이 아니라 영양제"라고 말한다.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의 맥락에 따라 적절히 흡수하는 독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작정 책이 좋다는 것도 아니고, 책을 통해 삶이 풍요로워지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나에게 진짜 필요한 생각과 언어를 어떻게 골라내느냐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결국 메타포다" 이 말에 큰 울림을 받는다.

사실 우리의 삶은 물리적 경험만으로 이해되기 어렵다. 슬픔, 실패, 상실 같은 감정들은 구체적 언어로 옮겨져야만 이해된다. 책은 그 언어를 제공한다. 같은 실패라도, 어떤 이는 그것을 '추락'이라 부르고, 어떤 이는 '씨앗이 떨어지는 순간'이라 부른다. 뜨거웠던 사랑의 종말도 누군가에겐 '붕괴'이고, 누군가에겐 '계절이 바뀌는 순간'일 수 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독서에서 얻은 비유의 언어, 메타포적 사고다.


책은 단순한 묘사를 넘어 삶을 다시 쓰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어쩌면 요즘 영상이 책을 대체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 답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상을 통해서는 알프스의 풍경을 그저 '보는'것으로 존재를 알려준다면, "은이 녹아내려 산을 덮은 것 같았다"는 문장을 통해 '느끼는' 것으로 승화시키는 그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있다. 이렇듯 책은 우리 안의 감각을 섬세하게 일깨우고,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들어 준다. 결코 영상이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독서에도 함정은 있다. 조승연 작가가 지적하듯, 책 속에만 머무르다 보면 현실과 단절되기 쉽고, 타인의 목소리에 길들여지면 자기만의 생각을 잃을 수 있다. 그렇기에 더욱 균형 잡힌 독서가 중요하고, 좋은 책을 분별하고, 읽으면서도 끊임없이 나만의 질문을 던져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책을 읽는다는 건, 내 안에 잠든 수많은 '나'를 깨우는 일이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며, 복잡한 현실을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일 것이다. 정보가 아니라 의미를 획득하기 위한 행위, 단순한 나에서 풍부한 나로 확장되어 가는 여정. 결국 우리는 책을 통해 흩어짐으로써 비로소 온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완벽한 안전과 불완전한 자유, 그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