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전달자』를 읽고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는 완벽하게 통제된 사회를 그린다. 이 공동체에서는 모든 것이 규칙으로 정해져 있다. 12세가 되면 직업이 배정되고, 배우자는 호환성을 고려해 공동체가 정해준다. 심지어 성욕을 비롯한 다양한 욕구와 감정까지도 매일 복용하는 약으로 억제된다.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부모로부터 분리되어 양육자에게 맡겨지고, 노인들은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안락사를 당한다. 이 곳에는 는고통과 갈등이 없다. 금쪽이 같은 아이도, 끔찍한 범죄도 없다. 대신 진정한 선택의 자유도, 깊은 감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주인공 조너스는 12세가 되어 임무를 부여받는데, '기억보유자'라는 특별한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그는 '기억전달자(The Giver)'로부터 과거의 기억들을 전수받으면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색깔도, 음악도, 사랑의 감정도 모르고 살아가던 그는, 기억을 통해 '인간다움'이라는 걸 알게 된다. 전쟁의 참혹함과 함께 가족의 따뜻함을, 죽음의 슬픔과 함께 사랑의 기쁨을 동시에 경험하며, 조너스는 결국 그 완벽한 통제 사회를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책을 읽으면서 묘한 감정을 마주한다. 조너스가 살아가는 이 공동체가 끔찍한 곳이라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의 삶이 주는 안정감을 납득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매일 무엇을 입을지, 어떤 일을 할지 고민하고,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이 사회를 살며 끝없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대학 전공부터 시작해서 직업, 연애, 결혼, 육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순간이 선택의 기로다. 그 선택들 앞에서 우리는 늘 불안하다. 잘못 선택하면 어떻게 될까, 더 나은 선택을 놓치는 건 아닐까 하는 후회와 걱정이 따라온다. 실패할 걱정도, 잘못된 선택을 할 두려움도 없는 책 속의 세상이 주는 편안함을 부정할 수 없었다. 적어도 조너스의 공동체에서는 그런 고민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요즘 나를 비롯해, 현대인들은 자율성에서 오는 '다양성과 불확실성'에 대한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질병이 증가하고, 학교폭력이 심각해지고, 각종 사건사고가 빈발하자 사람들은 더 강력한 대책을 강구하고 싶어한다. 학교 교실마다 CCTV를 설치하자하고, 더 많은 규제와 통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
선택의 자유가 늘어날수록 그 선택에 따른 책임과 불안이 함께 커진다. SNS에서 무엇을 올릴지, 어떤 댓글을 달지부터 시작해서 인생의 중대한 결정들까지, 모든 것이 우리의 몫이다. 때로는 누군가 대신 결정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코로나19를 겪으며, 정부의 강력한 통제에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던 것도 어쩌면 그 일환일지 모르겠다. 물론 책 속의 극단적인 통제 사회까지는 아니겠지만, 나 역시, 그리고 많은 어른들이 알게 모르게 그런 통제를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생각이 든다. "너희를 위한 일이야", "안전을 위해서야", "미래를 생각해서야"라는 달콤한 말로 아이들을, 그리고 서로를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학교에서는 "교육을 위해서"라며 학생들의 행동을 규제하고, 직장에서는 "회사를 위해서"라며 개인의 시간과 자유를 제한한다. 부모들은 "다 너를 위해서"라며 아이들의 진로를 결정하려 하고, 사회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라며 점점 더 많은 감시와 통제를 정당화한다. 보호라는 명목 하에 선택권을 박탈하고, 안전이라는 이유로 자유를 제한하는 일들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조너스의 공동체 사람들처럼 자유를 향한 감각이 알게 모르게 무뎌지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균형이 중요하다. 완전한 자유도, 완전한 통제도 답이 될 수 없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고, 안전에는 제약이 따른다. 중요한 것은 그 균형점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그 균형의 중심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를 판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아침에 정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를 위해서 지혜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건강한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 한쪽의 일방적인 결정이 아닌,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대화하고 토론하며 함께 답을 찾아가는 그 과정 말이다. 어쩌면 내가 조너스의 공동체에서 가장 숨막히고 무서웠던 건, 그런 대화와 토론 자체가 차단되어 있었다는 것일지 모르겠다. 또한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혹은 강제적으로 만들어진 통제 역시, 공동체를 위해 지켜야 할 선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제에 따라 생각하고, 질문하고, 더 나은 것이 무엇일지 고민했으면 한다. 그리고 그런 자유로운 생각, 자유 의지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설령 그 자유가 때로는 고통스럽고 불편할지라도,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무언가 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조나스가 기억을 통해 깨달았듯이, 고통 없는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닐 수 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선택할 권리가 있다. 어떤 책을 읽을지, 어떤 영화를 볼지, 누구와 시간을 보낼지, 어떤 생각을 할지 선택할 수 있다. 이런 작은 자유들이 모여서 우리의 삶을 구성한다. 조나스가 마지막에 공동체를 떠나며 느꼈던 것처럼, 불확실하고 위험할지라도 진정한 삶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한다.
『기억 전달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안전하지만 무미건조한 삶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불확실하지만 생생한 삶을 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 자체가 가능한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일지 모르겠다.
-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읽으면 정말 좋을 책
- 자유와 통제, 기억의 중요성 등 다양한 사회 현상과의 연결로 토론
- 1984, 멋진 신세계 등 확장 독서
- 영화와 비교하며 이야기 확장 가능
- 열린 결말로, 각자가 생각하는 결말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