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을 발명하는 시간

by 율리
진정한 자유는 우리가 스스로를 인식할 때 시작된다


언제가 메모해 둔 이 문장을 바라보며, 나는 내 나이 '마흔'을 생각한다. 마흔이 된다는 건, 단순히 숫자가 바뀌는 일이 아니었다. 그건 어느 날 문득, ‘나는 이제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를 묻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요즘 SNS에는 나이보다 어려 보이려는 40대를 향한 말들이 넘쳐난다. ‘영포티’, ‘젊은 척’
쏟아지는 밈들을 보며, 처음엔 그저 웃어넘겼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 말들이 조금씩 마음에 남는다. 그 안에는 단순한 농담 이상의 뉘앙스가 있었다. 패션이나 외모의 이야기를 넘어선, 세대의 태도에 대한 어떤 평가 같은 것들 말이다.


40대는 분명 다르다. 밤을 새우면 이틀은 피곤하고, 익숙한 이름이 문득 생각나지 않는다. 끊임없이 나아가던 머리와 몸이 이제는 조금씩 멈칫거리기 시작한다. 그럴 때면 “나는 이제 정말 나이 들었구나” 하는 자각이 조용히 찾아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자각 속에서 나는 조금의 자유를 느낀다. 젊음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지금의 나이.


누군가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애쓰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고, 또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내 속도로 사는 삶을 허락하는 순간, 나이듦은 더 이상 나를 억누르지 않았다.


“모든 세대는 자신만의 나이듦을 발명한다.”는 말처럼, 우리 세대의 나이듦은 이전의 어른들과는 다르다.
권위로 존경받던 시대는 지나갔고, 말보다 태도, 경력보다 감정의 온도가 중요한 시대에 우리는 스스로의 방식으로 ‘어른다움’을 새롭게 써 내려가야 한다.

요즘의 40대는 흔히 ‘낀 세대’라 불린다.윗세대처럼 권위를 지닐 수도 없고, 아랫세대처럼 자유롭지도 않다.
하지만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조금 더 유연한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가르치기보다 배우고, 이끌기보다 함께 고민하는 어른. 그게 내가 바라는 ‘새로운 나이듦’이다.


후배들과 일하다 보면, 내 말, 행동, 방식이 올드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엔 자연스럽던 것도 누군가에겐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럴 때면 한발 물러서서 솔직하게 묻는다. 가끔은 그 질문이 부끄럽고, 어떤 이는 귀찮아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는 척하기보다 배우려 하고, 정답을 강요하기보다 질문하려 한다.


요즘 세상에는 ‘어른의 부재’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그건 단지 나이 든 사람이 줄어서가 아니라, 존경할 만한 태도를 가진 어른이 줄었기 때문일 것이다.생각해본다. 어른으로 산다는 건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를 매일 묻는 일이라고.

나이듦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매일의 작은 선택 속에서 발명된다. 어떻게 말할 것인가, 어떻게 들어줄 것인가, 그리고 어떤 얼굴로 내일을 맞이할 것인가. 그 질문들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만의 어른다움을 만들어가고 있다.

나는 ‘젊어 보이고 싶은 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젊음이 겉모습이 아닌 태도에서 비롯되기를 바란다. 조롱과 시선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그 속에서 진짜 어른의 얼굴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늙어가는 몸 안에서도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짜 발명해야 할 나이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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