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취미’라고 부르는 것에 대하여

by 율리


"책을 쓴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독서를 취미로 하지 말고 일처럼 하라." 최재천 교수님이 한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 짧은 한 문장이 크고 묵직하게 마음에 다가왔다. 누군가 취미를 물으면 주저 없이 "독서요"라고 말하던 내게, 새로운 시각과 민망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말이었다.


생각해보면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무료한 시간을 채우기 위한 활동이 아니다. 한 권의 책 뒤에는 그것을 쓴 사람의 깊은 고뇌, 삭제된 수많은 초고, 포기하지 않은 감정의 흔들림이 숨어 있다. 잘 정리된 글은 늘 단단한 고민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그런 책을, 너무 편하게 대충 넘기다가 덮어버리는 일이 얼마나 무심한가.


물론 우리는 누구나 가볍게 책을 읽을 자유가 있다. 모든 독서가 무겁고 치열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책을 '취미'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여지를 남기게 된다. 내킬 때만 읽어도 되는 일. 지루하면 중단해도 괜찮은 일. 그저 유희로만 소비하는 일. 책이 우리에게 건네는 질문을 애써 외면해도 되는 일.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많은 책은 그런 태도를 전제로 쓰이지 않았다.


어떤 저자는 독자의 잠든 감각을 깨우기 위해 썼고, 어떤 저자는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써내려갔다. 불편해지라고, 생각하라고, 때로는 괜찮다고 안아주기 위해 쓴 글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요즘 그 정성들을 너무 쉽게 대했다.


요즘 나는 자주 책 읽기를 미룬다. 오늘은 너무 바쁘니까 내일 읽자. 저녁엔 피곤하니까 주말에 몰아보자. 그러다 결국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훌쩍 흘러간다. 그래도 하루 30분 읽은 날이면 스스로에게 칭찬을 건넨다. "안 읽는 것보단 낫잖아." 하지만 그 생각이 오히려 나를 가로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책은 가끔 30분을 내어주는 대상이 아니다. 때로는 한 시간, 두 시간, 혹은 며칠 동안 파고들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어떤 책은 한 페이지에 멈추게 하고, 어떤 책은 서너 번을 반복해서 읽게 만든다. 또 어떤 책은 필사하고, 생각을 써내려가며 눈으로만 읽어서는 안 되는 것들도 있다. 그 정지의 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성장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요즘의 나는 그저 책을 읽었다는 것에만 의미를 두고, 얇은 지적 허영심에 위로를 느낀다. 느리게 읽는, 천천히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어내려가는 한 페이지의 통찰이 열 권을 스치듯 읽는 것보다 훨씬 깊이 남는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렇다고 모든 독서를 무겁게만 받아들이라는 뜻은 아니다. 때로는 숨을 고르듯 가볍게 읽어도 된다. 책은 우리의 속도를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책을 단순한 취미로 규정해버릴 때 우리 스스로 깊어질 기회를 놓쳐버린다는 게 아쉽다.


그래서 나는 요즘 다시 펜을 든다. 밑줄을 긋고, 여백에 생각을 적고, 필사하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조금 더 진지하게 다가가려 노력한다. 읽은 것들을 다시 내 삶에 들여놓기 위해. 이렇게 책을 대할 때, 독서는 더 이상 '읽기'가 아니라 '이어지는 경험'이 된다.


누가 취미를 묻는다면, 이제는 조금 머뭇거리게 될 것 같다. 독서를 취미라고 부르기엔 너무 많은 것이 걸려 있다. 누군가 써내려간 고민 속에서 나의 생각을 닦고, 마음을 비추어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책장을 펼친다. 여전히 30분 만에 덮을 때도 있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미룰 때도 있다. 완벽하게 실천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다.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조금 더 정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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