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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Jun 20. 2021

오로지 나에게 집중한다는 것에 대해

<나 혼자 산다>에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 "전현무"님이 출연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리를 비웠던 그의 등장이 조금 어색하기도, 반갑기도 했다.


그간 그가 보여주던 혼자 사는 일상은 무기력하고, 기름기 가득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오랜만에 등장한 그의 일상은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잠시지만 한옥에 살고 있다. 새소리에 잠을 깼고, 아침으로 직접 만든 야채수프를 먹는다. 앞마당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달팽이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마루에 누워 낮잠을 청하고, 작은 방에 앉아 글을 쓴다.


누구보다 활발하고, 자본주의에 충실했던 그의 바뀐 모습에 모두가 놀라워했다. 그 스스로도 머쓱했는지 사십춘기가 온 것 같다고 얼버무린다. 순간 그런 그에게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나 혼자 산다 방송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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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꽤나 속세와 가까운 사람이다. 예전에는 더 그랬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서, 약속도 많이 잡고 모임에는 꼭 참석했다. 술도 많이 마시고, 누구나 인정하는 ‘인싸’ 사람이었다. 그때의 나는 고독이, 외로움이 싫었고 관심이 그리웠고, 사람들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애타게 찾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나에게 육아, 코로나 같은 환경적인 요인이 찾아왔다. 언제나 그랬듯 나는 같은 곳에 서 있었는데, 변화를 바라는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바람은 계속 나를 이끄는데, 그 방향이 어딘지 몰랐다. 그 자리에 서서 미친 듯이 헤매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면 되냐고. 계속 물으면서, 혼자이고 싶지 않아 했다.


인생은 한 번뿐이고, 너의 인생은 끝나가고 있다. 그런데도 너는 너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마치 너의 행복이 달려 있다는 듯이 다른 사람들의 정신 속에서 너의 행복을 찾고 있구나
-명상록 제2권 6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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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 오랜 시간 동안,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부분이 있지만) 사람들과의 관계, 시선에 빗대어 인생을 살았다. 자꾸 어딘가로 가면 되는지 두리번거렸다. 혼자 그 자리에 서서 바람을 그저 느꼈으면 되는데, 왜 자꾸 답을 타인에게서 원했을까.


요즘 이렇게 진지해진  내 모습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너에게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어..”

친구들이 놀라워하고 어색해한다.

누구보다 자본주의적인 네가,

왜 이런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냐고,

뭐가 이렇게 널 변하게 했냐고 묻는다.


사실 나는 변하지 않았고,

그냥 똑같이 여기에 서 있을 뿐이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누군가를 애써 찾으려 하지 않는다는 거다.



즐거운 은둔.

그냥, 일단 그 자리에 서서 조용하게 

나에게 집중하려 이것저것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책도 읽고 싶어 지고

그림도 그리고 싶고,

명상도 하고 싶고, 요가도 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이 깊어지다 보면

글로 써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

물론 지금 이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마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다.


나는 자본주의에 살고 있고,

경쟁시대에 살고 있고,

회사라는 정글에 있고,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자식이 있다.

여전히 같은 곳에 서 있고,

끝없는 바람들은 세차게 불어 닥칠 것이다.


여전히 흔들리는 나지만,

바람에 맞서 눈을 감기도 하고 

헝클어진 머리를 가다듬어도 본다.

사회라는 거대한 수레바퀴 속의 삶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작은 바퀴를 굴릴 수 있는 삶의 기쁨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신기율, <은둔의 즐거움> 중에서


조심스럽게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 같다고 생각해본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와서,

사람들 눈치만 살피느라 나를 돌아보지 못한 이들.

건강한, 즐거운 은둔을 모르는 사람들 

고독과 은둔의 방법을 찾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오랜만에 돌아온 나 혼자 산다의 전 회장님도,

확인할 길은 없지만

같은 맥락의 고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며,


답이 될지는 모르지만,

질문을 가진 모든 이에게

조심스레 책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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