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글을 쓰기로 했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어떤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사실 매일 글을 쓰고 있긴 하다. 찰나에 떠오른 아이디어나 소재를 발견하면 메모장에 빠르게 옮겨 적고 노트에 여러 날의 감정을 적었다. 하지만 모든 날의 메모가 하나로 뭉쳐지지 않는 기분이다. 매 순간 충실하게 진심을 적었다 생각하는데도 기록 속의 자신이 낯설다. 어제의 기록 속에서 홀로 멀찍이, 소외감을 느낀다. 이 기록은 누구의 기록이며, 어제의 나는 무엇을 느낀 거지. 모든 감상을 도로 되찾아오고 싶을 만큼 나의 기록을 스스로 질투하기 시작했다. 어떤 내용을 써내고,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생각의 흐름에 따라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확신이 들지 않는 게 당연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그럼에도 무언가 적어내지 않으면 버티지 못할 상태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최근 혼자 보낸 시간이 많았다. 깨어 보낸 시간과 나도 모르게 잠들어버린 시간의 경계가 모호할 만큼. 꽤 많은 시간을 이런 상태로 흘려보냈다. 온갖 생각의 아지랑이 속에서 나를 건져내는 일이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 많은 생각에 빠져있다 보면 그 생각에 실제 무게 추가 달린 것처럼 물리적인 힘이 생긴다. 그 힘이 강해질수록 몸도 정신도 꾹 눌려간다. 정답은 알고 있다. 나를 서있지 못하게 만드는 문제들의 상념에서 빠져나오면 될 일이다. 하지만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었다면 애당초 이 글을 써야 할 필요성조차 자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들은 이런 생각을 잊기 위해 명상을 하거나 운동을 하라고 한다. 몸을 격렬히 흔들거나 생각을 비워내면 남들의 조언처럼 함께 찾아온 불안은 잠깐 잦아든다. 하지만 그 생각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잠들어있다. 언제 다시 깨어나 괴롭힐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내 주위를 성실하게 지킨다.
모든 상황을 종합해 봤을 때 나는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 누구보다 갈길을 확신하고 이해하고 있었던 내가, 스스로와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 누구보다 내 힘을 자신했던 내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완전함을 바라는 사람이 됐다. 이런 상태가 나쁘다고만은 얘기하고 싶지 않다. 이 모든 신호들이 나를 다시 내가 진정 원하는 길로 데려다 주기 위한 과정인 것 같다. 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불행 속에서 행운을 발견하게 하는 역설, 놓치고 있던 것들을 다시금 점검하게 하는 본능처럼 느껴진다.
오랜만에 합정의 한 카페에서 친구를 만났다. 그간 아주 가깝지는 않았어도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이나 소중한 인연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친구의 시선으로 나라는 사람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어쩌면 나보다도 내 강점을 잘 알고, 내가 어느 때에 반짝거리는 사람인지 오목조목 알려줬다. 그동안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꺼내지도 못한 꿈을 회피하기에 급급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상상만 해도 벅차오르게 만들어준 일들. 해낼수록 생생하고 살아있다는 감각을 몸소 가르쳐준 일. 그간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무엇이 됐든 꿈조차 포기해 버릴 만큼 간절한 건 없으니까. 훗날 더 큰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면 마음이 바뀔지는 몰라도, 적어도 지금이 아니라는 건 안다. 그 친구를 통해 많은 용기를 얻었고, 더 이상 쓸데없는 생각은 멈추기로 다짐했다.
넘쳐나는 자기 연민도 이제 그만.
새로운 희망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
짓누르고 아프게 하는 것 말고 생각이 실체가 되는 진짜 희망에 대한 이야기.
친구가 내 희망을 다시 꺼내 보여준 것처럼, 어떤 것이든 주저하지 않고 용기내어 써보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