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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Aug 27. 2019

결혼의 우선순위

발리에서 결혼하기 02


저희 부부는 이벤트 프로듀서입니다.


저의 첫 직장이자 현 직장인 곳에서 막 신입 딱지를 뗄 때쯤 다녀온 회사 연수회에서 만났습니다. 사실 그 전에도 바로 옆자리여서 오가다가 마주한 적도 있고 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도 있지만 서로 관심이 없었어요. 그랬던 저희가 친한 친구들까지 속이며 2년 동안 비밀연애를 하다가 우연히 같은 팀이 돼버려, 어쩔 수 없이 팀장님께 커밍아웃(?) 했을 때 리액션은 이랬습니다.


Great, you can stay back and work together!
아주 좋았어, 둘이 남아 같이 일하면 되겠네!


몇날밤을 내리 새워도, 장기출장을 밥먹듯 해도, 둘이하면 괜찮대 (읭?)


그 이후에 제가 회사를 잠시 떠날 때까지 '커플은 같은 팀에서 근무하지 못한다'는 회사 불문율을 깨고, 친절히 윗 상사에게도 비밀로 해주시면서 저희를 케어해 주셨죠.


덕분에 서로 일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기도 했고, 또 그 스트레스 때문에 나오는 진상 성격도 남김없이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결혼 준비를 시작할 때 가치관에 대한 부딪힘은 당연히 있겠지만, 정말 '일'하는 일은 전혀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맨날 하는 일이 이벤트 기획인데, 결혼쯤이야!


훗, 이정도 쯤이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What a plot twist you were.
당신은 얼마나 스토리의 반전이었는지.


정말 결혼 준비는 싸움의 무한반복이었어요.


생각해보면 제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친구들의 리액션은 두 가지로 나뉘었었는데, 한 부류는 "드디어 가는구나!!?"였고 나머지는 "앞으로 서로 잘 싸우며 해결해!"였습니다. 전자는 싱글인 친구들이 많았고요, 후자는 백 프로 결혼한 친구들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웃으며 "우리 원래 맨날 싸워서 괜찮아" 했는데, 이에 무색하게 저희는 결혼식 얘기만 나오면 사사건건 싸웠습니다.


너... 정말 맘에 안들어 (feat. 비행기에서 빡세게 싸운 흔적)


웬만하면 1년 내에 식을 올렸으면 했던 저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준비하고 싶어 하던 그


4성 이상 리조트에서 한가로운 결혼식을 원한 저와,

편안한 분위기의 빌라에서 밤새 놀고 싶어 하던 그


테이블에서 코스 요리를 먹고 싶은 저와,

뷔페 스타일로 양껏 먹게 하고 싶은 그.


친한 친구들에게 미리 축사와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저와,

친구들은 손 끝 하나 움직이게 하고 싶지 않다는 그.


몇 가지만 나열했지만 큰 틀을 잡는 것부터 세세한 디테일까지 어느 하나 맞는 의견이 없었습니다.  특히 저희는 양가 부모님께서 "너희 결혼식이니 너희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우리가 도울 일 있으면 말하렴" 하고 말씀해 주셔서 한편으로는 더도 없는 축복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모든 결정을 저희가 하게 되어 그만큼 부담도 되었어요.


몇달간 싸움이 끊이지 않던 저희는 이러다가는 결혼 준비도 하기 전에 그만두겠다 싶어서, 급기야 저희와 가까운 부부에게 "슬기로운 결혼센터"를 요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곱게 포장한 구글홈을 뇌물로 바치며 저희는, "우리가 결혼할 때까지 우리의 중재자 역할 및 기타 필요한 조언, 행동, 조치를  좀 해줘” 라며 눈물의 호소를 했습니다.


도와 달라고 보낸 편지, 결혼 다음날 아침, 슬기로운 결혼센터의 중재안에 싸인한 결혼 서약서는 예쁘게 액자에 넣어 배달되었다 (계약종료)


어이가 없어하며 사다 바친 선물을 태워버리겠다고 하던 부부는 그 하룻밤 저희의 푸념을 듣더니 한 가지 조언을 하더군요.


하아, 너희...일단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그중에 우선순위를 정해 보는 게 어때?


정말 간단하지만 근본적인 솔루션이었어요. 생각해보니 저희는 논의해야 할 포인트들을 정리해 놓지도 않은 채 그냥 생각나는 대로 논쟁을 펼쳤었습니다. 그날 밤 부랴부랴 인터넷에서 #결혼체크리스트, #결혼준비항목 등을 검색한 저희 부부는 나름의 체크리스트와 고민 포인트를 우선순위대로 나열해 봤습니다:


1. 식장 (리조트 vs 빌라 vs 결혼식장)

2. 하객명단 (직계가족만? 친구는 얼마나? 친척의 남/여친들은? (...!))  

3. 날짜(손 없는 날? 연휴가 낀날? 방학이 낀날? 발리의 건기는 언제?)

4. 예산 (예상 지출 내역 및 시기별 자금 조달)

5. 음식 (인도네시아식? 코스요리? 중국요리? 한국요리?)

6. 예복 (대여? 제작? 구입? 한국에서? 싱가포르에서? 온라인으로?)

7. 예식 순서 (싱가포르식? 한국식? 발리식? 아님 우리 맘대로?)

8. 메이크업 (한국 출장? 싱가포르 출장? 발리 현지? 아님 내가 직접?!)

9. 스냅/비디오 (멋스러운 사진? 자연스러운 사진? 그냥 친구가 찍어준 사진?)

10. 데코레이션 (꽃장식? 부케? 전구? 테이블 세팅?)


그리고 가장 중요한 또 하나,


무엇보다 결혼 준비에 휩쓸려 '우리'를 잊지 말기


이렇게 우선순위를 정하고, 저희는 매주 일요일 오후는 결혼 준비에 전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그 즐겁고도 험난한 여정에 뛰어들었지요. 




2019년 6월.

발리에서 결혼했습니다

준비하면서 느꼈던 바들, 또 알아본 정보들을 천천히 털어놓을 예정입니다.


<<발리에서 결혼하기>> 

00 - 프롤로그: 발리에서 결혼하기

01 - 어떤 결혼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02 - 결혼의 우선순위

03 - 우리, 어디서 결혼할까? 

04 - 데스티네이션 웨딩 101 

05 - 누구를 초대할까에 대한 짧은 고민

06 - 발리 결혼 체크리스트

07 - 언제 결혼할까에 대해서

08 - 발리 결혼식의 복병들

09 - 결혼식 일정 짜기

10 - 결혼식날 웃으면 안 돼?

12 - 다음날 아침에 보니.


#결혼 #결혼준비 #발리웨딩 #국제커플 #데스티네이션웨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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