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착각이 만든 착한 며느리
나는 어린 시절, 말수가 적은 아이였다. 아니, 말수를 줄여야 하는 아이였다. 집안 공기는 늘 팽팽했다. 바람 한 점 스며들 틈 없이 긴장으로 가득 찼다. 그날의 공기가 차가운지, 무거운지, 폭풍이 몰아칠 준비를 하고 있는지 온 감각을 곤두세웠다. 아빠의 얼굴이 구름처럼 변해갈 때, 나는 숨을 죽였다. 작은 일 하나에도 표정을 살폈고, 기류를 읽었고, 정해진 선을 넘지 않기 위해 발끝을 들고 걸었다. 걸음걸이를 조심하고, 작은 기척도 삼켰다. 어떤 일이든 잘해야 했다. 실수하지 않아야 했다. 그래야 안전할 수 있었다.
그 믿음은 뿌리처럼 깊이 박혀 내 안에서 자랐다.
나는 ‘잘해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자랐다. 누구에게나, 언제나. 그리고 결혼 후에는 ‘착한 며느리’가 되었다. 시어머니의 작은 눈빛 변화, 입술 끝에 스친 뉘앙스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먼저 알아채고, 말이 나오기도 전에 움직였다. 그리고 그녀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을 때면, 나는 안도했다.
이런 며느리 없다
그 한마디가 나를 살게 했다. 내가 가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 말을 듣고 나면 마치 깊고 거친 물살을 헤엄쳐 와 드디어 작은 뗏목 하나를 붙잡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한 번이라도 기대에 못 미치면, 나를 향한 말이 평소보다 짧아지면, 시선이 머뭇거리기라도 하면 다시 깊은 바다로 가라앉았다. 마치 심연으로 끌려 내려가는 것처럼. 내가 뭘 잘못했을까? 무엇이 부족했을까? 상대를 원망하고, 나를 책망하고, 다시금 더 잘하려 애썼다.
그러다 문득, 멈춰 섰다.
나는 어디까지가 나인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 사람인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은 어디까지인가.
이 질문들을 떠올려본 적이 없었다. 내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단 한 순간도 내 삶을 살지 않았다. 부모의 기대에 맞춰 살았고, 시댁의 기대에 맞춰 살았다. 같은 쳇바퀴를 돌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다른 길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나는 이제야 안다.
내가 스스로를 잃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남의 기대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채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