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칭찬보다 지적을 먼저 배우다

상장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다

by 향긋한

“그런 거 받아서 뭐해?”

엄마의 목소리는 무심했지만, 그 말은 작은 칼날처럼 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어린 마음은 그 자리에서 철렁 내려앉았고, 찬 기운이 스며드는 걸 하나하나 느낄 수 있었다. 장남의 아내가 되어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온 엄마는, 딸 둘을 낳고 마침내 얻은 아들을 옆에 앉히고 퉁명스럽게 내게 그렇게 말했다. 마치 내가 손에 쥐고 있는 상장이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언니와 나는 조용한 아이들이었다. 학교에서는 사고 한 번 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공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상장을 내밀었다. 혹시라도 칭찬을 받을까, 혹시라도 엄마가 "잘했어"라고 말해 줄까, 마음 한구석에 작은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냉소였다.

그 자리에서 무언가 툭 하고 끊어졌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보는 앞에서 상장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러자 엄마는 그제야 물었다.


“아니, 왜 상장을 찢어?”

하지만 그건 궁금해서 묻는 질문이 아니었다. 무관심과 당혹감이 뒤섞인 기계적인 반응일 뿐. 나는 그 순간을 통해 알았다. 애쓰고 노력해도, 기대하고 바라봐도, 부모의 관심과 지지는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 차라리 ‘어이없는 행동’이라도 해서 관심을 받는 게 낫겠다고. 그렇게 해서라도 존재를 증명해야만 한다고.

‘잘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배웠다. 몸이 아파 받아쓰기 공부를 못했던 날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처음으로 받아쓰기 30점을 받았다. 시험지를 들고 있는 내 손이 가늘게 떨렸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웠던 건, 아빠의 눈빛이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 침묵이 내 존재를 부정했다.그의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넌 상대할 가치도 없어.’

몸을 떨며 시험지를 쥔 채 서 있는데, 마침내 그의 입에서 칼날 같은 말들이 떨어졌다. 그것은 차가운 쇠붙이처럼 날카롭게 가슴을 후벼 팠다. 하지만 그날 이후, 아빠는 말보다 더한 것들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내가 집 안에서 보일 때마다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내가 거슬리는 먼지라도 된 것처럼.

내가 지나갈 때마다 의미 없는 독설을 흘렸다. 마치 내 존재 자체가 실수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자랐다. 하지만 부모의 사랑을 받아 본 적 없는 아이는 결국 부모의 눈치를 읽는 어른이 되었다.

애쓰고 노력해도 당연한 것이 되는 삶.

내 감정보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먼저 살펴야 하는 삶.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보다, 남들이 나에게 원하는 것을 먼저 고려해야 하는 삶.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수하지 않기 위해, 지적받지 않기 위해, 몸을 웅크린 채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삶.

나는 그렇게, 눈치를 보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살고 싶다.

더 이상 스스로를 지워가며 존재를 증명하지 않겠다.

더 이상 눈치를 보며 내 감정을 뒤로 미루지 않겠다.

이제는, 온전한 나로서 살아가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하루에 딱 10분 생산적인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