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의 혈액암 진단 1
독자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새마을 운동을 시작으로 이룬 산업화 성공으로 해외에서 산업 연수생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케냐의 나라에서 온 사이먼이라는 청년도 희망의 꿈을 안고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한국의 산업 발전의 기초와 첨단 기술을 배워 국가를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꿈을 펼치고 싶은 22살의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운명은 그에게 전혀 다른 방향으로 펼쳐지는 기막힌 사연입니다. 꿈을 향해 달려가던 그 발걸음이 갑자기 멈춰선 것은 바로 생명을 위협하는 병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의 글은 위 케냐 청년이 한국에서 혈액암을 진단 받고 그와 나눈 대화와 사실 적 내용을 중심으로 치료받는 과정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한 외국인 청년이 희망의 꿈을 안고 온 한국에서 겪은 투병생활 내용으로 항암 치료를 위해 저의 병원에 입원하여 겪은 사례 중심이야기 입니다.
멀고 낯선 타국에서 찾아온 건강 이상 신호 사이먼은 케냐에서 온 성실한 청년이었습니다. 고국의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성실하고 똑똑한 그는 언젠가는 자신의 힘으로 가족을 도와야겠다는 꿈을 키워왔다고 합니다. 한국 정부의 산업연수프로그램에 지원했고, 당당히 좋은 성적으로 선발되어 우리나라에 발을 딛게 된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인천공항에 도착하는데는 15시간의 긴 비행시간. 그 비행기 안에서 아프리카의 한 청년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지 짐작하실 겁니다. 한국에 도착한 순간을 그는 신세계에 온 것 같았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한 것들로 많은 여러 나라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에 넋을 잃기 직전이었다고 합니다.
산업 연수생관리자님과의 따듯한 첫 만남도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물론 한국에 오기 전에 이 메일을 주고 받으며 인사를 나누었기에 전혀 낯설지 않고 친절한 형님 같았다고 합니다.
사이먼은 한국 도착전 일정에 대해 미리 전달 받았습니다. 숙소에 도착 후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정에 따라갔다고 합니다. 고국 케냐를 떠나기 전 '어디에서 살거나 성실하고 부지런해야 한다. 그리고 솔직해야 한다'는 어머님 당부의 말씀을 늘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어 공부를 조금씩 하고 왔지만 부족한 것이 너무 많기에 일이 끝나면 한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었답니다. 그렇게 적응하며 생활하던 사이먼이 한국에 온 지 6개월 한국의 첨단 제조 기술을 배우고, 지속적으로 한국어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인가 몸에 이상 신호를 느끼지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고, 온몸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지며 침대에 자꾸 눕고 싶었다고 해요. 처음에는 한국 생활에 적응하느라 피곤한가 보다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은 더 심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미열이 났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식욕도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동료들이 걱정스럽게 물어봤지만 사이먼은 괜찮다고 웃어 넘기곤 했답니다. 몸에 이상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은 들었지만 병원에 가려면 우선 돈이 필요하고 병원에 간다는 것이 더 무섭고 두려웠다고 했어요. 무엇보다 자신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의 건강 이상을 부정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사이먼은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을 정도로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고,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합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그는 산업연수기관 담당자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을 본 담당자는 즉시 사이먼을 응급실로 데리고 온 것입니다.
외국인 환자를 관리하는 저는 병원에서의 치료적인 것 외에 산업 연수생 관리자 분에게 필요한 행정적인 협조 요청을 했습니다. 다행히 산업 연수생에게 주어지는 의료비 혜택에 관련해서는 가능 범위 내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 주시기로 하고 사이먼에게도 자세하게 안내하며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도록 협조해 주셨습니다.
연수생 관리자 분의 도움으로 사이먼은 저의 대학 병원 응급실을 방문하게 되었고, 응급실에서 기본 검사를 하고 입원 수속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사이먼은 응급실에서 생전 처음 듣는 무서운 말들을 들었던 것입니다.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즉 혈액암 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입니다. 그래서 신속하게 입원 수속을 하고 특수 검사를 통해 정확한 진단이 필요했던 상황입니다. 다행히 산업 연수생 관리자분이 행정적인 절차를 모두 진행해 주셨습니다.
당시 사이먼은 어느 정도 상황은 이해하였지만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받아 들이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많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고 가슴도 두근두근 거리고 심리적으로 상당히 불안해 보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이먼에게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검사를 해야 알겠지만 단순한 피로나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던 증상들이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병의 신호였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자신의 건강도 문제이지만 본국의 가족을 생각하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22살의 꿈 많은 청년은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고민하는 날들이 더 괴로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실을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입원한 사이먼의 병실을 방문하여 가능한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아 주고, 치료 과정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사이먼의 심리적 정신적 상태와 우려하고 있는 부분을 솔직하게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사이먼이 심리적 안정 상태에서 특수 검사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검사가 진행이 되어야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고, 그 진단에 따라 치료 방향을 세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위와 같은 치료의 과정을 하나 하나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외국인 환자 관리 담당자로서 환자인 사이먼과의 관게를 잘 유지해야 앞으로 치료 과정에서 예견 되는 문제들을 잘 극복해 낼 수 있다는 확신으로 조금싹 다가가며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렇게 사이먼과 저는 입원 첫날 부터 조금씩 조금씩 가까이 하며 서로의 마음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꿈 가득한 청년이 먼 타국에서 산업기술 연수를 받던 중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에 대해 정말 마음이 아팠으나 희망을 갖고 사이먼에게 용기를 줄 수 있도록 최선의 도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사이먼은 입원한 며칠 동안은 모든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믿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멀리 케냐에 있는 가족들 생각에 하루 하루 눈물로 시간을 보냈지만 가족에게 연락을 할 수 도 없었습니다.
사이먼은 과연 내가 이겨낼 수 있을까? 두려움과 절망감이 몰려왔다고 했습니다. 외국인 환자 전담 코디네이터인 저도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업무가 힘든 것이 아니라 사이먼의 상황을 바라보는 저의 마음이 힘들었던 것이지요.
사실 사이먼이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검사가 진행 중이고 산업 연수생 관리자 분이 함께 계시어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는 못하고 인사만 나눈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빠르게 입원 수속을 하고 병실로 올라와서는 제가 더 많은 시간을 사이먼과 함께 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처음 응급실에서 잠깐 만난 사이먼의 모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됩니다. 저에게는 검은 피부, 큰 키의 마른 청년이 눈은 얼마나 컸던 지 얼굴에서 공포에 찬 큰 눈만이 보였습니다. 그는 병원 침대에 누워서 초점 없이 천장만 바라보던 그 눈에는 절망과 두려움이 가득했었습니다.
제가 다가가서 영어로 말을 걸었습니다. 'Hello, Simon. I'm here to help you.' 그제서야 사이먼이 저를 바라봤어요. 그의 눈에서 희미한 안도감이 느끼며 눈물이 글썽 글썽거렸습니다. 자신의 언어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다음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