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케냐산업연수생, 혈액암을 치료하다.

사이먼 혈액암 치료 2

지난호에 이어 사이먼의 혈액암 치료 과정을 소개합니다.


입원 수속부터 시작해서 보험 확인, 각종 동의서 작성까지 복잡한 절차들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연수생 관리자 분이 도와 주실 수 있는지도 확인했습니다. 저는 사이먼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어요. 'You're not alone. You're in Korea now. We will take care of you.'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지금 한국에 있고, 우리가 당신을 돌볼 거예요.


나중에 사이먼이 이야기 하지만 제가 자기 엄마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해요. 사실 저도 사이먼과 같은 나이의 자녀가 있으니 그럴 만도 하죠. 혈액 종양학과 담당 교수님도 가능한 환자 사이먼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하시며 손을 꼬옥 잡아 주셨어요.


먼 타국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생각이 들겠어요. 그래서 저는 외국인 환자 관리할 경우 병원 생활 이외, 일상적인 것에 대해서도 가능한 도움을 드리려고 합니다.


환자를 치료한다는 면에서는 같은 목적이지만 그 나라의 의료 제도와 현실적인 절차나 과정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우리의 치료과정, 검사과정 및 투악 등 모든 행위를 할 때 상세하게 안내를 해 주고 있습니다.


사이먼이 입원하자마자 정밀 검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골수 검사, 염색체 검사, 각종 혈액 검사 등 정확한 진단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검사가 일정대로 진행되었습니다.급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에 따른 모든 검사가 순차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한국 대학 병원의 시스템을 많은 외국인 환자들이 놀라는 이유입니다. 오히려 우리나라 환자 분들이 검사가 빨리 진행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시할 때가 있기는 하죠. 물론 다른 이유로 지연되는 것이지 실제 검사 일정은 우리나라가 정말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검사를 시행하면 당일 결과 확인이 가능한 검사도 있고 며칠 걸리는 결과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골수 검사나 세균 검사의 경우에는 균 배양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이 검사 속도는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수준입니다.


혈액 종양 낵롸 교수님은 검사결과를 바탕으로 사이먼에게 정확한 진단 결과와 치료 계획을 자세히 그리고 쉽게 이해하도록 설명해주셨어요.설명 과정은 의학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그 용어를 영어로 풀어서 이해하기 쉬운 단어로 천천히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사이먼이 일상의 생활을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 지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의료진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환자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환자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치료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셨지요. 저도 평소에 환자에게 강조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의사,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가족도 할 수 없는 환자 만의 역할이 있음을 분명하게 강조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항암 치료를 하게 되면 식욕이 많이 저하됩니다. 일반적인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오심, 구토 증상이 일반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면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고, 체중이 감소되면서 기력도 없어지게 되지요. 쉽게 말해 암세포 벼룩이 잡다가 환자의 몸인 초가삼간 집을 태우는 격이 됩니다.


즉 항암 치료를 하다가 몸의 건강 상태가 저하되어 다음 항암 치료를 하지 못하게 될 수 도 있다는 것입니다. 항암 치료는 계획된 단계로 치료가 되어야 결과를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함암 치료 일정을 제대로 준수하지 못하면 결과를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말이 됩니다. 최근에는 고단백 수액 주사도 있어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환자 자신이 식사를 해야 하는데, 어느 누구도 대신 먹어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환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치료에 대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도 마찬가지 입니다.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지 않습니까? 환자 자신이 병에 대한 긍정적인 극복의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제가 암 병동의 환자를 관리하면서 늘 이야기하며 환자 분들과 보호자들과 면담했던 생각이 납니다.


불안과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있던 그에게 희망의 빛이 되었을 것은 담당 교수님과 저는 사이먼을 위해 사소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것들까지 일상의 모든 일들을 상의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케냐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연락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산업 연수생 관리자 분과도 긴밀한 연락을 통해 가족들에게 현 상황을 전달하기로 했어요. 더 궁금한 내용이 있으면 병원으로 연락할 수 있도록 직통 전화 번호도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외국인 환자 관리 코디네이터인 저와 담당 교수님, 간호사 그리고 병원 행정 직원 및 연수원 관리자 분 등 모든 분들의 직통 연락처를 공유하며 서로 필요한 협조 사항을 긴밀하게 주고 받을 수 있도록 원스톱 서비스 체계로 진행을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이먼을 위한 원스톱 팀으로 한국 의료진에게는 '우리 환자'가 되었습니다.


'항암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 치료 계획이 세워지고 드디어 사이먼의 첫 번째 항암 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 항암제가 투여 되기 시작하면서 항암 치료로 인한 고통이 조금씩 드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오심과 구토가 시작되고, 온몸에 열이 나고, 무력감이 밀려 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사이먼의 증상에 따라 도움을 주기 위해 약물 투여가 되긴 하지만 하루 하루가 지나면서 체력이 떨어지고 무기력해 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머리카락도 조금씩 빠지더니 어느날부터는 한 줌씩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이먼에게는 미리 항암제의 부작용에 대해 충분하게 설명이 되었지만 실제 본인에게 나타나는 것을 보고는 불안해 하는 것이 영역했습니다.


그에게는 낯선 환경 보다는 더 무서운 증상들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자기 자신의 몸이 무너져가는 것을 느끼고 있는 두려움이 밀려온다고 했습니다.

'내가 정말 살 수 있을까?'

'내가 이 시간을 잘 견디어 낼 수 있을까 ?' 긍정과 부정의 마음이 온 머리속에 가득했다고 합니다.


새벽 2시, 사이먼이 고통스러워하며 신음 소리를 냈을 때도 밤번간호사는 즉시 병실로 가서 어디가 많이 불편한지, 통증이 시작되었는지 등 환자 상태를 파악하게 됩니다. 그리고 간호사가 24시간 교대하며 함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키고, 통증이나 다른 증상이 있다면 PRN 처방(필요시 처방)에 의해 적절한 투약을 하게 됩니다.


혹 투약 이후에도 통증이 지속되면 담당의와 상의하여 약물 변경이나 용량을 조절하기도 합니다. 간호사들은

환자의 통증의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통증 사정도구 ( PQRST, NRS)를 이용해서 환자의 통증 정도를 확인하고 그 숫자에 의해 투약 여부를 정하고 평가하게 되어 있습니다.


통증으로 잠을 설치며 보낸 밤도 있습니다. 다음 날이 밝아 아침 식사가 제공되는데도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영양 팀과 상의해서 식사 메뉴를 조절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사이먼은 식사 문제는 크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식사량을 섭취하고 있었습니다.


며칠 간의 항암제 치료를 하는 동안 초기에는 많이 힘들어해서 가족도 없이 먼 타국에서 심리적,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사이먼을 보면서 의료진들도 안타까운 마음에 조마조마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우리 팀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해 보자고 서로를 응원하며 지지하면서 하루 하루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의료진들의 노력과 눈빛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을 느꼈다고 사이먼이 말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의료진의 노력에 힘입어 자신도 더욱 노력했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사이먼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 병원의 의사, 간호사들은 마치 따뜻한 감시 카메라를 가슴에 달고 있는 것 같아요. 어디에 있든, 언제든 누군가 저를 보고 있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그래서 외롭거나 무섭지 않다고 말입니다. 저는 그 사이먼의 말을 그대로 간호사들에게 전달했더니 우리가 따듯한 감시 카메라를 가슴에 달고 근무하고 있나 보죠? 라면서 모두 웃었습니다.


우리 간호사들은 눈에 띄지 않는 세심한 돌봄. 무슨 일을 하든 머리 속에는 사방으로 돌아가는 안테나를 달고 다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자주하는 말이있어요, 간호사들은 멀티 플레이어 ( Multi Players)들이라고요. 환자가 필요로 하기 전에 미리 알아차리고 다가가는 것. 일반인들은 알 수 없지만 간호사들은 환자마다 질병, 수술 혹은 투약에 따라 문제점을 미리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능력이 간호사로서의 전문성입니다.


한국의 간호사들은 단순히 주사를 놓고 약을 주는 것 이상의 투약, 검사 혹은 수술 후 발생 가능한 문제점에 대해 알고 있고, 환자의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 마음까지 보듬으면서 환자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이먼도 점점 치료에 대한 의지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치료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나면서, 사이먼은 점점 병원 생활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의료진들의 진심어린 마음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사이먼이 작은 쪽지를 저에게 내밀었습니다. 서툰 한국어로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한국 사람들의 친절함에 감사합니다. ' 그 쪽지 뒷면에는 영어로 긴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감사의 마음과 감동이 가득 담긴 편지였어요. 사이먼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케냐에 있다면 이런 수준의 치료를 받을 수 없었을거예요. 정말 많은 돈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제가 사는 곳에서 병원으로 갈 수도 없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렇게 최선을 다해 치료해주시니 정말 믿을 수가 없습니다.'


사이먼도 날이 지나면서 간호사들과 이야기도 나무며 많이 밝아진 모습입니다. 병실에서는 한국 아리랑 TV를 시청하며 한국어를 배우기도 하고 궁금한 내용은 노트에 적었다가 문의 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사이먼은 항암치료 일정을 잘 따르고 있고, 병원 생활을 잘 적응하고 있었어요. 꼬옥 치료를 잘 받아서 완쾌되어 다시 한국에 오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한국어 공부도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답니다.


따뜻한 밥 한 끼의 위로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항암 치료 때문에 초기에는 음식으로 조금 고생을 하긴 했지만 영양학적으로 문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영양팀과 함께 특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식사를 섭취하는 것에 비해 몸무게가 감소하고 있었거든요. 영양학적으로 좀 더 신경을 쓰고 케냐 음식과 비슷한 맛을 찾아보자는 의견을 주셨어요.


그래서 첫 번째로 영양팀에서 매일 식단을 점검하며 자극없이 먹을 수 있는 고단백 식사 위주로 메뉴를 조절했어요.그 날 점심에는 따뜻한 곰국이 제공되었는데 사이먼은 첫 숟가락을 뜨더니 유난히 큰 눈의 눈 동자를 위 아래로 굴리면서 말했어요.'이거…. 케냐에서 엄마가 끓여주시던 수프 맛 같아요!'


드디어 사이먼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은 거니까요. 물론 그 외에도 영양팀에서 메뉴 구성을 잘 해 주셨어요. 식사 이후에는 자료를 찾아와 사이먼에게 설명하며 선택을 하도록 배려해 주셨어요.

특히 김치찌개를 먹을 때는 정말 재밌었어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히는데도 계속 먹으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기까지 했답니다.


간호사들도 사이먼의 식판을 보면 보면 밥상이 완전히 비어있다는 거예요.

즉 밥과 국, 반찬을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는 것입니다. 항암치료할 때 몸무게가 저하되면 다음 항암치료 계획에 차질이 생길수도 있거든요. 한국 음식을 좋아해 주는 외국인을 보면 정말 뿌듯하답니다. 아마도 K 푸드 열풍 덕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음식은 단순히 영양을 공급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늘하고 있어요. 일단 배가 불러야 뭔가 하고싶은 의욕이 생기게 되잖아요.그런데 특히 아픈 사람에게는 심리적 위안이 되고, 문화적 소통의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외국인환자 관리에서 각국의 다문화와 관련하여 음식이 주는 의미를 확인한 적이 있거든요.


사이먼은 매일 다른 한국 음식을 맛보는 재미에 입원 생활이 즐거워졌다고 말할 정도니까요. 젊은 청년이라 인터넷 서치도 해서 한국음식에 대한 정보도 관심있게 찾아 보기도 하더라구요. 이제 병원 생활도 익숙하고 치료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고 있으니 얼마다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항암치료는 일정기간 지속한다음 휴식기간이 필요하다 다음 차수로 진행을 하거든요.


휴식기간에는 자신의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해요. 사이먼되 예외는 아니지요. 본인 컨디션에 따라 병원 주변 산책로도 다녀오면서 따듯한 햇살도 쪼이고 간닪한 체조도 하고 병실로 들어오기도 했어요. 물론 병실 밖을 나갈 경우에는 꼬옥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게 됩니다.


혈약암의 경우 혈액을 만들어 내는 기능을 하는 골수의 이상으로 백혈구가 부족해서 외부 감염에 아주 민감하거든요. 외부 감염이 되지 않도록 정말 주의해야 합니다. 환자의 상태 점검 및 활력증후 즉, 맥박, 혈압, 체온 측정을 주기적으로 해야 합니다. 특히 체온 측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제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병원 주변 산책도 하고, 병원 음식도 잘 섭취하고 마음도 많이 안정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사실 케냐에 계신 부모님은 혹여 다른 나라에서 음식이 달라 잘 먹지 못할까봐서 걱정을 하셨다고 해요. 요즈음은 정말 글로벌 시대라 음식도 글로벌화해서 우리나라에도 다른 나라 음식점도 많이 생겼잖아요.

그래서 먹는 걱정은 이제 사라진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도 어느 나라를 가든 음식으로 고생한 적은 거의 없어요. 음식 하나로도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따뜻함을 전할 수 있다는 게 정말 뿌듯하답니다. 저는 음식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과 의료진의 기술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눈물의 생일 파티를 했습니다. 사이먼의 생일이 찾아왔습니다. 환자 입원시 전산에 환자 기본 정보를 입력하기에 우리 간호사들은 환자 생년월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병원에서 맞는 23번째 생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것 같았던 하루라고 사이먼은 생각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오후, 낮번과 초번이 함께 병실 문이 열리면서 간호사들이 들어왔습니다. 손에는 작은 생일 케이크와 조그만 선물을 들고 말이에요. 'Happy Birthday, Simon!'

간호사들이 준비한 깜짝 생일 파티였죠. 사이먼은 완전히 얼떨떨해하더니,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얼굴에는 미소와 함께 크게 어린 소년처럼 정말 좋아하며 크게 웃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웃음 뒤 눈에서 흐르는 눈물도 기억납니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 사이먼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 태어나서 생일을 이렇게 제대로 축하받는 건 처음이에요. 케냐에서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그날 병원 복도에는 생일 축하 노래와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다른 환자분들도 모두 나와서 사이먼의 생일을 함께 축하해주셨어요.’생일 축하해요 사이먼’ 'Happy birthday to you~'


그 생일 파티 이후로 사이먼의 치료 의지는 더욱 강해졌습니다. '이분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 꼭 나아서 건강한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는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이후로도 몇번의 항암치료가 진행되었어요. 그 때마다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그 전에 겪어 본 경험이 있기에 사이먼도 간호사들로 잘 대처하며 극복해 내곤 했어요. 6개월간의 긴 치료가 끝나고, 드디어 사이먼은 이제 고국으로 돌아가도 될 것 같다는 담당 교수님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상태는 양호한데, 케냐에 가서도 정기적인 검진이 필요하니 꼭 잘 관리하라고 말씀하셨어요. 현재로서는 암세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확인된 것 즉,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한국에 희망을 품고 어려운 관문을 뚫고 온 사이먼은 예기치 못한 질병으로 먼 타국에서 항암치료를 받았고, 다시 생명을 얻어 본국으로 귀국을 하게 된 것입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작가의 이전글20.케냐산업연수생, 한국에서 혈액암 진단을 받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