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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Julie Feb 28. 2020

2019년 4월 30일, 나는 퇴사한다.

스물넷, 듣기만 해도 설레고 예쁜 그 나이에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어린 날의 나는 늘 더 잘하고 싶었고, 뭐든 잘 해내고 싶었고, 결과를 인정받고 싶었다.

긴 시간 후회 없을 만큼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고, 치열한 시간들을 책임감과 성취감으로 버텨냈다.

수없이 받아본 인사고과에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던걸 보면 자화자찬은 아니다.

한계를 넘는 업무량을 악으로 버티다 병을 얻어 이른 아침 회사에서 병원에 실려가야 했고,

손에 꼽을 수도 없을 숱한 날들을 화장실에서 숨죽여 울며 스스로 이겨내야 했고,

그렇게 버티며 보낸 날들의 끝엔 텅 빈 머리로 기계처럼 일하는 그냥 조금 더 짬이 찬 내가 있었다.


많이 울었고, 많이 웃었고, 많이 힘들었고, 많이 행복했다.

그렇게 스물넷의 나는 서른셋이 되었다.


대한민국 여자가 대기업 직장인으로 산다는 건 꽤나 괜찮은 타이틀이었다.

열심히 달려온 대학생활을 보상이라도 하듯, 목에 건 사원증은 마치 내 신분을 상승시켜주는 것만 같았다.

누구나 아는 이름의 회사는 부모님 조부모님께 나를 늘 어딜 가나 자랑하고 싶은 딸 손녀로 만들어주었고

매달 통장에 따박따박 들어오는 꽤나 높은 연봉은 가족들에게 더 많은 걸 해줄 수 있는 효녀로 만들어주었다.

회사의 틀에 갇혀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이렇게 흘러 보내는 나의 청춘이 아깝다 생각했지만,

안정적인 생활이 주는 일상의 기쁨들은 나를 '꿈의 직장에 다니는 행복한 사람'으로 포장해주었다.


9년, 그 긴 시간 나는 내 이름 석자 앞에 붙은 회사 이름이 마치 나의 능력인 듯, 

급여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나의 가치인 듯, 그렇게 한껏 으스대며 살았다.

회사가 내 삶의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하도록 그렇게 내버려 두었다.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둔 시간 동안 늘어난 나이만큼이나 계산이 늘었고 걱정이 늘었고 겁이 늘었다.

마치 갑옷처럼 나를 지켜주던, 하지만 그만큼이나 나를 짓누르고 무거웠던, 

그 타이틀을 벗고 나와 온전히 나로 세상에 나가자니 이렇게나 두려운 걸 보면 말이다.

마치 벌거벗고 세상에 나 홀로 서있는 듯, 대체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자신이 없다.


선택에 있어 신중했지만 거침없었고 후회하지 않고 나를 믿고 직진하던 어린 날의 내가 있었다.

용기 패기 넘치던 스무 살 즈음의 내가 언제 이렇게까지 못난 겁쟁이가 되었나 싶다.

인간은 편안함을 느낄 때 퇴보하고, 두려움을 느낄 때 성장한다고 한다.

뭔 개소리냐 싶다. 10년 즈음만에 다시 내 이름 석자로 무언가를 시작하려니 무서워 죽겠다. 

실패할까 봐 후회할까 봐 지금보다 못한 내가 될까 봐.


이곳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에게 문자를 남겼다.

"아빠, 좋은 회사 다니는 자랑스러운 딸로 남지 못해서 미안해요"

아빠의 마음이 무너질 것을 알지만, 이 선택이 절대 쉽지만은 않았던 내 죄송한 마음을 꼭 전하고 싶었다.

"아니야, 좋은 회사 다니는 딸보다 행복하고 보람 있게 사는 딸이 훨씬 더 자랑스럽지, 

네가 행복하면 그보다 더 자랑스러운 건 없다.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고 행복하게 살아라."

아빠의 마음이 내 작고 어린 마음에 담기엔 너무 벅차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대학 입학이며 취업이며 서른이 넘도록 단 한 번도 부모님을 실망시킨 적 없었던 모범생 둘째 딸이었는데,

지금껏 쌓아 올린 안정된 울타리를 벗어나 이역만리 사랑을 찾아 온갖 변화를 감당하고도 그 길을 가겠다니_

그리움보다 앞설 걱정의 무게가 얼마나 큰 불효일까, 이 상처를 어찌 다 갚으며 살아야 할까.


국제연애 12년, 8400km 롱디로 채운 길고 긴 그리움의 시간.

사랑을 미루고 그리움을 누르며 겪어야 했던 구구절절한 숱한 사연으로 가득한 기다림의 날들.

양보와 미련, 배려와 걱정, 그리고 욕심, 한없이 어른스러운 척했던 우리의 두려움과 망설임의 순간들.

스무 살 어린 날에 만나 서로를 이끌어 성장하면서 서로를 위하는 마음만큼이나 힘들었던 '우리'의 한걸음.

사회와 환경이 우리에게 던지는 수많은 훈수를 견디며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많은 것이 변했지만,

꼭 너와 나 우리여야만 했던 서로를 향한 마음과 우리가 함께 그려가고 싶은 삶의 방향은 늘 한결같았기에.

나의 30년 후가 계산기로 두드려질 만큼 안정적인 그 모든 조건들, 그 수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시간을 돌고 돌아 더디고 힘들었지만 결국은 우리의 방향으로 한걸음을 디뎠다.


나는 내 인생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선택'이라는 것을 했고, 

지금부터 내 인생을 온전히 걸고 그것에 '책임'이라는 것을 져야 한다.

삶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기 마련이고, 선택에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다 하였다.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이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내가 잃은 것과 얻을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다.

이 막연한 두려움과 흔들림의 시간 끝엔 조금 더 단단한 내가 있기를.

목적과 방향을 잃지 않고 나의 선택에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걱정보다는 설렘을, 후회보다는 배움을, 생각보다는 행동을 할 수 있는 멋진 30대를 만들고 싶다.

매일 조금씩 더 배우고, 마음을 가득 채워 느끼고, 온전히 행복하다 말할 수 있는 인생을 그려나가고 싶다.

단순한 숫자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추구하는 조금 더 의미 있는 삶을 살자고, 

우리의 행복의 기준을 고민하고 그것을 찾아가는 매일을 함께 만들자고,  

나에게 너의 행복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말해주는 이 세상 단 하나뿐인 소중한 내 사람과 함께.




-2019년 4월 21일, 마지막 월급이 통장에 찍힌 날 어떠한 단어로도 마음이 정리되지 않아 긴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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