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의 삶

그리고 이민을 왔다

by 밍구

내 주변 사람들은 왜 미국이나 캐나다가 아니냐고 묻곤 했다.

돈 벌기도 좋고, 공부하기도 좋지 않냐고.

지도에 다트 던져서 아무 데나 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딘들 못 가겠냐만은,

나의 경우에는 좀 더 독특하고 신중했다.


이민을 가기 위해 여러 나라를 탐색했지만

내가 고민했던 나라는 단 두 곳, 독일과 뉴질랜드 뿐이었다.


독일은 1년간 유학했던 곳이어서 고민했던 것이고,

뉴질랜드는 대체로 다른 영미권 국가들보다

영주권 난이도가 낮기도 했지만

우선 내가 한국인이 많이 없고 인구 밀집도가 낮은 나라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래머블" 한 인간들이 덜 한,

소위 재미없는 곳을 찾는 것이 목표였다.


사실 말하자면, 미친 소리 같겠지만

국가는 크게 중요하지가 않았다.

그냥 한국을 벗어나고 싶었을 뿐.


이민이라는 인생 최대의 선택,

인생을 건 도박,

어쩌면 실수, 아니면 기회.


그 선택을 나는 사람보다 양이 많다는 뉴질랜드로 정했다.

그런 중대한 결정을 정말 쉽게 부루마블 하듯이 결정했다.

내가 어딜 가든 정답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민을 생각하면서 관련한 책이란 책은 다 봤고,

인터뷰도 찾아보고, 설명회를 찾아가서 이야기도 나눴지만

특정 국가를 선택한 사람들의 이유들은

모두 어쩌면 너무 당연하거나 혹은 거짓말 같았다.

그냥 느낌적인 느낌이라고 대답한 어떤 사람이야말로 가장 인간답게 느껴졌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한국인"이 없는 곳으로 가서 살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나를 잘 모르는 곳으로 가서

날 것의 인간 모습 그대로 살고 싶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누군가가 말하는 "이민병" 혹은 "해외도피" 라면

어느 정도 맞다고 고백한다.

한국에서 살 용기가 없는데 대안이 없으면 도피지 뭐..


문제는 소위 말하는 이민병,

"나는 어딘가 다른 곳에서 살게 될 거야."라는 생각을

거의 대학생 때부터 해왔기 때문에...

장장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나는 이민을 꿈꿔왔고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다닌다는 표현처럼..

가슴속에 비행기표를 그리며 살게 되었다.


그래서 그 한국에서의 시간들이
가짜로 느껴진 것이다.


가상 세계, 마치 게임을 하듯이..

캐릭터가 죽으면 아무렇지 않게 "리셋" 버튼을 누르듯이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게 했다.

지구 위에 두 발이 닿지 못하게 했다.

어딘가 붕 떠 있는.. 무중력의 사람처럼.

몸도 마음도 건강하지 못했다.

회사를 퇴사하기 하루 앞둔 사람처럼

나는 한국에서의 모든 일상을 대충 인수인계하며 살았다.

그냥 내 목표는 다른 곳에 있을 테니까.

이게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닐 것 같으니까.


그리고 그 삶이 언젠가 다른 나라에서 펼쳐질 것만 같았다.


일상의 기쁨이나 나 자신을 잊어버리고, 멍하게..

돈을 좇고 아파트를 좇고 승진을 꿈꾸는 친구들처럼

정신줄을 약간 놓고선...


나는 그냥 잠깐 게임을 하듯이,

그저 힘들기만 하고 고통스러운 게임,

돈이나 벌자. 눈 딱 감고, 그냥 버텨내자.

이 거지 같은 회사 생활, 저 윽박지르는 상사,

익숙한 직장 내 괴롭힘, 죽자, 그냥 죽어버리자,

아니 그냥 대충 살자, 잠깐 자고 일어나서.. 그렇게 마무리.


그렇게 매일 일회용 접속 PC로 게임을 하듯이

하루를 흘려보냈다.


그리고 도망치듯 이민을 나왔다.


내 인생은 거기에 있을 거야.라고 믿으며,

내 진짜 인생. 알몸 그대로의 인생. 주문을 외우듯이..

늙은이가 임종을 맞이하고

갑자기 눈을 떠서 30대로 돌아오는 어떤 영화 한 장면처럼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내렸다.




이런 내가 여기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인생은 소설이 아니고 주제가 없으니, 나도 모른다.


나는 거짓으로 글을 쓰고 싶지 않다.

어떤 환상도 주고 싶지 않고, 용기나 허무도 주고 싶지 않다.

어떤 설득이나 카타르시스, 한국에 있는 누군가의 위안을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나라는 인간의 지금 현재,

그리고 흘러가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이 다르듯이, 나 같은 사람도 있는 것일 테다.




그렇게 한국을 떠나온 지 6개월이 다 되어 간다.

이제는 한숨 돌릴 수도 있게 되어 이렇게 글을 쓴다.


신생아처럼 모든 것이 낯설다.

세상을 배우는 아이처럼 냄새를 맡고,

사물을 보고, 또 나를 배운다.


앞으로 한국과 비교하여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는지

내가 살아온 30년을 바탕으로

사람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기록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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