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의 기본적인 의사소통 수준 이상의 영어를 익히려면?
전 지금 영국 캠브리지에 와 있습니다. 온 지 5개월 됐고요. Upper-Intermediate 반에 있다가 지금은 FCE준비반에 있어요. 첨에 반 배정은 인터였는데 한국에서 GIUI까지 선생님 강의로 보고 왔던 상태라 좀 쉽다고 느껴졌었어요. IELTS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제 문제는.. 첨 학원 들어왔을 때 본 레벨 테스트를 다시 봤는데... 점수가 그대로인 거예요. 유럽 애들은 미친듯한 속도로 발전해가는데... 아무래도 시험반에 있어서 이런저런 리딩 아티클을 접하게 되니까 생소하게.. 잘 안 다가오는 문장도 많고. 책을 좀 많이 읽으면 나을까요?
공부를 무조건 한다는 것도 영국에까지 와서 이상하게 의미가 없어지고. 노는 것도 공부가 될 때가 있으니까요. 게다가 내가 배우는 영어가 정말 사람들이 쓰는 거와는 천지차이라는 걸 매번 느끼는 데다가 아직도 영국에서 샵마스터들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들을 때도 많죠.
영국에 선생님이 계셨던 거 같은데 어학연수의 중간까지 와버린 저에게 어드바이스 좀 주시면 안 될까요? FCE반에 있긴 한데.. 이게 IELTS에도 조금은 도움이 되겠죠?
조금 냉정한 시각에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달콤한 사탕보다는 입에 써도 몸에 좋은 약이 필요하신 것이라 생각하니까요.
Upper Intermediate 반에서 FCE 반으로 옮기셨다고요.... 다니고 계신 학원의 레벨 체계(Level System)와 각 레벨의 기준(Level Description)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Level의 명칭에 대해선 일단 크게 의미 두지 마세요. 보통 Low Intermediate 학생들부터 FCE를 지원합니다. 합격선은 CEFR(유럽 언어 공통기준) B2 정도입니다. (아래 표 참고) FCE 반이 Upper Intermediate 위에 배치되었다는 건은 학원의 기본 설정된 Level 자체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 같네요. CAE 나 CPE 반까지 몇 개의 Level 이 더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님의 초기 회화 능력이 어땠는지 제가 알 길은 없지만,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의 경우 현지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하게 진단되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현지 생활 몇 달만으로도 일단 표면적인 의사소통 능력, 즉 말하기는 상당히 발전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단 의사소통이 '안된다'에서 '된다'로의 전환은 아주 놀랍지요. 학생들 본인에게는 종종 너무나 기본적이고 작은 진전이라고 느껴질 뿐이지만, 외국인 선생님들에겐 그것이 매우 의미심장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다인 경우가 많다는 거죠. 많은 학생들이 거기에서 더 이상의 발전을 못하거나, 매우 오랜 시간 정체기를 겪습니다. 사실 그 '발전'이란 게 한국에서 공부하고 쌓아놓은 것들이 현지에서의 강도 높은 노출로 인해 '말하기'로 구현된 것일 뿐이거든요. 그다음의 진전이 있기 위해서는 또 그만큼이 INPUT 이 필요합니다. 그 INPUT 이 없기에 혹은 부족하기 때문에 정체하는 것이죠.
어학연수 가기 전에 최대한 많이 공부하라는 것이 바로 이 이유에 있습니다. 같은 1년이라는 기간 동안 보통 깡초보가 두 계단 정도 올라간다면, 중급 정도 되는 학생은 네 계단 정도 올라가는 폭의 발전을 보입니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러한 발전의 차는 더 커집니다. 연료가 넉넉한 차가 더 많이 가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이제 님께 필요한 것은 연료의 보충, INPUT의 강화입니다. 님에게 필요한 INPUT 이 무엇인가는 님께서 스스로 알고 계시네요. 이제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하시는데, 그 수준이 취약하다는 겁니다. 네 살 짜리도 의사소통은 하는데, 열네 살짜리의 언어 구사력과는 많은 차이가 있지요. 네 살짜리가 열네 살이 하는 말을 전혀 못 소화하지는 않지만,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거나 똑같이 말하지 못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 살짜리임을 감안하고 말해 주지 않으면 종종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합니다. 현지의 가게 등에서 님이 외국인임을 감안하고 배려해주지 않고 그냥 튀어나오는 영어가 안 들리는 것도 이런 맥락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님께서 절실히 필요한 INPUT 이 현지에서 해결되기 좀 힘든 종류의 것이라는 데에 있네요. 정확한 문장의 이해나 구조, 원리 등을 배우기가 쉽지 않으실 겁니다. 어찌어찌 현지 어학 수업의 선생님이 그런 부분을 설명한다고 해도 님께서 잘 소화하기 힘들 수도 있다는 안타까움도 있네요. 불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니니까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애를 써 보세요. 그냥 '이거 해라'라는 식의 답변을 드릴만한 문제는 아니네요. 책을 많이 읽는 것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것이긴 합니다만, 한 두어 권 읽어서 시험 보는 눈이 확 달라지고 점수가 오르는 결과가 오기는 쉽지 않다는 말을 덧붙입니다. Reading 은 장시간 축적되었을 때에 효과가 있으니까요. 그래도 일단 문장이 읽는 속도 면에서는 단기 변화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시험에서 시간이 부족하시거나 한다면 가시적인 변화가 올 수도 있겠네요.
영국계 영어 시험들이 갖는 일련의 성향이란 게 있습니다. FCE 공부는 IELTS 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특히나 영국계 시험들은, 실제 실력의 반영률이 기존 토익과 같은 미국계 시험보다 월등하기 때문에 '영어 잘하면 무슨 시험이든 기본은 할 수 있게 된다'는 원리를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 됩니다.
끝으로 님께서 그동안 카페에 올리신 질문글들을 주욱 훑어봤는데, 여러 면에서 님께서 GIU 과정을 완전히 소화하셨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런 부분들이 이제 표면적인 결과를 보이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영어 학습 태도와 방법 자체에서 아직도 기존의 한국식 주입 교육과 의미 없는 문장 분석 및 규칙 암기 등의 모습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신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일 수 있습니다. 혹시 본인이 생각한 대로 실제 문장이나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일단 거기에 적응해 보려 하기보다는 자꾸 자신이 옳다는 생각이 먼저 들고 따지고 싶고.. 그렇지는 않은지요? 많은 한국 학생들이 실제로 이렇습니다. Critical(비판적)한 태도는 매우 좋은 학습 태도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형태로서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Critical 하되, 우선 자신이 그 속에 들어가 보고 어떠한가를 완전히 경험하는 것이 선행 내지는 병행되는 것이 말을 배우는 가장 좋은 태도입니다.
노는 것도 공부이되, 좀 더 주의 깊고 관찰하는 눈과 귀로 노세요. 하루하루의 대화 하나하나를 스쳐 지나가지 마시고 꼭꼭 새기고 되새김질까지 하세요. 말하기도 한 단계 더 높게 발전하려면 그냥만 떠들어선 안됩니다. 그리고, FCE 시험을 본다던가 뭔가 일상 대화 이상의 영어를 습득하고자 한다면 노는 것으로는 안됩니다. 따로 거기에 맞는 '공부'라는 것을 해 줘야 한다는 것도 말씀드립니다. 그냥 말만 되는 사람은 FCE 점수 못 받습니다. 교육 한번 제대로 못 받은 Native 영국인 homeless 가 FCE 시험 보면 과연 철썩하고 쉽게 붙을 수 있을까요?
마음이 불편한 이야기를 많이 드렸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어가 안 늘어서 불편한 것에 비할까 싶어요. 쓴 이야기를 통해 뭔가 지금이 불편한 상황을 벗어날 방향을 잡을 수 있다면 그까짓 거 뭘까요? 님과 같은 상황의 한국 학생들 지금 미국에, 영국에, 호주에, 캐나다에 수천, 수만 명입니다. 이 중에 그 상황을 뚫고 오는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가 진짜 game이지요. 그게 제 마지막 Message입니다.
네이버 <박상효의 영어카페>에 올라왔던 질문과 그에 대한 제 답변을 브런치로 올리면서 약간의 수정 및 편집이 있었습니다. 원글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https://cafe.naver.com/satcafe/54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