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영어냐 미국 영어냐 보다는 영어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더 중요해요.
이제 막 호주로 유학을 온 학생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호주는 영국식 영어를 쓴다는 점이 많이 걱정이 됩니다. 한국에서는 미국 영어를 더 알아주는 경향이 있잖아요. 제가 대학은 미국으로 가고 싶다 보니 더 고민이 됩니다. 호주에서 영어를 배우고 미국 대학으로 진학했을 시 발음이나 문법 등과 같은 차이에서 문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어차피 호주에 왔으니 '영국 영어가 더 멋있대, 세련됐대, 정통 영어 하면 영국 영어래.' 하면서 자기 최면을 걸고 있는 중인데, 솔직히 영국 영어보다는 미국 영어를 잘하고 싶습니다.
아참! 선생님 동영상 강의 들으려는데 영국판 ENGLISH GRAMMAR IN USE를 구매했는데요. 강의 교재는 미국판이라서 해서요. 상관없을까요?
저도 개인적으로 영국 영어를 더 선호합니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취향과 선택의 문제일 뿐입니다. 미국 영어를 폄훼하거나, 영국 영어가 단연 우월하다던가 하는 것은 어리석고 위험한 생각이지요.
솔직히 어느 영어가 더 낫다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제대로 영어를 구사하느냐이지요. 같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면, 그게 어느 쪽이든 어설픈 한쪽의 영어를 구사하는 것보다 제대로 된 다른 쪽의 영어를 구사하는 것이 낫습니다. 호주 영어, 캐나다 영어 등을 대입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대학이라고 미국인들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이미 미국이란 나라 자체가 다양한 민족과 국적을 가진 사람들의 거대한 도가니입니다. 영국 영어니 호주 영어니 정도가 아니라 아시안들 특유의 악센트부터 별별 오만가지 스타일의 영어를 만나게 되실 거예요. 같은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다른 주나 지역에서 온 사람들의 영어가 구별되곤 합니다.
낯설고 독특한 악센트를 오히려 그들이 신기해하고 매력적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영국 영어에 대한 미국인들의 호감(?)도 일종의 그런 것이라고 봅니다. 무조건 바람직하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 사람도 영어를 섞어 쓰고 발음을 굴리면 좀 있어 보이는 것 같이 취급하는 경우가 많죠. 미국인들도 영어 속에 Spanish 악센트가 약간 섞인 것을 sexy하게 느끼기도 하거든요. 뭔가 나와 다른 것에 대해서 관심이나 흥미를 갖는 것은 누구나 갖는 본능이에요.
하지만, 그것이 의사소통(communication)을 불편하게 하는 정도라면 매력이 아니라 거슬리고 짜증 나는 것이 됩니다. 비원어민(non-native)으로서 영어를 배우는 사람이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점은 이것(의사소통)이지, 영어가 어느 정도 완성(?)된 단계에서나 따질 수 있는 영국 영어니 미국 영어니에 대한 선택이나 판단이 아닙니다.
반기문 전 UN 총장의 영어 악센트가 완전히 미국인이나 영국인 같던가요? 반 총장의 전임이었던 코피 아난(Kofi Annan)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분은 가나 출신이셨죠.) 하지만, 이 분들의 악센트를 트집 잡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반 총장의 연설문들은 훌륭한 평가를 받았고, 언어(영어)에 있어서도 멋진 센스와 위트를 엿볼 수 있는 것들이 꽤 있습니다. 만일 반 총장의 영어가 의사소통이 원활하기 힘든 수준이었다면 UN 총장으로 선출되는 데에 있어서도 그것이 커다란 장애가 되었을 것입니다.
님께서 영국 영어던 미국 영어던 충분히 자유로이 선택하고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개인적 선호를 얼마든지 따르셔도 됩니다. 하지만 앞으로 상당 기간 호주에 거주하실 것이고, 그곳에서 님의 영어의 기반이 다져질 것이라 생각되는데 의도적으로 거기서 습득되는 영어를 님의 선호에 맞추어 제어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 생각되네요.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유학 하면서 님께서 신경 써야 할 것이 단지 영어의 국적만이 아니란 거죠.
미국인과 영국인과 호주인이 서로 소통을 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서로가 구사하는 영어에 대해서 차이를 의식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의사소통을 방해할 정도까지는 되지 않아요. 처음엔 좀 되묻거나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 이내 익숙해집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영어는 각각 미국어, 영국어, 호주어로 구분돼야 하겠죠. 하지만 우리는 그냥 'English'라고 할 뿐, 다른 독립된 언어로 보지 않습니다.
비원어민, 외국인 학생이 걱정해야 할 의사소통의 방해 요소는 호주 영어다, 영국 영어다 등이 아니라 오히려 정확한 문법이나 표현 구사, 발음 및 억양의 명확함 등이 아닐까요? 저는 님께서 미국에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호주 영어를 구사해서가 아니라 문장이 틀리고 표현이 틀리고 발음이 어긋나서 못 알아들을 확률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영어'의 범위에서라면 다양성이나 특징은 부끄러워하거나 비난받아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님께서 제대로 '영어'를 습득하면 다른 영어 스타일의 습득도 오히려 더 빠르고 쉬워질 수 있어요. 어설프게 배워놓은 상태에서 이렇게 저렇게 스타일만 흉내 내려니 힘든 것이지요. 언어학을 공부하면서 수십 가지 스타일의 다양한 영어를 구사하게 된 분들도 있습니다. 이 분들이 처음부터 한꺼번에 다양한 영어를 습득한 게 아니지요. 일단 '영어'가 되니까, 그 원리를 통해 다른 스타일의 영어들에 빠르게 적응하고 응용하게 된 거죠. 다만, 여러 스타일의 영어를 구사하는 것은 개인적인 능력 차이가 큽니다. 한국어의 경우에도 사투리와 표준말을 다 잘 구사하거나 남의 말투 등을 잘 흉내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요.
현재의 언어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영어를 습득하세요. 그것이 영국 영어가 되었든 미국 영어가 되었든, 님은 분명 굉장히 멋진 영어를 구사하는 매력적인 한국인이 되어 있을 겁니다.
끝으로 English Grammar in Use는 Grammar in Use Intermediate의 영국 영어판입니다. 동영상 강의는 미국 영어판을 기준으로 하지만, 학습하시는 데에 큰 지장이 있지는 않습니다. 약간씩 Unit 순서라던가 그런 부분이 좀 헷갈릴 수는 있지만, 영국 영어와 미국 영어의 큰 차이는 제가 한 번씩 언급은 하거든요. 세부적인 내용들은 님께서 복습하시면서 충분히 점검,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비공식적인 얘기긴 합니다만, 호주나 영국에서 제 동영상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상당히 많고요, 캐나다에서도 아이엘츠(IELTS) 준비하는 학생들이 특히 많이 듣는다고 하네요.
위 글은 네이버 <박상효의 영어카페>의 질문/답변 게시판에 올라온 학생의 질문과 그에 대한 제 답변 사례를 기반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