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엔 두 개의 미국이 있었다

신발 벗고 걸었던 토렌스, 그리고 지금

by 헬로 보이저

미국 땅을 처음 밟았을 때,
나는 바닷가 마을, 토렌스에 살았다.

그곳은 신발 없이도 거리를 걸을 수 있을 만큼
조용했고, 깨끗했고, 안전했다.
집 앞 잔디에는 이슬이 맺혔고,
낯선 땅에서 시작된 하루는 의외로 따뜻했다.

그때 나는
‘미국’이라는 단어에 소망을 걸었다.

*

하지만 지금,
그 단어는 더 이상 하나의 이미지로 남아 있지 않다.

내가 사랑했던 미국은
두 개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나는 잔디가 정리된 어바인,
차가 조용히 들어오는 전기 게이트,
아이들이 자전거 타는 안전한 교외의 풍경.

그리고 또 하나는
한인타운의 셔터가 내려진 가게,
밤마다 사이렌이 울리는 소리,
LA 110 프리웨이에서 보았던,
불타는 건물들 위로 흘러가던 그 검은 연기.

*

그곳엔
정말로 두 개의 미국이 있었다.
같은 국기에 손을 얹지만,
누군가는 꿈을 꾸고,
누군가는 생존을 견딘다.

나는 그 두 얼굴 사이에서 살아왔고,
지금은 한국이라는 땅에서
조용히 그 기억을 되짚고 있다.

그래서 오늘 이 글은
이민자로서,
그리고 여전히 그곳에 가족을 둔 사람으로서
쓴다.

**

그곳은 더 이상,
내가 처음 알던 ‘미국’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곳에 여전히 내가 사랑한
햇살 한 줄기만은 남아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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