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urora Light

바다와 시간 사이에 선 궁전

빅토리아 이너 하버의 120년 된 엠프레스 호텔

by 헬로 보이저
페어몬트 엠프레스 호텔 전경 해질녂의 엠프레스 호텔과 항구

BC 주 의사당. 빅토리아 항구의 석양

CANADA 사인과 바닷가와 요트


2025년 7월, 캐나다 빅토리아.


우리는 휘슬러에서 내려와 배를 타고 섬에 닿았다.
항구를 따라 걷자, 바다 위로 요트들이 흔들리고,
그 뒤로 오래된 건물 하나가 묵묵히 서 있었다.

그 이름은 페어몬트 엠프레스 호텔.
1908년 완공된 이래,
120년 동안 이너하버를 내려다보며 시간을 받아낸 궁전이었다.


19세기말, 이곳은 ‘제국의 항구’로 불렸다.
캐나다 철도의 끝이 닿는 지점이자,
태평양을 건너온 증기선들이 정박하는 관문이었다.

그때 지어진 엠프레스 호텔은
왕실과 귀족, 항해자와 모험가들이 맞닥뜨린
육지의 첫 궁전이었다.

외관은 붉은 벽돌과 석재로 웅장했고,
안으로 들어서자 낮은 조명이 공간을 감쌌다.
로비에 앉아 있으면,
지나간 여행자들의 숨소리가 벽 속에 남아 있는 듯했다.

윈스턴 처칠이 묵었던 방,
영국 왕실이 티타임을 가졌던 라운지.
엠프레스의 복도에는
역사가 아직도 천천히 걸어 다니고 있었다.


호텔 앞마당을 지나 바다 쪽으로 걸어 나갔다.
이너하버는 고요했지만,
그 표면 위엔 수많은 출항과 귀환의 시간이 겹쳐져 있었다.

관광 보트, 요트, 작은 물결,
바람이 데려온 소금기 섞인 냄새—
그 순간 바다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기억을 되비추는 거울처럼 보였다.


바다 맞은편에는 돔 지붕 위로 깃발이 펄럭이는 건물이 있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 의사당.

석재로 지어진 이 건물은
여전히 주 의회의 중심이자,
이 도시가 권력과 정치의 무대였음을 보여준다.

밤이 되면 수천 개의 전구가 불을 밝히고,
낮의 엠프레스와는 또 다른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한쪽은 권력을 상징하고,
다른 한쪽은 시간을 증언하는 건축물.
그 두 건물 사이에 바다가 놓여 있었고,
나는 그 사이를 조용히 걸었다.


처음엔 엠프레스가 조금 낡아 보였다.
겉은 우아했지만, 속은 오래된 그림자 같았다.

하지만 며칠을 묵으며 알게 되었다.
겉의 화려함보다,
벽난로 앞의 고요함과 계단에 남은 발소리가
더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는 것을.

바다와 의사당, 그리고 이 호텔은
각기 다른 언어로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다정하게 나이 들어간다.”

엠프레스 호텔 앞의 바다는 지금도 잔잔하다.
물결은 낮고, 햇살은 부드럽고,
건물의 그림자는 바다 위로 천천히 흘러간다.

오늘, 나는 그 기억의 한가운데서 배웠다.

시간도, 공간도,
사람처럼 다정하게 나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엠프레스 호텔 로비 고풍스러운 복도

클래식한 내부 햇살가득한 라운지

애프터눈 티 세트 호텔 인근 거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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