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폐허 위에 피어난 문화의 꽃
빌바오에 처음 발을 디딘 순간
어딘지 모르게 낯선 냄새가 느껴졌다.
쇠 냄새 같기도, 썩은 물 냄새 같기도 했어.
도시는 조용히 자신을 소개하는 중이었다.
트램을 타고 도심을 천천히 훑었다.
곧게 뻗은 철로를 따라,
낯선 풍경이 스르르 창밖으로 흘러내렸어.
빌바오는 철강 도시였다.
무거운 산업의 무게가 남아 있는 곳.
하지만 그 안에서
예술이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구겐하임 미술관 앞에 섰을 때,
시간이 휘어진 듯한 곡선미가 눈을 사로잡았어.
티타늄 외벽이 햇살을 머금고
은빛으로 숨 쉬고 있었다.
거대한 거미 조형물은
이 도시의 과거를 감싸 안듯 우뚝 서 있었고,
꽃으로 덮인 강아지 ‘Puppy’는
조금은 장난스럽게, 여행자를 반겼지.
강 옆 산책길을 따라 걸으며
비스케이 만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마주했어.
도시의 상처가 바람에 실려
조금씩 씻겨 나가는 느낌.
구시가 거리에서 잠시 멈췄다.
좁은 골목 안, 핀초스를 고르던 중
햇살을 마주한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어.
잔잔한 미소.
내가 고른 접시를 힐끗 바라보던 그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말은 없었지만
그 미소 하나가 마음을 녹였다.
조금 뒤,
바텐더가 따뜻한 바스크 치즈케이크를
할머니 앞에 조심스럽게 놓아드렸다.
그걸 받은 손길은 조심스럽고,
그 시선은 따뜻했다.
그리고 다시,
내 쪽으로 살짝 고개를 숙이는 인사.
그날의 인사는
눈빛과 존재만으로 충분했다.
빌바오에서 배운 것.
상처 위에도 예술은 자란다는 것.
미소 하나가 하루를 바꾼다는 것.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준
그 바스크 할머니처럼,
이 도시의 온기는 조용히, 깊게 남는다.
그리고 이 여정 속에서도
나 역시,
다시 그려지고 있었다.
도시가 나에게
“너, 지금 여기에 살아 있잖아”
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어.
그렇게 걷고 또 걷다 보니,
문득 “푸니쿨라”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어.
‘음, 이거 재밌겠다’ 싶어 표를 사고 탑승하려는데…
자동발권기에선 표가 안 찍히고,
뒤엔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섰고,
나는 허둥지둥 스페인어로 뭐라도 말해보려 애쓰고 있었지.
그때 어떤 노신사 한 분이 다가오셔서
조용히 내 표를 스캔해 주고 웃으셨어.
“첫 푸니쿨라 탑승이 쉽지만은 않지?”
라는 말투였을까?
순간, 빌바오라는 도시는
단단하면서도 사람의 온기를 품은 도시구나 싶었어.
그때, 푸니쿨라(Funicular)를 타고
산 꼭대기로 올라갔지.
짧지만 경사진 길을 올라가는 그 순간,
마치 시간도 같이 올라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전망대에 도착했을 때
빌바오는 살아 있는 지도처럼 펼쳐졌어.
하늘 아래 펼쳐진 도시 풍경과 함께,
커다랗게 적힌 "BILBAO"의 싸인을 보았을 때—
나는 정말 여기에 도착했구나,
지금 이 도시의 한 조각이 되었구나,
그런 벅찬 마음이 들었어.
그 풍경은 아직도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올라.
트램을 타고 천천히 도심을 한 바퀴 돌고,
구시가지에서 핀초스를 하나씩 집어 먹으며,
나는 이 도시가 한때 얼마나 아팠는지 생각했어.
그리고 동시에
그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다시 태어난 도시라는 걸 느꼈지.
빌바오는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중심이자
산업혁명기 철강과 조선업으로 부흥한 도시였어.
하지만 20세기말,
산업 쇠퇴로 인해 도시 전체가 침체에 빠졌지.
그 전환점이 된 건 바로 1997년,
프랭크 게리의 손에서 태어난
구겐하임 미술관이야.
이후 ‘구겐하임 효과(Guggenheim Effect)’로 불리는
도시 재생 모델이 전 세계에 회자되었고,
빌바오는 과거를 지우기보다
예술로 껴안고 미래를 창조하는 도시로 다시 태어났어.
또한, 아르티간차 산(Mount Artxanda)으로 연결된
‘Funicular de Artxanda’는
1895년 개통된 빌바오현지인과 여행자 모두가
도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최고의 명소로 꼽지.
나는 오늘 빌바오에서
나 자신도 다시 재건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어.
폐허 위에 꽃을 심는 사람들처럼,
나도 내 안의 슬픔 위에
예술과 꿈을 심어 가고 싶어.
내 머릿속에 남는 빌바오.
잊힌 도시를 재건하여
아티스트 도시로 만든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어.
이 도시가 말하듯,
“과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위한 밑그림이야.”
너와 함께하는 이 여행은
나를 매일 새롭게 그리고 있어
빌바오에서 꼭 가봐야 할 감성 명소 8곳
1. 구겐하임 미술관 (Guggenheim Museum) – 도시를 바꾼 티타늄 예술의 파도
2. 네르비온 강 산책로 (Paseo de la Ría del Nervión) – 빛과 건축이 흐르는 강변
3. 칼레 델 아르테 (Zubizuri Bridge) – 곡선 위를 걷는 감각적 발걸음
4. 카스코 비에호 (Casco Viejo) – 오래된 골목마다 베인 바스크의 숨결
5. 빌바오 대성당 (Catedral de Santiago) – 순례자들의 조용한 기도처
6. 아즈코나 시장 (Mercado de la Ribera) – 지역의 맛과 온기가 살아있는 재래시장
7. 에우스칼 무제아 (Museo Vasco) – 바스크 사람들의 역사와 뿌리를 담은 공간
8. 아르리아 공원 (Parque de Doña Casilda Iturrizar) – 도심 속 여백을 주는 녹색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