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달릴수록 가까워지는 도시
오랜 항해 끝에 도착한 도시, 파리.
그 이름은 오래전부터 나의 버킷리스트 가장 위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날, 마침내 나는 파리라는 무대 위에 조용히 발을 내디뎠다.
르아브르 항에서부터 다섯 시간을 버스를 타고 파리로 향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노부부,
그리고 그들 사이엔 6살쯤 되어 보이는 사랑스러운 아이가 있었다.
계속해서 엄마 아빠에게 제잘대는 그 아이는, 정말 너무 예뻤다.
나는 가방 속에 있던 쿠키를 꺼내 건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제가 옆에서 같이 데리고 가도 될까요?"
그 아이의 이름은 제시카였다.
내 핸드폰엔 ‘모아나’가 저장되어 있었고,
나는 제시카에게 그 영화를 틀어주었다.
작은 손으로 핸드폰을 꼭 쥐고
1시간 반을 꼼짝하지 않고 집중해서 보는 모습은,
그 어떤 예술보다 눈부셨다.
나는 제시카의 부모에게 속삭였다.
“걱정 마세요. 두 분은 잠깐 눈 붙이셔도 돼요.”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파리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려는 찰나,
제시카가 엄마에게 귓속말을 했다.
잠시 뒤, 엄마는 가방에서 작은 팔찌 하나를 꺼냈다.
“제시카가 당신께 드리고 싶대요.”
그 순간 말이 막혔다.
울컥한 마음으로, 고맙다는 말을 겨우 전했다.
그날 나는 알았다.
여행이란,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마법 같은 시간이라는 것을.
버스에서 내려 전기 자전거를 빌렸다.
에펠탑을 찾으려 구글 지도를 따라갔지만,
그 지도는 나를 끝없는 골목으로 돌리고 돌렸다.
"파리는 미로처럼 걷는 도시야.”
나는 오늘 그 말을 전적으로 믿게 되었다.
겨우 도착한 에펠탑과 마주했다.
나는 그 앞에 멈춰 섰다.
단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한 채,
숨조차 잊고 있었다.
마치 파리 전체가 멈춘 것처럼.
에펠탑을 올려다보며 한참을,
정말 한참을 서 있었다.
웅장함이라는 말조차
그 앞에선 한없이 작아졌다.
그 철골 틈 사이로 흐르던 시간.
햇살과 그림자, 바람과 침묵.
그 모든 것이 내 안으로 흘러들었다.
나는 그 탑을 본 게 아니라,
그 탑에 삼켜진 거였다.
정신을 차리고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 의자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문득 떠오른 글귀.
“파리는 어째서 파리인가.”
당신을 사랑의 도시로 데려다 줄…
그 문장 하나.
그리고 여전히 눈앞에 서 있는, 철제의 거대한 구조물.
그 앞에서 나는 내 마음속 감정들도
철처럼 단단해지는 걸 느꼈다.
피곤함보다 먼저 센 강 너머로 퍼지는 역사적 숨결로 나를 감쌌다.
파리는 단숨에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느리게 걷고 천천히 머물다 보면
어느 틈엔가 문 하나가 열리고,
그 안으로 초대받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목적지는 개선문.
1806년, 나폴레옹이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며 착공한 이 문은
전쟁과 제국의 야망, 혁명의 불꽃,
그리고 지금의 평화까지 묵직하게 담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이 도시는 어떻게 상처를 껴안고도 이렇게 우아할 수 있을까."
샹젤리제 거리.
사람들의 발걸음이 오페라처럼 느리게 흐르고,
가로수 아래 어디선가 마법의 주문 같은 말이 들려오는 듯했다.
“넌 지금, 아주 잘 가고 있어.”
파리에서 나를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자전거 핸들 위로 스치는 바람,
샹송처럼 흘러가는 대화,
골목마다 살아 있는 그림자들.
파리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었다.
기억과 감정의 박물관이자,
오래된 이야기가 아직 살아 있는 시간의 미로였다.
그리고
센 강 옆 오래된 다리 난간에 기대어
가만히 흐르는 물소리를 들었다.
이 도시는, 대화보다 침묵이 더 어울리는 순간이 있다.
그 강은 말없이 흘렀지만,
그 속엔 수백 년간의 사랑과 이별,
시인들의 눈물과 음악가들의 고백이 실려 있는 듯했다.
그 물결 위에
나의 오늘이,
천천히 흘러가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파리와 나는 지금,
서로의 이야기를 조용히 읽고 있었다는 걸.
.로미는 속삭였다.
“파리는 단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야.
사람들이 이 도시에 반한 건,
아름다움 너머에 있는 불완전함까지 끌어안았기 때문이야.
15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의 물결이 퍼지기 시작했을 때
파리는 학문과 예술의 도시로 천천히 성장했어.
프랑수아 1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프랑스로 초청했고,
루브르 궁전을 왕실 예술의 중심으로 바꾸기 시작했지.
그때부터 파리는 ‘예술가가 머무는 도시’라는 꿈을 꾸기 시작한 거야.
18세기엔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이 겹치며,
파리는 생각하는 사람들의 도시가 되었고
시인과 철학자, 예술가와 저항가들이
이 도시를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물들였지.
그리고 19세기.
전쟁과 산업혁명, 그리고 ‘파리 코뮌’ 이후…
몽마르트 언덕에는 집 없는 시인들이 모여
세상을 뒤집는 그림과 음악, 이야기들을 쏟아냈어.
모딜리아니, 피카소, 샤갈, 헤밍웨이, 카뮈...
그들은 ‘아름답고도 상처 입은 파리’를 사랑했고
그 도시의 밤과 낮, 커피 한 잔과 담배 한 모금에
인생 전체를 담아냈지.
파리는 결국,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의 감정이 머물 수 있는 도시였던 거야.
그래서 지금도,
어떤 여행자는 이 도시에 와서
자신을 다시 그려보고 싶어 하는 거야.
쥴리도 그랬던 거지.
그날의 바람, 자전거 위에서 돌던 길,
그리고 결국 도착했던 그 순간…
그건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예술이 되는 중이었던 거야.
그리고 나는 안다.
파리는, 우리를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파리에서 꼭 가봐야 할 감성 명소 8곳
1. 에펠탑 (Tour Eiffel) – 가까이 다가갈수록 침묵하게 되는 아름다움
2. 센강 산책로 (Berges de Seine) – 해 질 무렵, 가장 파리다운 순간이 흐르는 강
3. 몽마르트 언덕 (Montmartre) – 예술가의 혼이 남아있는 거리의 숨결
4. 루브르 박물관 (Musée du Louvre) – 영원을 품은 미의 미로
5. 오르세 미술관 (Musée d’Orsay) – 빛과 붓질로 다시 살아나는 인상파의 시간
6. 마레 지구 (Le Marais) – 과거와 현재가 조용히 공존하는 거리
7. 루이즈 공원 (Parc Monceau) – 파리지앵의 느긋한 일상 속으로
8. 생 루이 섬 (Île Saint-Louis) – 센강의 가운데, 고요한 섬의 낭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