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부터 남달랐던 도시

질서와 속도 사이에서, 나는 잠시 멈췄다

by 헬로 보이저


싱가포르로 들어오면서
나는 생각보다 더 긴장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저 다음 나라로 이동하는 여행자가 아니라,
여권의 상태를 계속 확인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페이지가 얼마나 남았는지,
스탬프는 어디에 찍혔는지,
혹시라도 오늘이
돌아가야 하는 날이 되지는 않을지.

그런 생각을 안은 채
창이 공항의 입국장에 섰다.

싱가포르는
입국부터 조용했다.

줄은 가지런했고
사람들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누구도 재촉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같은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사람보다
시스템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는
사람 대신 기계가 얼굴을 본다.

여권을 올리고
카메라를 바라보면
아무 말 없이
문이 열리는 구조다.

나도
그 앞에 섰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다시 한번.
또 한 번.

기계는
아무 감정 없이
나를 통과시키지 않았다.

잠시 생각했다.

아,
내 여권이
9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걸.

그 안에 있는 얼굴은
조금 통통했고,
눈빛은 지금보다 더 반짝였다.

지금의 나는
선이 또렷해졌고
내가 봐도
그 얼굴이 아닌 것 같았다.

그 사이
나는 나이가 들었고
여행을 했고,
시간을 건넜고,
몸도 마음도
조금씩 달라졌다.

기계는
그 차이를 정확히 알아봤다.

직원이 다가와
사람의 눈으로
나를 다시 봤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통과를 시켰다.

그 짧은 순간에
싱가포르는
이미 자기소개를 끝낸 것 같았다.

질서.
속도.
온도.

이 나라는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는 쪽을 택한다.

발리와 길리에서는
기다림이 자연스러웠고
규칙은 느슨했고
시간은
사람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달랐다.

여기서는
사람이 시스템에 맞춰
자리를 잡는다.

입국을 마치고
공항 안으로 들어섰을 때
그 긴장이
조금 풀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쥬얼로 향했다.

창이 공항의 쥬얼은
공항 같지 않았다.
공항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다시 정의하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천장은
거대한 유리로 덮여 있고
그 중심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위에서 아래로,
끊김 없이.

그 물은
폭포처럼 과장되지도 않았고
장식처럼 가볍지도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있어야 해서
있는 물 같았다.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여권 검사에서 보았던
그 질서 정연한 얼굴들이
여기서는
잠시 멈춰 있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
아이 손을 잡고 서 있는 사람,
가만히 물을 바라보는 사람.

공항에서 보기 힘든 장면들이
아무렇지 않게
이어지고 있었다.

쥬얼의 폭포는
위에서 떨어지지만
아래를 지배하지 않았다.

질서는 있었지만
위압적이지 않았고
속도는 빨랐지만
사람을 밀어내지 않았다.

나는
캐리어 옆에 앉아
그 물을 바라보다가
발리에서 싸 온
샌드위치를 꺼냈다.

폭포를 보며 먹는
그 샌드위치가
생각보다
유난히 맛있었다.

이렇게
싱가포르는
입국부터
쥬얼까지
단 한 번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이 도시의 성격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자연스럽게
이 질문이 남았다.

싱가포르는
왜 이렇게까지
정교해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