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나 베이에서 배운 싱가포르의 선택들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마리나 샌드 베이
싱가포르에 도착한 날,
우리는 MRT를 탔다.
깨끗했고, 조용했고,
노선도는 이상하리만큼 명확했다.
다만 문제는 어디서 내려야 하느냐였다.
마리나 베이에서 내려야 할지,
한 정거장을 더 가야 할지.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우리는 결국 마리나 베이 샌즈와 연결된
마지막 역에서 내렸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는
마치 무대 뒤에서 무대로 이동하는 통로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먼저 방향을 틀어
가든스 바이 더 베이로 향했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는
싱가포르가 자연을 ‘보존’이 아니라
‘설계’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선언처럼 보였다.
열대 식물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미래 도시에서 자연이
어떤 방식으로 공존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공간.
거대한 슈퍼트리 아래에서
나는 이 나라가 왜 이렇게 빨리
부자가 되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싱가포르는
땅이 없다는 사실을 핑계로 삼지 않았다.
자원이 없다는 조건을
대신 선택의 정확성으로 메웠다.
무역의 요지라는 지리,
영국 식민지 시절에 남은 제도,
그리고 무엇보다
‘작지만 정확한 국가’가 되겠다는 집요함.
지상으로 올라오자
마리나 베이 샌즈는
럭셔리 브랜드 쇼핑몰과
자연스럽게 연결돼 있었다.
도시의 상징을
관광 사진용으로만 남기지 않고
생활 동선 안으로
끌어들인 구조였다.
두 시간 가까이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계속 짐이 마음에 걸렸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카지노 옆의 러기지 보관소였다.
원래는 카지노 이용객을 위한 공간이었지만,
나는 잠시 맡겨도 괜찮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싱가포르는 종종
규칙과 관용의 경계를
아주 조용히 넘겨준다.
짐을 맡기고 나서야
나는 가벼운 몸으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베이를 가로질러
시선이 멈춘 곳.
마리나 베이 샌즈의 정면,
그 반대편에서
사자 머리에 물고기 몸을 한 존재가
물을 뿜고 있었다.
멀라이언.
싱가포르라는 이름의 시작을 상징하는
이 조형물은
관광객에게는 사진 배경이지만,
이 나라에게는
자신들이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잊지 않기 위한 표식처럼 느껴졌다.
그 뒤로 보이는
세 개의 타워와
하늘 위에 얹힌 배 모양의 스카이파크.
이 건물은
한국의 쌍용건설이 시공했다.
작은 도시국가와
외국 건설사의 협업.
싱가포르는 늘
국적보다 결과를 먼저 본다.
해가 기울 무렵,
베이는 금빛으로 변했고
도시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이곳은
가난을 극복한 도시가 아니라,
애초에 가난해지지 않기로
결정한 도시였다.
그리고 우리는
이 풍경을 마음에 넣은 채
다시 MRT를 탔다.
싱가포르의 마지막 도시라 불리는
우드랜드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창이 공항에서 우드랜드까지,
MRT 지하철은 거의 두 시간을 달렸다.
그 긴 이동 끝에서
나는 알았다.
이 도시는
머무는 법뿐 아니라,
통과하는 법까지
이미 잘 설계돼 있다는 걸.
멀라이언
사자 머리 ‘싱가푸라(Singapura)’, 사자의 도시
물고기 몸. 어촌에서 출발한 항구 도시의 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