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않는 도시, 그 뒤에 남아 있는 역사

조호바루에서 느낀 말레이시아의 정체성

by 헬로 보이저


조호바루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다 보면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떠오른다.

이곳의 ‘말레이시아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

피부색도, 언어도, 종교도 다르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얼굴들은
한 나라 안에 속해 있지만
서로 다른 역사에서 왔다.

말레이시아는
처음부터 하나의 리듬을 가진 나라가 아니었다.

식민지 시절,
노동을 위해 강제로 이동된 사람들,
자리를 잡았지만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한 공동체들.

이 나라는
선택이 아니라
흐름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말레이시아의 역사는
승리의 역사라기보다
겹겹이 쌓인 타협의 역사에 가깝다.

누군가는 이곳이 기회의 땅이었고,
누군가는 머물 수밖에 없는 땅이었다.

그 차이는
지금도 사람들의 태도와 표정에 남아 있다.

조호바루에서
사람들이 쉽게 웃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무뚝뚝해서가 아니다.

이곳에서는
누군가에게 너무 가까워지는 것이
때로는 조심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언어,
서로 다른 종교,
서로 다른 기억 위에
‘국가’라는 이름이 덮여 있다.

그래서 이 도시는
늘 중립적이다.
감정을 아끼고,
거리를 유지한다.

여행자로서
그 모습은 차갑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오래 머물면
이게 무례가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생존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된다.

말레이시아는
자신을 크게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충돌을 피하는 법을 배웠다.

그 결과
도시는 조용하지만,
어딘가 늘 긴장돼 있다.

나는 조호바루를 걷다
여기가 중국인지, 말레이시아인지
잠시 헷갈렸다.

그 혼란 자체가
이 나라가 겪어온 시간의 흔적일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아직도 자신이 누구인지
완전히 말하지 못한 나라다.

그래서 이곳의 사람들은
웃기 전에 한 박자 멈춘다.

그 망설임 속에
이 나라의 역사와 슬픔이
조용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