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밖에서 잠겼다

라오스 이민국에서, 나는 처음으로 갇혀 있었다

by 헬로 보이저


말레이시아에서
일요일 새벽 세 시 반에 일어났다.

오늘은
다시 싱가포르를 거쳐
라오스로 가는 날이었다.

아침 열 시 비행기.
세 시간 뒤면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나라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라오스 비자는
미리 신청해 두었다.
VB자였다.

조금 늦게 신청하긴 했지만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늘 그래 왔으니까.

하지만
라오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그대로 붙잡혔다.

세 시간.
네 시간.

이유를 물었고,
사정을 설명했고,
다음 일정도 말했다.

오늘 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가 있고,
이미
5일 뒤 티웨이 항공권도
예약해 두었다고.

저녁이 되어서야
답이 왔다.

티웨이 쪽에서
리젝트가 났다고 했다.

지금도
그 이유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 순간부터
선택지는 사라졌다.

나는
라오스에 들어가지 못했고,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가
그다음 날
다른 항공편으로
한국에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약 이백만 원을 썼다.

이것도
배웠다면
배운 걸까.

저녁 여덟 시.
그들은 나를
이민국 안쪽의 방으로 데려갔다.

2층 침대 두 개.
혼자 쓰는 방이었다.

‘이것도 경험이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방으로 들어가기 전
휴대폰과
모든 디바이스를
다 내놓으라고 했다.

규칙이라고 했다.

답답했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이
밖에서 잠겼다.

그 순간
분명히 느꼈다.

아,
나는 지금
갇혀 있구나.

너무 피곤해서
그대로 잠에 쓰러졌다.

새벽 한 시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여자아이 둘이
방으로 들어왔다.

한 명의 이름은
알린이었다.
열여섯 살.

중국에 들어갔다가
무비자 문제로
감옥 같은 곳에
6일 동안 갇혀 있었다고 했다.

그곳에서는
칫솔질도 한 번 하지 못했고,
밖으로 나가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다시 라오스로 돌아왔지만
아이의 얼굴은
전혀 안도한 얼굴이 아니었다.

알린은
계속 주변을 살폈고,
문 쪽을 자주 바라봤고,
조금만 소리가 나도
몸을 움찔했다.

너무 어렸다.
그리고 아직
너무 예뻤다.

다른 한 명의 이름은
BI이었다.

라오스 사람이었고,
중국 남자와 결혼해
다섯 살 아이와 함께
중국에서 살다가,
비자가 익스파이어 되어
쫓겨나듯 돌아왔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영어를 하지 못했다.

우리는
손짓과 눈빛으로만
서로를 이해했다.

나는
말을 아꼈다.

알린은
밤새 불안해했고,
잠들지 못했고,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그 아이의 불안은
지금 이 방에서 생긴 게 아니라
이미
몸 안에 자리 잡은 것처럼 보였다.

열여섯 살짜리 아이가
감옥 같은 공간에
여섯 날을 갇혀 있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그리고
그 기억을
앞으로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가슴이 아팠다.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어서
더 아팠다.

아침 아홉 시.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공포가 밀려왔다.

혹시 나도 알랜같이 중국에서처럼
여기서도
며칠을 갇히는 건 아닐까.

휴대폰도,
여권도
모두 그들이 가지고 있었다.

아침 여덟 시부터
우리는 문을 두드렸다.

소리를 냈다.
계속 두드렸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열 시가 되어서야
문이 열렸다.

나는
싱가포르 비행기가
열두 시라고 말했다.

지금 나가야 한다고
거의 외치듯 말했다.

나는 나왔다.

밖의 공기가
이렇게 밝았나 싶었다.

빛이
너무 현실적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그 아이들은
아직 안에 있었다.

하루를 함께 보냈기 때문일까.
마음이 무너졌다.

한 번씩 안아주고 나왔다.

나는 트랜싯으로
다시 게이트로 돌아왔다.

발걸음이 가벼운 게 아니라
완전히 해방된 느낌이었다.

감옥에 갔다 나오면
아마 이런 기분일까.

현실로
돌아왔다는 감각.

라오스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거절당한 건
입국이 아니라
내 마음의 기대였다.

이 나라는 어렵다는 말을
이제야 이해한다.

아니,
이 나라는
사람을 시험한다.

끝까지 버티는지,
어디서 돌아설 수 있는지를.

오늘 나는
돌아서기로 했다.

그 선택은
패배 같지 않았다.

살아 있다는 감각이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나는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간다.
그리고
한국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오늘이
가장 공포스러웠 던 날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