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터호른,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순간
체르마트에서 본 마테호른 설산. 체르마트 공동묘지에서 내려다본 산맥. 체르마트 메인 거리
마테호른 방향으로 이어지는 강변. 체르마트 산책길에서 바라본 계곡 체르마트 구시가지 골목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체르마트로 향하던 날.
하늘에 구름이 조금 있었지만
그조차도 마터호른의 미스터리를 위한 배경 같았다.
아침 8시, 두 번의 환승을 거쳐
체르마트에 닿기까지 약 다섯 시간이 걸렸다.
기차 안,
옆 좌석에 앉은 여성의 배낭이 눈에 들어왔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친다는 그녀는
혼자 여행 중이라고 했다.
서로의 여정과 관심사를 나누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흘러 있었다.
창밖의 풍경만큼이나
그녀와의 대화도 깊고 넓었다.
단어 하나, 눈빛 하나에
여행이 더 풍성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영화 파라마운트 로고 속 그 산을 향해 있었다.
체르마트에 도착한 뒤,
세 번의 케이블카를 갈아타며 오르는 길.
산 사이로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내던 마터호른은
어느 순간, 선명한 실루엣으로 다가왔다.
사진 속에서 수없이 보아왔지만
이렇게 숨결처럼 느껴지는 건 처음이었다.
가슴이 벅차올랐고, 말없이 멈춰 섰다.
CG도 아니고, 영화도 아니었다.
정말, 진짜였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기차역 옆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핫도그와 음료를 주문해
마터호른을 바라보며 조용히 식사를 했다.
방금 본 그 산의 감동이
입안에 오래도록 머무는 듯했다.
그날 하루, 기차만 몇 번을 갈아탔는지
발바닥이 점점 뜨거워졌다.
체르마트에서 전망대까지 오르내리는 동안
모든 교통수단을 다 경험한 기분.
가장 길게 움직인 건 결국 나의 두 발이었다.
호텔에 도착해 신발을 벗었을 때,
양말 속에 남은 열기와
살짝 부은 발끝이
오늘 하루의 여정을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었다.
마터호른은 해발 4,478미터.
스위스와 이탈리아 국경에 걸쳐 있는 피라미드형 봉우리.
그 고요한 위엄은 알프스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수많은 브랜드와 영화 속 이미지로 남아 있다.
1865년, 영국의 에드워드 윔퍼가 처음으로 등정에 성공했지만
함께하던 동료 네 명이 하산 중 추락사하며
영광과 비극이 동시에 새겨진 산이 되었다.
기차 창밖으로 마터호른이 점점 멀어졌다.
햇살은 점점 기울고 있었고,
창문에 비친 내 모습도 조금 지쳐 있었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엔
아직도 그 산의 실루엣이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오늘 하루, 참 많은 걸 지나왔다.
기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케이블카를 오르고,
발바닥이 뜨거워질 정도로 걸었다.
그래도 좋았다.
그 모든 순간이,
지금 이 풍경을 만나기 위해 필요한 여정이었던 것 같다.
케이블카 창 너머로 보이는 스위스 알프스. 마테호른 커피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