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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우 Oct 23. 2019

힙스터

이들은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

힙스터 Hipster 


 프랑스 파리에서 지내던 시절 유독 좋아했던 동네 이자 내 인생의 첫 직장이 있었던 곳이 바로 마레지구(le marais)이다. 크게 파리 시청에서 포비즘과 현대 미술 관련 전시가 다양하게 즐비되어 있는 퐁피듀 센터, 데모가 늘 끊이지 않는 생 마르탱 운하 근처의 레퓨블릭 광장 그리고 바스티유 광장까지를 주로 이야기하는 구역인데 정치적으로도 꽤나 신기한 동네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마레는 전통적으로는 유대인의 동네이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는 프랑스 동성애자의 상징적인 구역이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대인과 동성애자가 공존하고 있는 동네이기 때문인데 그렇기에 팔라펠이라는 지중해 요리가 유명한 동네이기도 하면서 반대로 무지개 깃발이 꽂혀있는 게이바를 쉽게 찾을 수 있는 동네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힙스터’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들어본 곳이다.


 사실 어느 순간 시점부터 ‘힙스터’ 또는 ‘힙’하다는 단어가 꽤나 심심찮게 특히나 젊은 층들 사이에 쓰이는 것을 많이 느낀다.  우리나라에서의 힙스터의 의미는 특히나 힙합 음악 문화와 많이 연관되어 해석되어 사용되는 것처럼 각 나라마다 그 힙하다는 의미가 그 나라의 젊은 층 문화와 맞물려 조금씩 다르게 해석이 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몇 년 전 읽었던 신문기사에서처럼 한국의 기업들이 그 힙스터 소비자들을 붙잡기 위해 맞춤형 마케팅을 한다는 등의 상황을 봤을 때 힙스터라는 단어가 꽤나 대중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는 건 틀림없는 추세 임에는 분명하다.

 통상적으로 힙스터라는 단어의 큰 정의가 대중의 흐름을 그다지 따르지 않고 자기들 만의 고유한 패션, 음악, 예술 등의 문화를 좇는 부류를 주로 지칭하는 의미로써 정의되어지며 이러한 관점에서는 20세기의 크나큰 예술사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완성된 지금의 다원주의를 잘 보여주는 듯하지만 다르게 보자면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더욱 개성이 없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이들의 한계이자 지금의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유인즉슨 남들과는 조금은 다르고 싶지만 결과론적으로 그 다르고 싶음을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 결국엔 모두가 비슷한 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모순적인 의미로 자기만의 고유한 문화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힙스터라는 카테고리 안에 단정 지을 수 있는 것들 즉 유행이 되어버리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요리적인 부분에서는 채식주의, 글루텐(gluten)이 없는 빵과 제과들 그리고 락토즈(lactose)를 함유하고 있지 않은 유제품들을 향유하는 사람들. 심지어 유튜브의 음악 채널 목록을 검색하다 보면 힙스터용 음악이라는 카테고리까지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이다. 


 힙스터라는 단어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지금의 대중적인 의미와는 꽤나 큰 차이가 있다. 40년대의 비트 세대에게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는데 1차 세계 대전, 2차 세계 대전 직후 얻은 미국의 경제적 호황으로 인한 물질 중심적 가치관, 체제 순응적 가치관에 반기를 들며 주류 문화, 물질적 문화에 저항적이었고 그랬기에 하위문화와 자유에 관심이 많은 현실 도피적인 색채가 진한 예술가 집단들을 지칭하는 의미였다. 이들은 제임스 딘과 같은 반항적인 배우들을 숭상하였고 획일적인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비전을 늘 추구하였는데 예술가로서 적나라한 자기표현과 광기 그리고 도덕적 틀에 메이지 말 것을 늘 자기들의 신조로써 여겼다

  그 당시의 힙스터라는 단어가 지칭하던 사람들은 비트 세대 중에서도 마약을 즐기며 비밥 재즈를 즐기는 사람들을 주로 지칭했다고 하는데 비밥 재즈 음악 그 자체가 위에서 말한 하위문화와 자유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이유인즉슨 세계 대전을 기점으로 미국의 재즈 음악의 구조 또한 동시에 변하기 시작하는데 파티 문화가 극도로 발달함에 따라 오케스트라를 방불케 하는 규모의 스윙, 빅밴드가 미국의 경제 대공황 2차 세계 대전 등의 문제로 발자취를 감추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 와 동시에 연주자 소수 몇 명이서 모여 복잡한 코드 구조, 빠른 템포 그리고 규칙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변화무쌍의 즉흥연주가 주를 이루던 비밥 재즈가 유행을 하게 되는데 상위 문화에 반감을 가지고 있고  자유 그 자체를 찾던 비트 세대에게는 너무나 들여 맞는 음악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비트 세대의 가치관을 비트 세대의 가장 대표적 예술가라 일컫는 잭 케루악의 노상(on the road)에서 잘 찾을 수 있다. 본인의 자전적 경험으로 썼던 이 소설은 보편적인 사회, 윤리를 뛰어넘어 술, 재즈, 마약, 히치하이킹을 통해 끝없는 자유를 추구하는 그 당시의 현실 도피적 문화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그 당시 밥 딜런, 짐 모리슨과 같은 미국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게 되는데 히피 문화가 생겨나는 데 있어 많은 기여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다. 그렇지만 히피 세대와 힙스터로 대표되는 비트 세대 사이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꽤나 큰 차이가 있다.  히피라는 단어의 어원이 힙스터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둘은 아예 추구하는 바 자체가 달랐다. 물론 공통적으로 그 당시 미국 젊은 세대의 저항과 반항의 문화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비트 세대는 물질 중심적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자아를 찾자는 일종의 삶의 방식적인 문제였는데 반해 베트남 전쟁,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이후 자연으로의 회귀를 외치며 좌파운동 시민운동으로써 히피 세대는 사회체제와 정치 현실 그 자체에 대한 반항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현실로 돌아와서 미국의 빅데이터의 분석에 의하면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힙스터라는 단어가 다시 부상을 했다고는 하는데 40년대 비트 세대가 추구하던 그 의미와는 매우 상반된 가치관이 지금의 힙스터가 아닐까 싶다. 패션을 예술의 경지로 올렸다는 오뜨퀴트르(haute coûture) 브랜드에서 조차 운동화를 만들고 있으며 40년대 비밥 재즈 문화와 비교될 수 있는 요즈음의 언더그라운드, 인디 음악들이 사실 요즘에 와서는 그 어느 때보다 대중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렇기에 주류문화에 저항하는 의미로써의 힙스터가 아닌 오히려 대중문화 그 자체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즉 현대에 와서 힙스터의 의미란 예를 들자면 명품 브랜드에서 나온 청바지를 입고 한정판 스니커즈를 신으며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풍겨 나오는 갤러리에서의 전시를 보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자아를 찾기 위한 삶의 방식으로써의 비트 세대의 힙스터와 닮은 점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저항적 측면에서의 객체가 그 당시와는 정말 많이 다르다. 

 흔히 일컫는 3포 세대로 대변되는 지금의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갈등, 젠더갈등 등의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세계는 갈등으로 가득 차 있고 부익부 빈익빈의 격차가 더욱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자본주의의 한계를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느끼고 있는 게 지금의 현 상황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초기 힙스터와 같이 무책임적인 의미에서까지는 아니더라도 저항에 대해서 우리가 한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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