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을 날로 먹는다는 것에 관하여
지금은 다른 업을 추구하고자 거창하진 않아도 나만의 회사를 차린 뒤 운영 중에 있지만 그간 ‘셰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직접 ‘요리’라는 행위를 하며 또는 다른 말로는 급여를 받고 길든 짧든 일을 해본 나라가 꽤나 여러 곳이 있다.
가끔은 본인 스스로도 ‘와 꽤나 많은 곳에서 요리사로서의 경험을 해봤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프랑스, 영국, 덴마크, 아이슬란드, 포르투갈, 호주, 일본에서 근무를 해보며 공통적으로 늘 느끼는 감정이 있었다.
바로 쥐똥같은 양만 주며 비싼 고급 요리를 만드는 입장이었으면서도 늘 ‘고향’ 음식이 그리웠다는 점이다. 요리사로서 일을 하다 보면 어릴 적 내가 자라 왔던 환경에 알게 모르게 얼마나 큰 영향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그 기억들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자주 느끼게 하였는데 ‘먹는다’는 행위가 끼니라는 이름으로 매일, 매시간마다 반복되는 것이고 음식 그 자체로 내가 자라온 문화권을 대변해 주기 때문이 아닐까도 싶다.
개인적으로는 나고 자란 고향이 부산이며 대게 많은 사람들이 부산하면 ‘생선회’를 떠올리지만 사실 부산에서도 회를 일상적으로 자주 먹는 것은 분명 맞지 않다고 본다. 서울에 비해서야 가격이 싼 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가격이 저렴한 음식은 절대 아니고 부산의 역사적 뿌리인 동래구는 사실 아예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닷가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본업이 어부이셨던 외가의 영향 덕분에 다양한 어종의 생선회를 맛보며 자라기도 했고 꼭 회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정말 다양한 해산물을 먹어왔던 점은 요리사로서 지내는 동안 얼마나 큰 레퍼런스가 되었는지 늘 감사할 다름이다.
앞서 외국의 여러 나라에서 일해보았다는 언급을 한 주요 요지가 여기에 담겨 있는데 무엇보다도 ‘회’ 즉 생선을 날로 먹는 부분에 있어서는 나의 조국 한국 그리고 옆나라 일본만 한 곳이 없다는 점을 크게 느껴서라고 하겠다. 물론 개인적으로 내가 가보지 않는 미지의 나라들 중에 날 생선 음식을 더 잘하는 곳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독자들께서 반박을 하실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경험 상은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가끔 ‘회'라는 음식을 일본 음식 또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꽤나 있으시다는 걸 느낀다. 아무래도 ‘회’하면 떠오르는 장소들이 오마카세 문화로 대변되는 초밥 그리고 일식 레스토랑의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일본에 식민지를 36년간 당하면서 그때 날 생선을 먹는 문화가 한반도로 유입된 게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왕왕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물론 현대의 한국인들의 ‘회’ 소비법이 일식 식당을 한국 번화가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처럼 일본의 사시미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겠으나 ‘회’라는 단어 자체에서부터 회는 꼭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음식이 아님을 고려해 볼 수 있는데 회는 특이하게도 ‘한자어’ 단어이다.
일본어의 사시미(刺身)와 회(膾)의 한자는 단어에서부터 매우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현대에 들어서 동아시아에서 제대로 날 생선을 먹는 문화는 사실 한국과 일본에만 남아 있으나 ‘회’라는 단어가 한자어에서 왔다는 것은 중국에서도 날 생선을 먹었던 역사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회라는 단어는 사실 꼭 날 생선을 의미한다기 보다도 익히지 않은 날 것의 음식을 의미하는데 그렇기에 ‘육회’라는 단어가 존재하기도 한다. 물론 이렇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회’를 먹는 문화가 중국에서 넘어왔다고 볼 수 없다. 단어를 빌려왔다고 보는 게 맞다고 본다. 고추장 또는 된장 할 때의 ‘장’이라는 단어 또한 중국 한자어에서 넘어온 것처럼 말이다.
의외로 중국에서도 회를 즐겼다는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 있긴 하나 중세시대 즉 송나라 이후로는 아예 그 문화가 사라졌다고 보는 설이 강한데 임진왜란 도중 조선으로 파병을 왔던 명나라 군사들이 회를 먹는 조선인을 보며 미개하다고 생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걸로 보아 중국에서 회가 사라진 것은 꽤나 오래된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물론 회를 먹는 조선인이 미개하다는 부분에서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기록에서 ‘회’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 시대 때의 문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서 찾을 수 있는데 회를 쳐서 먹었다는 기록이 나오고 비교적 근대라 할 수 있는 ‘정약전’의 ‘자산어보’에서도 회를 먹는 방법을 기술하는 부분을 보았을 때 생선회를 먹는다는 것이 일제 강점기 때 한국으로 넘어왔다거나 하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부분이라 하겠으나 지금 현대의 한국인들이 회를 소비하는 방법에서 일식의 영향이 전혀 없다고 보기도 힘들다고 할 것이 고추냉이 즉 와사비는 전혀 한국적 재료와는 거리가 매우 큰 편인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현대 요리에 들어서 일본이 생선 요리 관련해서는 정말 고도로 발전시켰다는 점은 요리사로서 매우 인정하고 들어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서양권 나라들에서 10년 가까이 지내며 생선을 익히지 않고 날로 먹는 문화를 마치 미개하다고 보는 시각을 느꼈던 적이 여럿 있었는데 여기서 드는 의문이 꼭 익혀 먹는 문화가 더 낫고 고급진 문화일까에 대한 고찰이 아닐까 한다.
개인적인 견해로 사실 굉장히 서구 중심의 얼토당토 안 한 생각이라 보는 편인데 이유인즉슨 생선을 날로 섭취하기 위해서도 거기에 따르는 고도의 조리적 기술과 더불어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유럽에서 지낼 때 회가 그리웠으면 생선을 사다 회를 떠서 먹으면 되는 게 아니냐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한국만큼 살아있는 활어의 배송체계가 이렇게나 잘 되어있는 곳이 세계에 몇 군데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유럽의 경우 대부분 생선들이 마지막 소비자들에게 전달될 때 암만 신선하다 한들 생선이 살아 있는 상태로 전달되는 경우는 내 경험상으로는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심지어 고급 식당에서 일을 하는 때에도 이 부분은 마찬가지였으나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자. 부산에서 싱싱하게 갓 잡힌 생선을 살아있는 채로 서울까지 운반을 하여 횟집의 수족관에다 채워 넣어 줄 수 있는 기술과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데 이 부분을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본다면 얼마나 대단한 인프라가 아닌가.
그리고 생선을 날로 먹는 데에 고도의 조리적 기술이 필요하기도 하다. 물론 이 경우에는 대부분 숙성회 즉 ‘선어회’에 해당하는 경우겠지만 개인적으로 숙성회를 참 좋아하는 입장에서 '익히지 않은 생선살에서 이렇게까지 감칠맛이 날 수 있다고?’ 하며 요리사로서도 경외심을 품었던 적이 꽤나 많은데 생선살은 실제로 숙성 과정을 거치면 질감은 푸석해질 수 있으나 생선살 특유의 감칠맛은 굉장히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 일본어에서는 ‘지메’라고 표현을 하기도 하고 실제로 회를 어떻게 써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기도 하고 세꼬시 회처럼 뼈에서 단맛을 느낄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고급 프랑스 요리에서 잘 구운 생선을 통해 전율을 느낄 수 있는 것 못지않게 날 생선에서도 똑같은 전율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한다.
앞서 언급한 부분을 돌이켜보자면 동아시아에서 날 생선을 먹는 문화가 거의 한국과 일본에만 남아있다는 부분을 언급했었는데 이 부분에서 ‘회’와 ‘사시미’의 차이를 좀 더 들여다보면 어떨까 한다.
크게 보았을 때 ‘회’는 살아있는 활어의 포를 뜨고 이 포를 막 썰어서 먹는다고 보는 게 맞겠고 ‘사시미’의 경우 생선살을 숙성시킨다는 점 즉 선어회로 먹는다는 것이 큰 차이라고 보지만 이 부분을 한국과 일본의 환경적 차이를 좀 더 고려해 본다면 쉽게 설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긴 하지만 일본이라는 열도에 막혀서 태평양을 직접적으로 마주치고 있진 않다. 그렇기에 나름대로 근거리에 있는 서해, 남해 그리고 동해 즉 내해에서 생선을 잡아먹었기 때문에 생선을 잡는 과정과 소비하는 과정 사이에 전통적으로 그리 큰 시간적 간극이 있지 않았다.
반면 일본의 경우 태평양을 직접적으로 마주한다는 부분에서 외해를 나가 생선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많았고 이걸 대표하는 생선이 참치가 아닐까 한다. 먼바다를 다녀오는 만큼 잡은 생선을 좀 더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면서 숙성법이 더욱 발달되었다는 설도 있고 조선과는 달리 상공업을 배척하지 않았던 일본의 막부의 경우 그만큼 길이 잘 닦여 있는 편이었고 나가사키에서 잡힌 생선을 도쿄가 있는 간토지방에서도 먹을 수 있었다는 기록이 있었던 만큼 숙성법이 더욱 발달되어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날 생선을 곁들여 먹는 소스에도 큰 차이를 보인다. 사시미의 경우 간장에 ‘와사비’라는
재료를 섞음으로써 와사비 자체의 항균 작용 밑 맛에서 포인트를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는 반면 한국식 회의 경우 찍어먹을 수 있는 장의 종류가 굉장히 다양한 편이다. 사실 대구광역시의 대표적 음식 ‘뭉티기’에서도 날 쇠고기에 찍어먹는 장 맛이 굉장히 중요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회’를 먹는다는 의미가 꼭 생선에 국한된다기 보다도 육고기까지도 범위를 넓혀 볼 수 있고 그 안에 우리나라 특유의 ‘장’ 문화가 큰 몫을 하고 있다는 점 또한 한국식 회의 특이점이 아닐까 한다.
더 나아가서 본다면 동남아시아에서 또한 회를 먹는 문화는 없다고 봐도 무방한 편인데 물론 매우 덥고 습한 기후 또한 한몫하겠지만 한국과 일본의 경우 추운 겨울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이 날 생선을 먹는 문화를 더욱 발전시켰다고도 본다. 모든 생물이 마찬가지 이겠지만 추운 겨울을 나는 생물의 경우 몸에 지방을 축적하기 마련이다. 이 관점에서 회를 뜨기에 추운 바다에서 자란 생선들이 열대 바다의 생선에 비해 살도 더욱 단단하고 지방 덕분에 맛도 훨씬 좋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기후 변화에 의해 ‘만새기’와 같은 열대 생선들이 이제는 남해에서도 잡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동아시아를 넘어서 남미의 페루에서도 ‘세비체’라 불리는 날 생선 요리가 있고 하와이에서도 ‘포케’라는 날 생선 음식이 있으며 요즈음에는 프랑스 요리에서 또한 날 생선 요리들이 보이긴 하나 대부분 기원을 따져 물으면 일본인 이민자들의 영향이나 일식 요리의 영향에서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하겠다.
외국에서 지내던 때 고향 음식이 참 그리웠고 그중 하나가 회였는데 사실 한국에 와서도 크게 달리지는 점은 없다. 일 때문에 서울에서 지내는 지금, 고향 부산의 회가 참 그리고 그 그리움이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