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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Sep 07. 2020

엄마, 무슨 생각 하고 살아요?

두 번째 글쓰기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나의 고등학생 시절을 잠시 떠올려본다. 당시 들었던 음악이 흘러나올 때면 찰나의 장면이 되살아나듯, 글을 쓰면 그때의 내가 살짝 고개를 든다. 어린 시절 나에게 글쓰기란 감정을 분출하기 위한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감정을 토하듯이 쏟아부었던 글쓰기, 나를 정화해주고 마음을 살펴주었던 글쓰기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글에게 미안하다. 온갖 부정적 감정을 글에 담아 꼭꼭 숨겨두고 결국 버려야 했던 그런 글쓰기라서. 엄마가 된 지금 한 글자도 쓰지 않고 살아가는 나를 발견하며 이 또한 미안하다.


나에게 글쓰기는 새로운 도전이라기보다는 편안함에 가까웠다. 마치 어린 시절 함께한 토끼 인형처럼.

문득 한 글자도 쓰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끌려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두 어린아이를 키우는 일상이란 건 내가 앞장서서 끌어가기보다는 질질 끌려가고 있을 때가 많은 것이다. 또다시 정신 차리고 아이들에게 해 줄 것들을 챙기고, 웃는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 보며 웃고 있을 때야 비로소 오늘의 시간도 잘 가고 있구나 라고 느낀다. 그런 내가 하는 생각이라는 건 저녁밥 뭐 먹지? 오늘은 뭐 하고 놀아주지? 이런 아이와 관련된 일상이 대부분이다. 이런 소소한 일상만 즐기며 살아가도 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겠지만 때론 그 일상 속의 질문이 편안하지만은 않은 것이 인생살이다. 마음 한 구석엔 해결하지 못한 무언가가 항상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인 것이다.



나는 전업맘이다.
특이한 점은 중국에서 살고 있다는 것 정도.
평범함이 지긋지긋했던 난 평범함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20대를 보냈는데,
엄마가 되고 나서, 그것도 한참 후에야
그제야 내가 정말로 평범해져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업맘’이라는 단어는 실로 놀라운 무게가 있고,
난 거기에 짓눌려 버리고 말았다.



엄마가 되기 전 나는 대기업 광고회사 AE였다. 차장 승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으로부터 중국 발령 소식을 들었다. 계속 광고 일을 할지, 마케팅 분야로 이직을 할지, 아니면 대학원을 다닐지 고민하던 시기였다. 더군다나 몸과 마음이 조금 지쳐있었던 난 반가웠다. 그래 중국에 가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 학교 다니며 중국어를 배우는 거야! 마치 내 인생의 돌파구 같았고 주변에서도 나를 부러워했다. 처음에는 어학연수 시절처럼 학교를 다니고 외국 친구들을 사귀고 오랜만의 자유를 만끽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빨리, 첫 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나서 임신 사실을 알았고, 아기를 가진 행복을 마음껏 만끽하기도 전에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지옥과도 같은 입덧이 찾아왔다. 입덧이 잠잠해지자 다시 학교를 다녔고 만삭까지 두 번째 학기 공부를 마쳤다.


아이를 낳고도 계속 그렇게 공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대는 내 착각이었고 쌩초보였던 나의 중국어는 막 초보를 벗어난 상태에 불과했다. 그렇게 일상에 끌려가다 둘째가 태어났다. 23개월 터울 두 남자아이를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내 손으로 키우고 싶다는 욕심은 때론 엄마인 나를 갉아먹는 일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어느덧 6살, 4살이 되었고 나는 여전히 중국에서 살고 있으며 손놓았던 중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있다.

때론 여전히 나를 갉아먹으며, 상처는 아물고 새 살이 돋아나며 그렇게 육아하고 있다.



그리고, 그 평범한 ‘전업맘’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평범함의 무게를 어느 정도 이겨낸 것 같은 지금

다시 글을 쓰고 싶어 졌다.



엄마로 살아왔기에 결코 평범하지 않은 시간들을 담은,

그러나 너무도 사소해서 일상 어디에나 배치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일상에 하나둘씩 배치하는 것 같은 사소함이 때론 하루를 좌지우지하듯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통해 나의 마음을, 나라는 사람을 조금씩 들여다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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