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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Sep 15. 2020

바꿔 나가기

바꾼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안에서 밖으로’라는 뜻을 담고 있지 않나 문득 생각한다.

바꿔 나간다. 바꿔서 나간다.


너무 멀리 있는 것은 바꾸기 쉽지 않지만, 내 손이 닿는 작은 것부터는 바꿔 나가기 쉽다.

거실에 소파와 티브이를 치우고 식탁 겸 책상과 책장을 놓았다. 결혼 8년 차, 중국 생활 7년 차, 신혼의 설렘에 고르고 고른 우리의 가구들은 어느덧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결혼 1년 후 남편이 중국에서 주재원 생활을 하게 되면서 1년 차의 풋풋한 가구들은 끙끙대며 바다를 건너왔으나 손 때 묻을 자리를 찾지 못하고 창고 속으로,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갔다. 주재원 생활이라 내 집 마련의 부담은 없어서 좋았지만 이미 가구까지 다 세팅이 되어있는 집에서 나의 취향을 존중받는 건 불필요한 사치였다.


한 때는 인생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고, 나는 그 흘러가는 물에 몸을 맡기면 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의 목표인지 누구의 목표인지도 모른 채, 목표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알 수 없는 지점을 향해 달려가야만 했던 시절. 허무함이 나의 몸을 휘감았었고 그렇게 물이 나를 감싸듯 흘러가듯 살다 보면 앞이 보일 것이라고 막연히 믿었었다. 때론 발버둥 치며 때론 흘러오며 지낸 시간들 끝에 그것이 무척 위험할 수도 있는 생각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한 살, 두 살 그리고 10년 단위로 나이를 먹고 지나오면서 뿌옇던 것들이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기도 한다.


내가 그렇게 무력해졌던 이유는 살면서 사실 나 스스로의 힘으로 바꿔나갈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걸 깨달았었기 때문이리라. 내가 태어난 곳, 부모, 생김새, 성격 등.. 주어진 채로 가진 채로 그렇게 살아가듯, 그 외의 것들도 내가 발버둥 친다고 엄청나게 달라지는 게 없는 건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버둥 쳐야 한다고 믿는다. 발버둥이라는 단어는 너무 안쓰러우니 하루하루 작은 탑을 쌓는 것에 비유하면 좋겠다. 땅에 바짝 붙어있어 눈에 띄지 않지만 계속 쌓다 보면 어느새 시야의 중심에 서게 되는 그런 블록 쌓기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바꿀 수 없는 것 안에서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끝까지 노력하고 관철시키는 건 정말이지 중요한 일이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만큼이나 중요하다. 나를 잃지 않는 일이고, 나를 찾는 일이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면, 이 정도가 어디야. 주어진 것에 감사하자 라는 말들은 때로 마음을 아프게 찌른다.




스스로 골랐다면 절대 고르지 않았을 지저분한 소파와 거의 틀지 않는 커다랗고 까만 티브이를 창고에 보관하기로 집주인과 협상한 뒤 우리 집 거실은 조금씩 나다움을 찾아간다. 이렇게 거실 구조를 바꾸고 가구를 치우며 내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바꿀 수 있는 것들을 찾는다.


그런 작은 것들이 조금씩 쌓여 안에서 밖으로  선을 허물고,

나아가  테두리 밖의 무언가를 바꿔나갈  있을지는 

스스로를 비롯한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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