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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Sep 18. 2020

어린시절, 육아의 밑천

육아의 밑천 1


내 육아 방식, 육아 신념, 육아에 대한 모든 것은 99프로 나의 경험으로부터 형성됐다.

책에서 본 이야기, 공식과 같은 방법론이 아닌 개인의 경험과 치열한 고민, 육아에 대한 신념을 풀어보기로 마음먹었지만, 곧 수많은 물음표들이 꼬리를 물고 머리를 가득 채운다.


아직 6살, 4살 아이 둘을 키우고 있을 뿐이고 육아의 한 복판에 서 있고 갈 길은 더욱 멀다. 아무리 미운 6살, 7살이니 해도 이맘때 아이들에겐 아직은 엄마가 최고이며, 아이만의 어떤 개별적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누구든 조건 없이 사랑스럽다. 그런 평범한 엄마, 평범한 아이들의 일상을 적어 내려 가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도 생각해본다. 즉, 나 같은 평범한 엄마가 0세부터 6세까지 형제 육아라는 테마로 글을 써 내려가도 과연 괜찮을까 많이 고민했다.   


세상엔 이미 수많은 육아서가 있고, 그 육아서를 읽고 리뷰와 경험을 올리는 수많은 똑 부러진 엄마들이 있으며, 나의 경험과 고민은 그에 비해 하찮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렇듯,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은 발등에 떨어지고야 만다. 발등에 떨어지고 찍히고 뜨겁게 상처도 입었지만 또다시 걸을 수 있게 되는 그런 경험. 인생의 짧고 굵은 몇 개의 터널을 지나오면서 이제는 또 하나의 터널이 다가오더라도 더 이상 두렵지 않은 그런 마음을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건 바라지 않는다. 작정하고 위로하는 말에는 되려 위로받지 못하는 법이니까. 마치 아무 말하지 않고 옆에 있어도 그 존재 자체만으로 나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이 있듯, 나의 글이 그런 글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육아의 밑천, 나의 어린 시절

육아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부끄럽지만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잠깐 풀어보려고 한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부터는.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여행을 다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도,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어린 시절의 경험은 한 사람을 단단하게 붙들고 있다. 그것이 우리에게 흔들리지 않는 힘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들여다보기 싫은 아픔이 되기도 한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애를 낳고도 친정엄마와 티격태격한 적이 있다. 그때 엄마가 그러셨다.

“너 어릴 때 공부시키지 말 걸 그랬어. 공부 안 시켰으면 사이는 좋았을 거 아니냐”


여태껏 엄마한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공부시키지 말 걸 그랬어라는 말은..


엄마가 그만큼 공부시켰으니 지금 네가 이 정도 먹고 사는 거지,

엄마가 그렇게 안 했으면 그 대학 근처에도 못 갔어.

너 키울 때 들인 돈이 얼마인지..

이런 말들에 진저리 나게 익숙했었던 난 엄마의 그 말을 듣고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학창 시절 공부 때문에 지지고 볶고 했어도 우리는 천륜인 부모 자식 간이었으며, 잘 자란 딸은 나중에 엄마의 노고를 알아주어야 한다는 그러한 엄마의 굳건한 믿음을 난 저버리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자식을 낳고도 부모 마음을 몰랐다.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기는커녕, 엄마의 지나온 인생을 후회하게 만드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지나온 인생이 무엇이든 간에 그건 아니란 생각도 함께. 그리고 그토록 싫어했던 그 말, 엄마 덕에 내가 지금 이만큼 먹고 산다는 말을 난생처음 똑바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워보니 조금은 알겠다. 얼마 전까지 기지도 못했던 아이가 내 손을 뿌리치고 스스로 걷겠다고 하고, 첫 등원하던 날 절대 엄마 품을 떠나지 않겠다고 울고불고하던 아이가 지금은 선생님한테 뛰어가 안긴다. 아이는 누구나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성장하지만, 나 잠 못 자며 먹이고 재우고 놀아줬던 그 시간들의 절절함 덕분에, 말하자면 엄마인 나 덕분에 너희들이 이렇게 컸구나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이것도 알겠다. 그렇게 절절하게 엄마 역할을 해냈는데 엄마라는 자리는 모두에게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걸로 여겨진다는 것도. 우리 엄마한테 딸 둘 잘 키웠다고 칭찬해주는 이 아무도 없었겠다는 것도. 아무래도 나는 이 나이 먹도록 나 혼자 내 삶을 스스로 개척해 왔다고 퍽이나 자만했던 모양이다. 아이를 키우며 뒤늦게 조금씩 알아간다. 나의 무의식 속에 내가 모르는 무수한 시간 동안 나를 이만큼이나 성장하게 했던 엄마의 사랑을..




칭찬받았던 기억이 참 많았던, 뭐든지 쉽게 잘했던 나의 어린 시절, 나에게 부모님은 기대가 참 많으셨다. 학교에서 아이큐 테스트 후 엄마에게 따로 연락이 가기도 했고, 중학생 때는 전교 1등을 하자 전교생에 떡을 돌리기도 하셨다. 평범했던 집안 형편에 비해 사교육도 참 많이 받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 영어 원어민 학원, 악기, 논술, 수영 및 종합 운동 과목을 들었고 고등학교 입시 지역이었기 때문에 중학생 때부터 방과 후엔 학원과 독서실로 스케줄이 꽉 찼었다. 공부하지 않은 날은 시험 끝나고 일주일 정도였고 거의 매일 새벽 두 시까지 공부했었다. 공부 잘하는 자매로 동네에서 나름 유명했고 다른 엄마들이 우리 엄마에게 정보를 물었다. 그런 와중에도 난 공부가 아주 싫거나 힘들진 않았다. 사교육의 도움도 받았기에 조금만 해도 성적이 잘 나왔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매력 있었던 것 같다.


좋은 성적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였다. 모든 것이 틀어지기 시작한 때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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